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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Oct 27. 2022

위기엔 권력 근처로?

책에 나온 이야기라고 해서 꼭 옳은 것은 아니다. 유명한 사람이 꼭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아이는 어른이 된다. 화장실 벽에 붙어 있는 명언이나 익숙한 속담도 그렇다. 특히 속담은 시대에 뒤떨어진 게 많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라는 속담도 그렇다. 인구와 자원의 서울 쏠림이 지나친 현실에선, 매우 부적절한 내용이다. 

이런 속담이 왜 생겼을까. 17세기 기근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 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조선 인구가 급격히 한양으로 쏠렸다고 한다. 조선 현종 시기인 1670년과 1671년, 2년에 걸쳐 진행된 기근은 특히 끔찍했다. 경술년과 신해년에 일어났으므로, 경신 대기근이라고 하는데, 부모가 자식의 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굶어 죽은 이들이 워낙 많아서, 시체를 땅에 묻을 사람조차 부족했다.  

재난은 아래로 흐른다. 약하고 가난할수록, 피해가 크다. 기근의 참상 속에서 다들 깨달아버렸다. 기왕이면 왕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국가의 구휼 체계도 권력에서 가까워야 그나마 잘 작동한다. 궁궐로부터 멀리 떨어진 제주에선, 경신 대기근 2년 사이에 4만 2천여 명에서 2만 7천여 명으로 인구가 줄었다. 그러니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라는 속담이 나올밖에. 

<대동여지도>의 서울(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기근의 피해는 전쟁보다도 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의 식량 지원이 있었는데, 경신 대기근 시기엔 그조차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기근은 조선만 겪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 등 이웃 국가 역시 기근과 혼란을 겪었다. 지구의 평균 온도가 떨어지는 소빙하기였다. 

기후가 바뀌면, 농사를 망친다. 새로운 전염병이 돌기 쉬운데, 굶주린 몸에는 더 치명적이다. 가족과 땅을 잃은 농민들은 분노를 쏟아낼 표적을 찾아 헤맨다. 숨은 갈등이 폭발한다. 경신 대기근보다 조금 앞선 1644년, 이자성이 이끄는 농민군이 베이징에 입성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가족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산해관에서 만주족을 막고 있던 장군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소식이었다. 그들에게 농민이란, 그저 무지렁이였다. 그런데 농민 출신이 황제가 됐다. 농민에게 충성해야 하는 나라라면, 차라리 망해버리는 게 낫다는 장군들도 있었다. 무지렁이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릴 바엔, 차라리 오랑캐 추장을 황제로 받드는 게 낫다는 게다. 오랑캐 추장은 적어도 무지렁이는 아니니까. 결국 산해관을 지키던 장군 오삼계는 군대를 이끌고 만주족에게 투항했다. 산해관 문이 열리자, 이자성의 농민군이 세운 나라도 무너졌다. 만주족의 청나라로 중국 왕조가 바뀌었다. 

경신 대기근 이후의 조선 역시 왕조만 건재했을 뿐이다. 기존 질서와 윤리가 무너졌지만, 대안은 흐릿한 채로 근근이 이어졌다. 영조와 정조 시기, 잠시 부흥했으나, 전쟁과 기근 이전의 경제 수준에는 한참 못 미쳤다. 그리고 다시 시들시들해졌고, 망국에 이르렀다. 동학 농민의 봉기가 있었으나, 상당수 엘리트는 각성한 농민과 같은 나라에서 함께 사느니, 일본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위기를 피할  없다면위기가  교훈이라도


기후가 바뀐다고 해서, 인류가 당장 멸종하지는 않을 테다. 다만 사람들은 더 안전한 곳으로, 권력과 더 가까운 곳으로 몰려들 것이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라는 이야기가 삶의 지혜로 통했던 것처럼 말이다. 힘없고 가난할수록 더 쉽게 죽고 다친다. 그래서 불안해진 사회에선 권력도 흔들거린다. 어떤 권력은 무너지고, 다른 어떤 권력은 약자들을 더 세게 쥐어짜서 생존을 도모한다. 가진 게 많은 이들은 어느 권력에 줄을 서야 하는지를 놓고, 끊임없이 눈치를 본다. 엘리트의 배신과 변절은 일상이 된다. 지난 역사가 그렇게 진행됐다. 

기후가 또 바뀌고 있다. 이번엔 지구가 뜨거워진다. 기근과 전쟁, 권력의 교체가 빈발했던 17세기의 역사가 21세기에 되풀이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위기가 더 불안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권력이 휘청이는 진폭이 커질 테고, 엘리트들은 그때마다 어느 줄에 서야 하나 고민할 테다. 

사회와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청년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로 몰리곤 했다. 도전적이기보단, 보수적인 선택을 주로 했다. 위기를 겪을 때마다 전통적인 기득권이 더 견고해졌다. 왕이 있는 한양으로 더 많은 이들이 몰렸던 것처럼 말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경험이 잘 보여준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나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새로운 위기를 넘긴 뒤에도,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라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위기를 피할 수 없다면, 위기 이후의 교훈이라도 바꿔야 한다. 다음 세대는 “사회가 위기를 겪으면, 힘 있고 넉넉한 이들이 먼저 제 몫을 나눈다.”라는 메시지가 담긴 속담을 익히기를 바란다. 


글. 성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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