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Oct 27. 2022

아무개씨의 포도와 사과나무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왕 크니까 왕 잘 돼

아무개씨. 엉망인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아무개씨를 만났다. 아무개씨는 크고 탐스러운 포도와 사과나무를 팔았는데 마음만 먹으면 황금 포도알과 황금 사과 알이 맺힐 수도 있는 그런 과일을 팔았다. 

엉망인 나날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매사에 실수하고, 틀리고, 화내고, 짜증내고… 정신이 없었다는 말로는 부족한 분주하고 불만족스러운 나날들. 그런 날이면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할 수 없었으며 무기력이 먹구름처럼 몰려왔다.

그런 날이 지속되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날엔 무작위로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 물건을 사고 돈을 쓰면서 마음속 불만을 재우고 허망함을 채워갔다. 가장 쉽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고, 제법 만족스러웠다. 물건을 손에 쥐었다는 만족감보다는 무언가 살 수 있다는 행위로 채워지는 만족감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사고 나서는 뜯지 않는 택배들이 늘어갔고, 뜯었지만 정리하지 않는 물건들이 쌓여갔다. 통장 잔고가 전보다 훨씬 줄었고 소비 규모가 커졌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소비를 멈추거나 줄일 수 없었다. 내 삶은 계속해서 엉망이 되어갔다.

그때 만난 것이 아무개씨다. 그는 포도와 사과나무를 팔고 있었다. 왕 목표 달력이었다. 오, 어릴 적 착한 일을 하면 선생님에게 스티커를 받아 하나씩 붙일 수 있었던 포도 달력과 사과 달력. 그 달력을 보자 어지럽기만 했던 엉망인 일상에 반짝! 하고 밝디밝은 전구가 켜지는 느낌이었다. 이건 좀 갖고 싶은데? 이거야말로 지금 내 엉망인 삶을 구제할 수 있는 황금 과일들인걸? 


소비를 멈추기 위한 소비


웃기지만 소비하지 않기 위해 소비해버렸다. “그냥 그려버리지!” 하고 말하던 동료들이 있었지만 단순히 소비를 멈추기 위한 방안이 아니었다. 너저분한 내 일상을 원래대로 돌릴 수 있는 그 시작이랄까.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고 당장 구매했다. 그리고 목표 칸에 목표를 적었다. 사과 달력에는 ‘돈! 안 쓰는 법을 배워보자!’라고. 그리고 빨간 사과와 황금 사과의 기준을 정했다. 한 푼도 쓰지 않으면 황금 사과를, 대중교통비만 사용한 날에는 빨간 사과를–출근은 해야 하니까–붙이기로 했다.

포도나무에는 쓸모없는 물건을 처리하기 위해 ‘미니멀리스트가 되어보자!’라고 호기롭게 적었다. 무조건 버리기보단 잘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나누거나 헌옷 수거함에 다섯 벌 이상 처리할 시에는 보라색 포도를, 나누거나 처리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보상이 생긴다면 황금 포도알을 붙이기로 했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나누어졌을 때 상대가 커피나 밥을 살 경우라던가, 중고 거래가 성공할 시에 말이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사과를 붙이기 위해선 쇼핑에도 계획이 필요했다. 약속이 없는 날에는 황금 사과를 노리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도 자제했다. 돈을 써야 하는 날에는 꼭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메모 후에 쇼핑을 했다. 포도알을 붙이기 위해 옷과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쓰지 않은 새 물건, 사용했지만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물건을 분류했고, 쓰지 않은 새 물건은 중고 거래 어플에 올리고 사용했지만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물건은 SNS로 주변에 나눴다. 그렇게 하고도 남은 물건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에 기부했다. 어쩌다 기부 영수증이 나오면 그날은 황금 포도알을 붙였다.

달력이 왕 크니까 왕 잘 되는 걸까? 이래서 조기 교육이 중요하단 걸까? 아무개씨로부터 산 포도와 사과나무에 열매가 열릴수록 엉망진창이었던 일상이 조금은 정리된 기분이 들었다. 꼭 소비는 아니어도 내 일상이 깨졌다는 생각이 들면,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내 삶에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아무개씨를 추천한다. 당신이 구매한 그 과일들은 생각보다 탐스럽게 열릴 테니까. 


*  ‘아무개씨’는 ‘아무개수집’으로부터 시작된 실험 공간이며, 온라인 상점 이름입니다.


글. 김유진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교사로 살게 하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