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Apr 27. 2022

어리게 사는 비결

배고픈 상태의 반대는 배부른 상태다. 그렇다면 배고파 죽을 것 같은 상태의 반대는? 당연히 배가 꽉 차 터질 것 같은 상태고,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똥이 마려운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포만감과 배변감 사이에는 시간 차가 있다. 그것은 마치 번개와 천둥의 관계와 비슷하다. 번개가 먼저 치고 천둥소리가 뒤따른다. 번개가 환하게 번쩍할수록 천둥소리도 우렁차다. 배부르다는 느낌이 먼저 들고 시간이 좀 지나야 똥이 마렵다. 꽤 오랫동안 배만 부르고 신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신호가 온다. 만약 배만 부르고 똥이 마렵지 않다면 필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배가 부른 적도 없는데 똥부터 마렵다면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번개만 번쩍하고 천둥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혹은 번개보다 천둥이 먼저 친다면 지구에 아주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듯이.

아마 당신은 이쯤에서 내가 갑자기 더러운 소리를 한다며 고개를 돌려버릴지도 모르겠다. 더러운 것을 보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더러운 것을 피할 때보다 당장 반드시 필요한 것을 피할 때가 월등히 많다.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마감이 아닌 모든 일에 호기심이 인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연예인의 가족사라든가 내 불안감이나 화를 돋우는 뉴스 따위를 찾아서 보게 된다. 한번은 내일 녹음해야 할 대본을 펼쳐놓고 있다가 요즘 시대가 시대이니 코딩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한참 동안 코딩에 관한 유튜브를 들여다보고 있은 적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이런 모습은 쉽게 발견된다. 아내와 갈등을 풀어야 하는 남자 주인공은 계속 대화를 피한다. 아이에게 달려갈 용기가 없는 아빠는 지구나 구하러 간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과제나 시험공부를 미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필요한 것을 거부하게 됐을까?

ⓒUnsplash

아기를 돌보면서 당장 필요한 것을 거부하는 현상이 우리 기억에 없는 영·유아기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육아하면서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어려운 건 ‘밥 먹이기’와 ‘잠재우기’다. 사람을 고문할 때 기본이 밥과 잠을 빼앗는 것이라고 한다. 배고프고 졸린데 먹을 수 없고 누울 곳이 없으면 금세 괴로워진다. 어느 시기부터 밥을 먹일 때마다 아기와 씨름해야 했다. 가끔 아내가 아기에게 밥을 먹이는 모습이 사냥꾼과 토끼처럼 보인다. 겨우 받아먹은 밥을 보란 듯이 뱉어버릴 때도 있다. 잠재우기도 고되긴 마찬가지다. 눈꺼풀이 무거워 눈이 감기는데도 잠들지 않으려고 버틴다. 무릎을 치고 눈을 마구 비벼댄다. 아직 말도 못 하는 녀석이 노래 비슷하게 흥얼거리기도 하고 괜히 소리를 한 번씩 지르기도 하는데, 그 모습은 흡사 운전 중에 잠을 쫓는 내 모습과 같다. 이건 거의 스스로 고문하는 꼴이 아닌가. 내가 고문을 당해도 괴롭겠지만, 내 아기가 스스로를 고문하는 모습을 보는 게 그보다 덜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아기를 달래본다. ”지금 너한테 꼭 필요한 거야. 그런데 왜…” 순간, 내 말 끝을 자르고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는 너는!’ 


권태를 버텨내려는 당신에게


운전면허가 취소된 적이 있었다. 무슨 사고를 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운전면허 갱신 기간이 지나고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서야 그 사실을 깨달은 탓이었다. 대학생 때 면허를 따고 종종 아버지 차를 빌려 운전했었다. 서울에 올라온 뒤로 운전할 일이 없으니 운전면허증을 어딘가에 처박아두고 꺼내 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것은 어딘가 실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본 사람은 없고 꿈과 상상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유니콘 비슷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결코 유니콘을 찾아 나서지 않았다. 귀찮았다. 어디 있겠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급여 통장을 만들려고 은행에 갔다가 문득 깨달았다. 주민등록증이 보이지 않아서 늘 갖고 다니던 지갑을 뒤적이다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영수증 더미에 끼여 있던 운전면허증을 발견하고 마치 유니콘을 본 사람처럼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주민등록증 대신 은행 직원에게 내밀었다가 더욱 놀라고 말았다. 

“이거 갱신 기간이 한참 지나셨네요.”

갱신 기간이 아주 많이 지나 있었다. 한 1년 반쯤. 이 일화에서 가장 놀라운 지점은 바로 이 대목인데, 그때 나는 운전면허증을 어서 살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운전면허증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먼저 가. 난 이미 틀렸어.” 아… 그래. 어차피 지금 당장 운전할 일도 없을뿐더러 조만간 나한테 자가용이 생길 것 같지도 않은데, 미안하지만 먼저 갈게. 나중에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따지 뭐. 그렇게 나의 유니콘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을 고했다.

ⓒUnsplash

그리고 몇 년이 더 흘러 결혼을 앞뒀을 때, 장롱면허 소유자로 지내던 나의 예비 신부가 운전 연수를 받았다. 면허증을 장롱에서 꺼내는 데 성공한 그녀는 종종 공유 카를 빌려 나를 태우고 드라이브도 가고 일터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조수석은 참 편안했다. 어느 날 그녀가 “오빠는 면허 안 땄어?” 하고 물었을 때, 내 면허증은 사실 유니콘이라고 말할 수 없어 이실직고했다. “…아마 운전면허 학원에 다시 다녀야 할걸?”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핀잔을 주는 대신, 그녀는 정확히 알아보라고 했다. 취소된 운전면허를 살려내기 위해 정말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하는지 알아보라고 말이다. 도로교통공단과 통화를 시도했다. ARS 음성 넘어 실제 사람 목소리를 듣기 위해 무수히 많은 통화 대기음을 들어야 했다. 나는 결국 그 장벽을 넘지 못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또 시간이 흘렀다. 예비 신부였던 아내는 어느덧 임부가 되어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그 지경이 되어서야 나는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또 전화를 끊어버릴 뻔했을 때 아내가 전화기를 가져가 대신 기다려주었다. 직원과 연결되자 아내는 내게 전화기를 건넸다. “갱신 기간이 지나서 면허를 다시 살리려고 하는데 처음부터 다시 따야 하나요?” 전화기 너머에서 나를 미치게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경찰청에 전화해보세요.” 또다시 무수한 대기음의 장벽을 아내의 도움으로 건넌 끝에 답을 알아낼 수 있었다. 아직은, 필기시험만, 다시 보면 되는 상태였다. 그 장벽을 넘으니 내 손에 새 운전면허증이 쥐여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통화 대기음을 듣는 일이 참 지루했다. 그 지루한 시간을 견디고 모르는 사람에게 모르는 일에 관해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 불편했다. 그래서 내게 꼭 필요한 일인데도 피했던 것이다. 아기들은 그저 밥 먹는 일이 편하지 않고 재미없으니 도망 다니고, 지루해서 잠자기를 거부한다고 한다. 가끔 아기가 혹시 날 아빠가 아니라 친구나 동생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곤 하는데 ‘혹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마 아기를 낳아 키워보지 않았다면 내가 얼마나 아기 같았는지도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어른이 될수록 싫은 일도 참고 해야 하는 때가 많아진다. 반대로 싫은 감정을 참지 않고 필요한 일을 끝까지 피하면, 그게 바로 어리게 사는 비결이 아닐까? 그러나 얄궂게도 어리게 산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때로 불편을 감수하고 움직여야 한다. 권태를 버텨내야 한다. 그러려면 수시로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한다. 나는 이것이 정말 더러워서 피하는가? 아니면 그저 불편하고 지루해서 피하는가? 



중요한 건 똥 덩어리에서 도망치는 게 아니다. 

당신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똥 덩어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 

– 마크 맨슨, <신경 끄기의 기술> 중에서


글. 심규혁


매거진의 이전글 뉴욕은 산책 중-산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