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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11. 2022

안녕한 노년은 가능할까

미래가 부쩍 불안하다. 당장 닥칠 내일, 모레가 아니라 30년 뒤 노년으로 가는 시점이 두렵다. 과연 내가 그때도 밥벌이를 하고 있을까? 경력이 단절되면 무슨 일을 해야 하지? 내 몸 뉘일 집 한 칸은 가질 수 있을까? 아프면 어떡하지? 누가 나를 돌봐주지? 젊은이들에게 구닥다리 취급을 받게 되는 건가?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걱정을 사서 하는 주변의 ‘걱정 인형’들에게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해?” 하고 거들먹거리던 과거가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이런 걱정엔 이유가 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전체의 43.4%로, OECD 국가 중 1위[1]다. 노인의 절반 가까운 인구가 가난하다고 하고, 국내 2000만 가구주의 상위 자산 50% 커트라인이 2억 6000만 원[2]이라고 한다. 지금부터 한 달에 100만 원씩 20년을 꼬박 모아야 겨우 가능한 정도다. 그보다 가깝게 와닿는 미래는 <매일일보>가 공모한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에 당선되며 SNS을 뜨겁게 달군 이순자 씨의 <실버 취준생 분투기>다. 


“첫 취업은 닷새 만에 끝났다.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나는 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죄송합니다. 힘에 부쳐서 못 하겠습니다. 그동안 일한 임금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순두 살에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든 이순자 씨는 고학력자를 부담스러워하는 일용직 세계에 입문하기 위해 문예창작을 공부한 학력을 삭제하고 중졸자가 되었다. 수건 정리 노동자, 백화점 청소부, 어린이집 주방 담당, 아이 돌보미, 요양보호사, 장애인 활동 보조인을 거치며 그는 계속해서 사회에서 도태되는 기분을 맛봐야 했다. 노인들이 일을 하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다.[3]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지만 고효율 인간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에서 더 이상 가능성을 염두에 둔 기회를 얻지 못하는 건 비단 청년만이 아니고 노인 역시 마찬가지다.


‘내 자리’를 잃어가는 노년층에는 계속 등장하는 신문물도 공포다. 최근엔 ‘키오스크’가 그 대상으로 떠올랐다. 은행이나 식음료 매장 등에서 이용하는 키오스크가 낯선 고령층에서 디지털 소외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멀리서 사례를 찾을 필요도 없다. 당장 몇 년 전 내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처음 키오스크를 앞에 두고 각종 옵션을 어떻게 추가할지, 쿠폰은 어떻게 적용하면 되는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공포에 떤 경험을 떠올리면 디지털 시대가 인간에게 강요하는 신기술에의 빠른 적응은 넘지 못할 허들처럼 느껴진다. 


물론 ‘큰 글씨 ATM’ 등 고무적인 변화도 있으나, 비대면 시대로 전환한 이후 디지털 소외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면서 생긴 움직임이다. 처음부터 누구나 편하게 적응할 수 있는 형태와 인터페이스를 설계할 수도 있을 텐데, 사회의 모든 기술과 서비스는 도대체 누구를 타깃으로 만들어지는 걸까.


노년의 삶에서 생계유지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는 돌봄이다. 2020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고령자 중 1인 가구 비중은 35.1%에 달한다. 건강조차 ‘자산’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나이 들어 아프기라도 하면 일을 못 하는 건 둘째치고, 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 만만찮게 고될 것이다. 병원이나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 외에 상상할 수 있는 그림이 없다. 누군가의 적극적인 돌봄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할 텐데, 자식도 없고 돈으로 노동력을 대체하기도 힘든 사람에게는 대안적인 돌봄 공동체가 필요하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쓴 조한진희 작가는 ‘돌봄두레’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돌봄두레란 서로를 보살펴줄 수 있는 시민들의 공동 돌봄 모임이다. 병원을 함께 가기도 하고, 골절을 입은 다리의 회복 속도를 물어주고, 아픈데 혼자 지내는 게 괜찮은지 염려하고 대안을 함께 찾는 행위 등을 포함한다.”[4]


작가는 돌봄두레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30, 40대 1인 가구 여성 혹은 비혼 여성을 중심으로 두레를 시작해보라 제안한다고 덧붙인다. 아직 시도해볼 것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러면 일자리와 생계는 어떻게 하면 좋지? 하는 고민이 도돌이표처럼 자리 잡는다. 


도래한 새해, 떡국을 먹든 안 먹든 나이는 속절없이 한 살이 더해졌다. 빠르고 늦는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노인이 될 텐데, 나이를 먹는 일이 두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을 헤쳐나갈 대단한 용기가 없어도, 믿을 구석이 없더라도, 좀 느리고 뒤처지더라도, 늙어가는 모든 사람이 제 나이를 뼈저리게 인식하고 좌절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는 과연 가능할까? 이 과제에 대한 더 많은 고민과 대화가 필요하다. 


글. 양수복


전문은 빅이슈 266호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1] 통계청, ‘2018 고령자 통계’ 

[2] 통계청, ‘2020 가계금융복지조사’ 

[3]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주관한 ‘2020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일하는 이유로 노인 73.9%가 ‘생계비 마련’을 꼽았다.

[4] 조한진희, ‘돌봄은 혈연관계나 돈을 매개로만 가능한 것일까’, <한겨레>, 2021.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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