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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un 15. 2022

영화 속에 산다

강남역 김영덕 빅판 

유쾌했다. 유난히 웃음이 많았다. 인터뷰 내내 웃음기 가득한 그의 얼굴은 마주 앉은 상대까지도 웃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빅이슈 판매원(이하 빅판)들이 살아온 내밀한 이야기를 듣는 이 코너의 이번 주인공은 유동 인구가 많은 지하철 강남역에서 매일매일 영화를 찍는다는 김영덕 빅판이다. 강남역을 오가는 사람들은 그의 로맨스 영화 속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액션 영화의 히어로나 청춘물 속 풋풋한 학생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김영덕 빅판이 강남역에 지어놓은 작은 영화 세트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  긴장한 것처럼 보이세요

인터뷰는 처음이니까 아무래도 긴장이 좀 돼요.(웃음) 제가 말하는 게 이렇다 보니 사람들이 잘 못 알아들을 때가 많거든요. 같은 말을 여러 번 해야 알아듣죠. 제가 지적장애 3급이에요. 언어장애도 좀 있고요. 


독자에게 책을 판매할  언어 장애 때문에 어려움이 있으실  같아요.

조금요. 아예 없다고는 말 못 하고요. 발음이 안 되다 보니 남들이 오해하기도 하고… 그렇죠. 사실 또 뭐 그렇게 크게 피해 보거나 그런 건 없어요.(웃음) 전 크게 불편한 것도 모르겠고요.


2019년부터 2 정도 《빅이슈》를 판매하다가 중단하셨다고 들었어요그때는  그만두셨던 거예요?

아는 형이 택배 일을 같이 하자고 해서 빅이슈 판매원을 그만뒀었죠. 택배 회사에서는 아침에 분류 작업을 한 다음에 지역별로 배당해서 각각 차에 맞게 실어주는 일을 했었어요. 


다시 빅이슈로 돌아오신 이유는요?

사정이 있어서 택배 일을 더 못 하게 됐어요. 택배 일 그만두고 모아놓은 돈이 다 떨어지니까 빅이슈 생각이 나더라고요.(웃음) 다시 《빅이슈》를 팔아봐야겠다 하고 사무실 앞에 오긴 했는데 막상 들어가려니 못 들어가겠더라고요. 그냥 돌아갔다가 다음 날 다시 왔어요. 그날도 사무실에 못 들어가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때마침 지나가던 코디님이 저를 보고 얼른 사무실로 들어가자고 해서… 그렇게 빅이슈로 다시 돌아왔죠.   


 그렇게  들어오고 망설이셨어요?

쑥스러워서요.(웃음) 들어갈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그때가 올해 2월이죠다시 돌아오는  용기가 필요하셨을  같긴 해요

막상 판매를 다시 시작하니까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판매를 시작하고 얼마 안 돼 한 달을 쉬었어요. 몸이 좋지 않아서요. 그때 어머니랑 같이 사무실에 와서 판매팀 이선미 팀장하고 양계영 코디와 상담을 했는데, 강남역에 판매 자리를 마련해놓을 테니 언제든 오라고 하더라고요. 많이 고마웠죠. 


어머니하고 같이 사세요?

네, 부모님하고 같이 살아요. 부모님도 제가 《빅이슈》 판매하는 거 좋아하세요. 장애가 있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거든요. 부모님은 제가 집에 있는 거보다 나가서 잡지 팔고 활동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죠.(웃음)


요즘 판매 상황은 어때요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이후 판매량이  늘었나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려서 판매에 도움이 많이 돼요. 대개 월요일에는 잘 안 팔리고 금요일에 좀 팔리고 그래요. 강남역에서 팔아서 그런지 금요일에 잘 팔리네요. 하루에 많이 팔 때는 50권까지도 팔았어요. 근데 이상하게 한 권도 안 팔린 날은 없어요. 진짜 안 팔려서 딱 한 권 판 적은 있어도.(웃음)


판매지가 유동 인구가 많은 강남역이기도 하지만 빅판님이 노력하신 덕분에 판매가 잘되는 거겠죠강남역 10 출구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시고심지어 도로  운전자들과도 눈을 맞추고 인사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런 이유도 있겠죠. 그런 자세가 판매에 더 도움이 되기도 해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는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하루 온 종일 판매하고 나면 목이 다 쉬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판매 멘트를 외치니까요. 


뭐라고 외치세요? 

“안녕하십니까, 세계적인 잡지 《빅이슈》, 한 권에 7000원! 복도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외치죠.(웃음)


웃음이 많고 유쾌하신  같아요

원래 웃음이 많아요. 어릴 때 별명이 하회탈이었어요. 하회탈처럼 생겼다고… 별명이 하회탈, 영턱스클럽, 이름이 영덕이라서요. 친구들이 편하게 부를 때는 뺑덕어멈이었어요.(웃음) 아, 강백호라는 별명도 있었어요. 이미지가 닮았대요. 강백호 머리 모양이 저랑 비슷한가 봐요.  


매일 빅이슈 사무실에 들러 그날 판매할 잡지를  가신다고 들었어요. 

네, 매일 사무실에서 들러 잡지를 사요. 많이 사면 무겁기도 하고 카트도 끌고 다녀야 하는데, 그러면 지하철역에서 오르내릴 때 불편해요. 저는 배낭 매고 다니는 게 더 편해서 가방에 들어갈 만큼만 사서 다녀요. 


진짜 열심히 하신다고 들었어요잡지가 일찍  팔린 날은 오후에 사무실에  오셔서 잡지를 구입해 판매처로 다시 나가신다면서요

강남에서 사무실이 있는 불광역까지 40~50분은 걸려요. 집은 공항동이고요. 공항동에서 불광역에 들러 잡지를 사서 강남역으로 가고, 잡지가 모자라면 다시 불광역에 왔다가 강남역으로 가고… 힘들긴 힘들어요. 그런데 그런 날은 예상보다 잡지가 더 팔린 날이니까 기분은 좋죠.(웃음) 


그런 날은 많이 피곤하시겠어요

집에 가면 바로 뻗어요.(웃음) 평소에는 유튜브 보고 영화 다운받아 놓은 것 있으면 그거 보고… 그러다 밤 11시나 12시쯤 자요. 


영화를 많이 보시나 봐요.

제 꿈이 액션영화 감독이에요. 액션영화를 좋아하거든요. 마니아죠. 정우성이 나오는 <비트>를 특히 좋아해요. 이 영화는 비디오테이프로 돌려 봐야 제 맛이죠. 단골 비디오방에 가면 사장님이 알아서 <비트>를 틀어주세요.(웃음) 이 영화 보고 오토바이도 탔었다니까요.(또 웃음) 액션영화를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영화 보면서 내가 감독이면 이렇게 저렇게 만들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저는 잡지를 팔 때도 영화 촬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내 영화의 배우다 생각하죠. 저는 감독이고요.(웃음) 커플이 지나가면 로맨스영화 생각하고, 학생들이 지나가면 학교 청춘물 생각하고, 덩치 좋은 분들 지나가면 액션영화 생각하고 나이 드신 분 지나가면 고전 영화 생각해요. 그때그때 시나리오를 써요. 그러면 지루하지 않고 시간이 금방 가요.


하루하루가 영화네요.

영화 속에 빠져서 사는 거나 마찬가지죠. 


앞으로 어떤 삶을 가꾸고 싶으세요

지금처럼 이렇게 쭈욱 가면 좋겠어요. 특별히 바라는 건 없어요. 저는 지금이 사는 게 편해요.(환한 웃음) 


글. 안덕희/ 사진. 김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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