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 밑창이 있는 신발. 이 불친절한 설명, 심지어 누런 고무가 생각나면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무신인, 이런 설명을 가진 신발을 이렇게 좋아할 줄 누가 알았던가. 그렇다. 나는 스니커즈를 좋아한다.
스무 살, 서울로 상경한 후 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마구 사들인 물건은 바로 스니커즈였다. 내가 가진 옷들과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도 했지만 같은 디자인에 색깔이 워낙 다양해 모으는 재미가 있었다. 한 가지에 꽂히면 색깔별로 꼭 사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 모자며 티셔츠며 색깔별로 구매했지만 곧잘 질려버려 해가 지나면 관심도 사라지던 다른 물건들에 비해 스니커즈는 질리지도 않았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스니커즈는 여전히 색상별로 구매하고 있으니 그 매력 참 지독하다.
스니커즈라면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끈을 묶어 신는 스니커즈를 가장 좋아한다. 끈 말고는 어떤 디자인도 없는, 끈이 곧 디자인인 그런 스니커즈. 이유는 간단하다. 맥시한 기장의 슬렉스를 입고 어두운 색상의 재킷을 걸쳐도, 셔링이 잔뜩 있는 페미닌한 블라우스에 9부 바지를 입어도, 꽃 패턴으로 범벅이 된 원피스를 입어도 다른 신발 없이 스니커즈만 신으면 곧 패션 완성! 내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나 몸매가 아니라 스니커즈였다. 사실 머리부터 발목까지 콘셉트가 일관되면 진지해서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그래서일까. 다 된 밥에 재 뿌리듯 꼭 스니커즈를 뿌려야 만족스러웠다. 내 패션의 농담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많이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스니커즈가 불편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브랜드마다, 또 제작 방식마다 다르다. 이건 일 평균 1만 보씩 걷는 내 경험상 하는 말이니 정말일 것이다. 어떤 스니커즈는 정말로 걷기가 불편하다. 새끼발가락의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은 스니커즈도 있고, 고무 밑창이 있지만 바닥의 작은 돌멩이라도 디디면 발바닥에 그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하니까.
뭐든 진짜를 알아내려면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스니커즈는 결코 불편한 신발이 아니다. 19세기 영국, 가죽으로 만든 신발이 일반적이었을 당시 튼튼한 가죽 부츠는 바닷가 같은 여행지에 적합하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과 자유를 즐기기 위해 떠난 여행에 가죽 부츠라니?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스니커즈다. 물론 처음부터 스니커즈라 불리지는 않았다. 납작한 모양을 따 샌드 슈즈라고 부르기도 했고, 제작한 곳의 회사명이나 브랜드명 등 제작자들이 지은 이름들로 불렸다. 그렇게 만들어지고 사라진 회사와 브랜드 사이에서 결국 남은 이름은 스니커즈. 스니커즈는 고무 밑창으로 발걸음이 너무 조용해서 살금살금 걸어 다닌다는 의미의 ‘sneak’에 ‘er’을 붙여 스니커즈가 됐다고. 사담이지만 이건 당시 신발 브랜드의 광고 대행사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란다. 세기가 바뀐 지금은 하나의 대명사로 통하니 그 대행사 참 일 잘했다 싶다.
여하튼 요즘은 바닥을 두툼하게 만들어서 쿠션감을 준 스니커즈도 많다. 그런 스니커즈는 착화감이 예술이다. 무겁지도 않을뿐더러 걸어 다닐 땐 하늘을 걷는 기분이 든다. 착화감은 물론이고 스니커즈는 다양한 분위기와 느낌을 잘 수용한다. 디자인에 따라 그 느낌이 다양한데 일러스트나 프린팅이 되어 있는 스니커즈는 스포티하면서도 귀엽고, 끈이 없는 스니커즈는 발랄하면서도 차분하며, 벨크로 스니커즈는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다. 또 어떤 소재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른데 천이나 캔버스, 가죽, 합성소재를 썼느냐에 따라서도 그 느낌이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어떤 디자인에 어떤 소재를 써도 그 내추럴한 느낌을 낼 수 있는 이유는 고무 밑창 때문이겠지.
스니커즈는 내 패션의 농담 같은 존재라고 했지만 간혹 생기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회사 생활이나 흐린 날 같은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을 때도 스니커즈는 훌륭한 농담의 재료가 된다. 스니커즈로 농담을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그 발랄함과 유쾌함이 일상의 농담이 된다. 친구와 발 사진을 유독 많이 찍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찍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거든. 아, 이건 SNS 중독자로서 하는 말인데, 스니커즈를 신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사진을 찍으면 제법 분위기가 난다. 이 역시도 컨버스가 지닌 내추럴한 분위기 때문일 텐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사용감이 있을수록 멋스러운 느낌도 있다. 지저분해도, 끈이 풀려도, 오래 신어 낡아도 말이다.
혹 이 글을 읽고 스니커즈의 매력을 더 알게 된 이들이 있다면, 혹시 좋아하지 않았지만 관심이 생긴 이들이 있다면, 특히 농담 같은 스니커즈가 마음에 쏙 들어온다면 무심한 듯 시크하게 꺼내 신어보자. 그 순간은 농담을 더하는 시간이 될 테니까.
글과 사진.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