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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11. 2022

홈리스, 연계의 단절

구슬(가명) 님은 겨울 내내 병원에 있을 듯하다. 여름 더위가 가시지 않은 9월에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는데 아직 퇴원하지 못했다. 몸집도 있고 어디 아픈 데라곤 없어 보이던 구슬 님이 어느 날 기운 없이 누워서 밥도 안 드신다 하고 열이 난다고 할 때, 처음엔 코로나19가 아닌지 의심했다. 119 구급대원이 출동해서 모시고 갈 시립병원을 찾기도 전에 구슬 님은 혼절했다. 목숨이 위태롭다는 말에 무조건 가까운 병원으로 내달렸고 응급처치를 해서 겨우 위기를 넘겼다. 몸 어딘가의 염증이 패혈증까지 일으켜 조금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했다. 

구슬 님은 10년 넘게 거리에서 노숙을 한 분이다. 처음 우리 시설에 왔을 때 신분증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며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주었는데, 행정 서류를 만드는 과정에서 뭔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고, 이후 경찰서에 찾아가 진짜 이름을 알아내기까지 꽤 힘들었던 분이다. 진짜 이름을 알게 되면서 딸과 연락이 닿아 통화하게 되었다. 딸은 엄마와 인연이 끊긴 지 10여 년이 되었다고 했고, 엄마에 대해 궁금한 게 그다지 없는지 별로 묻지 않았으며, 우리가 하는 질문에도 잘 대답하지 못했다. 구슬 님에게 딸을 찾았는데 한번 만날 수 있게 주선할까 물었더니 고개를 저으며 싫다고 했다. 구슬 님은 정신 질환 증상이 심해서 일을 해 돈을 벌기도 힘들고 치료받을 생각이 없어 전문 시설 연계도 어려워서 그저 일시 보호 서비스를 장기 이용하는 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름을 찾은 이후 단 한 번도 딸과 가족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수술 후에도 아무도 찾지 않았으며 그저 찾아간 사회복지사를 반기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문제는 의료비였다. 상황이 워낙 급해서 의료비가 지원되는 시립병원을 가지 못했던지라 병원비를 지불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응급수술 비용은 해당 병원의 사회사업실에서 후원을 연계해주어 해결했지만 이후의 항생제 치료와 입원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해결 방법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활용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길이었는데, 이걸 신청하면 관공서에서 가족에게 연락이 간다. 가족의 경제 상황과 돌봄 의사 등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시골에 구슬 님의 부모님이 계시다는 사실도 파악하게 되었지만 그뿐이었다. 부모님은 이미 연로해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딸도 형편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다만 구슬 님 응급치료가 끝나고 요양병원으로 옮긴 직후 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많이 위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그 연락을 받고 많이 당황했다고, 엄마를 볼 수 있느냐고 울먹이는 소리로 물었다. 요양병원이 요즈음 코로나19 때문에 면회가 어려운데 병원에 연락해보라고 했다. 확인해보니 한참 지난 지금까지 딸은 병원을 찾은 적이 없다. 구슬 님은 아마도 쓸쓸하게 병원 생활을 해야 할 것 같다. 병원 관계자는 구슬 님이 신체적으로는 거의 회복됐다며 “그런데 퇴원하면 갈 데는 있나요, 다시 그리로 가면 되나요?”라고 묻는다.

출처: Unsplash


가족에게도 외면당하는 여성 홈리스


벗(가명) 님은 2020년 8월쯤 우리와 만났는데 2021년 9월에 신원을 회복했다. 경찰이 노숙하는 벗님을 발견해 일시 보호를 요청하면서 준 정보는 자녀가 있지만 돌보기를 원치 않아 당장 갈 곳이 없는 분이라는 거였다. 만나보니 왜 노숙하게 되었는지, 가족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등에 대해 횡설수설하며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가족에게 전화했다. 전화를 받은 벗님의 자녀도 형제도 이미 수십 년 전에 가족을 떠난 벗님이 하나도 반갑지 않으니 연락하지 말라는 반응이었다. 이후 벗님은 몇 차례 병원 진료를 통해 치매 진단을 받았다. 치매 환자에 돌볼 가족도 없는 셈이니 국가의 돌봄 체계가 작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먼저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얻기 위해 신청했다. 그러다 벗님이 법적으로 실종 사망으로 처리된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망자가 수급 신청을 할 수는 없으니 먼저 사망 처리를 취소하는 법적 절차를 밟아야 했다. 법적 보호자인 자녀에게 연락해 사망을 취소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먹고사느라 바빠 시간을 내기 힘들고 그럴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며 몹시 냉랭하게 대꾸했다. 자녀의 도움이 없이는 취소 절차 진척이 힘들어 또다시 연락하게 되었고, 몇 차례의 간곡한 부탁으로 도움을 받아 취소 신청을 완료하기까지 몇 달, 현장 조사까지 몇 달,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어르신은 몇몇 홈리스 여성처럼 일시 보호 시설을 장기 이용하는 분이 되었다. 법적 사망자 신분이라 전문 시설에 연계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어르신의 치매 증상은 그사이에도 계속 심해졌다. 종종 산책을 나갔다가 시설 위치를 찾지 못해 경찰관과 동행해 돌아왔다. 걱정이 되어 인식 목걸이를 만들어드렸지만 답답한지 수시로 빼버렸고, 그러다 어느 날은 완전히 잃어버렸다. 다시 연락처 태그를 만들어 옷마다 달아드렸다. 그러고도 불안해 시설의 다른 홈리스 여성들에게 부탁해 외출에 동행하게 하고, 약을 먹을 때나 끼니때가 되면 함께 이동하도록 신신당부를 해놓았다. 얼마 전부터는 용변을 가리지 못한다. 한 방 식구로 열심히 챙겨주던 친절한 몇몇 홈리스 여성들도 이제는 자꾸 기저귀를 벗어버리고 옷과 이불, 가끔은 방바닥에 용변을 보는 벗님과 지내는 것을 힘들어한다.

신원 회복 이후 벗님 어르신은 다시 수급 신청을 했고 얼마 전 수급자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동시에 요양급여 신청을 했고 지난주에 요양 시설 입소가 가능한 등급을 받았다. 이제 어르신이 입소할 수 있는 요양원을 찾는 일이 남았다. 벗님의 자녀에게 꾸준히 어르신의 신원 회복 결과, 수급 신청 진행 상황 등을 알렸는데, 얼마 전에는 자녀와 형제분이 함께 시설을 방문해 벗님을 만나도 되냐는 연락을 받았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이 엄격하지만 코호트 격리를 하는 요양 시설이 아니니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딸이 엄마가 자신을 기억하긴 하냐고 묻기에 “그럼요, 가끔 자녀분 얘기를 하고,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럼 한번 찾아오겠다고 해 약속을 잡았는데, 사실 벗님이 자녀를 어떻게 얼마나 기억할지 우리도 자신이 없었다. 만났는데 전혀 못 알아봐서 실망감과 서운한 마음만 갖고 헤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 속에 만남이 성사되었다. 자녀분, 형제분이 어르신을 모시고 나가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자녀분께 물으니 자녀의 존재는 아는 것 같은데 형제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양 시설이 자신들의 주거지 근처이면 가끔은 들여다볼 수 있다고 했다.

출처: Unsplash


헐거워진  다시 조이기


홈리스 여성 중 많은 분이 구슬 님, 벗님처럼 가족과의 끈이나 사회 복지 서비스 체계와의 연계가 느슨하다. 연계가 튼튼하지 못하거나 단절되어 홈리스가 되기도 하고, 오랜 홈리스화 과정에서 연계가 점차 단절되기도 한다. 5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전국 노숙인 등의 실태 조사’의 2016년 조사 당시 2032명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를 실시했다. 거리 노숙인, 이용 시설 노숙인, 자활·재활·요양 시설 거주민, 쪽방촌 주민이 면접 조사에 참여했다. 조사 내용에 가족이나 친지 등 사회 관계망을 파악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개인적 편차가 크기는 하지만 많은 답변자가 친척이나 가족 중 누구와도 연락하거나 만나고 있지 않았다. 남성의 63.9%, 여성의 51.6%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 연령별로는 60세에서 69세 사이의 노숙인이 관계망이 적었고, 노숙 기간이 길수록 관계망이 적은 경향이 있었다. 노숙 생활 이전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를 경험한 사례는 15.6%에 불과했고, 노숙을 시작한 후 생계급여를 수급한 경험도 52.2% 정도였다. 

홈리스에 이른 여성들과 함께한다는 건 이처럼 헐거워지거나 끊어진 가족, 친구나 동료, 사회, 제도와의 끈을 잇는 일이다. 모두 관심과 정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글/ 김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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