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밭골샌님 Apr 16. 2024

골목길 야생화 28 돌단풍

바위틈에서 뿜어내는 노송의 기상


돌단풍


먼저 우리나라 시인이자 소설가인 윤후명의 꽃이야기부터 들어보시지요..


"꽃 한 송이의 시간 속에는 모든 시간이 모여 있다. 슬픔과 괴로움의 시간, 기쁨과 즐거움의 시간, 우주가 비롯된 저 태고의 시간, 지금 우리에게 나타나 있는 현재의 시간... 모든 시간이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있다. 한 개의 모래알에, 아니 한 개의 티끌 속에 우주가 있다고 했듯이, 한 송이 꽃에 모든 시간이 있다. 공룡의 시간도 있고, 인간의 시간도 있다. 인과응보라는 어려운 말이 새삼 필요할 까닭이 없다."
- 윤후명, <꽃>, 문학동네

다음은 생물분류학의 시조로 '식물학의 왕자'라는 애칭을 가진 스웨덴의 칼 폰 린네의 꽃이야기입니다.

"꽃의 꽃잎 자체는 생식에서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고 단지 신부의 신혼방 역할만 합니다. 위대한 창조주께서 그토록 아름답게 만들어놓은 침실은 아름다운 커튼으로 둘러싸이고, 여러 가지 향수가 달콤한 냄새를 풍기면서 신랑신부가 엄숙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게 합니다. 신방이 준비되면 이제 신랑이 사랑하는 신부를 품에 안을 시간입니다. 그리고 신랑은 신부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조나단 실버타운, <씨앗의 자연사>에서 재인용.


누가 시인인지, 누가 식물학자인지 헷갈리지 않나요?

시인은 꽃이 진화한 역사를 설명하고 있고, 식물학자는 꽃가루받이와 수정의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각이 다른 두 글쓴이들의 공통점은 그래서 꽃을 본다는 겁니다.


린네의 글은 1730년 대학생 때, 지도교수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런 식의 표현은 금기였다네요. 그래서 식물학자들은 변태성욕자로 의심받곤 했대요. 


린네는 식물 이름을 지을 때, 여성 생식기에 나오는 명칭을 유난히 많이 사용해 "음탕하고 외설적인 린네의 정신"이라는 비난을 받았어요. 괴테도 학생들이 린네 사상의 이런 측면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우려를 표했어요.


하지만, 암술과 수술이 중심인 꽃의 섹스기관이 가진 특징은 린네의 식물분류의 구성 원칙이었고, 그 원칙의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유효하답니다.


사실 꽃은 식물들의 생식기관입니다.
암술과 수술은 인간으로 치면 성기인 거고요. 그들이 외부에서 만나는 순간이 수분(受粉), 껴안기 정도에 해당하고, 씨방 안에서 결합하는 순간이 2세의 잉태가 이뤄지는 수정(受精)입니다.


수술의 꽃밥에서 방출된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안착하고(受粉), 꽃가루관이라는 길을 만들어 씨방에서 합쳐지는 순간(受精), 정핵과 난핵 혹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다고 표현합니다. <쇠뜨기> 편에서 이미 등장한 단어입니다.


꽃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생식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거나 킁킁 냄새를 맡는 인간의 행위는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남사스러운' 일일 겁니다.


꽃병에 꽂은 꽃봉오리를 어루만져주면 꽃이 일찍 피고, 오래간다고 하죠? 이걸 인간이 베푸는 사랑에 식물이 반응한다고 대견스러워하는데요.
사실은 스트레스 때문에 일찍 죽기로 마음먹은 식물의 독기 어린 행위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꽃을 피우는 행위는 내가 죽기 전 후손을 남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거든요.
오래도록 피는 건 만나기 전에는 죽을 수 없기에 수분과 수정의 기회를 조금 더 오래 가지려는 간절한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고요.


대나무 꽃. 100년만에 한 번 꽃을 피운다고 해요. 벼과의 식물이기에 꽃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사진= 네이버 블로그

대부분 숲을 이루며 모여 사는 대나무는 수십 년에서 백 년에 한 번, 그것도 일제히 꽃을 피웁니다. 그런 다음엔? 모조리 한꺼번에 죽습니다. 그래서 대나무 꽃은 길조가 아닌 흉조로 여겨집니다.

그 뿌리를  머나먼 곳에 옮겨 심은 대나무조차도 동족들과 한날한시에 운명을 함께합니다.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이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고사하기 직전의 소나무는 평소보다 엄청나게 많은 솔방울을 맺는다고 하죠? 후손을 퍼뜨리기 위한 식물들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오늘 소개할 주인공은 정원이나 공원, 식물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돌단풍입니다.
이게 원래는 중부 이북지방에서 나는 자생식물이에요. 그러던 것이 관상용으로 많이 심어 흔한 꽃이 되었어요.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
물가의 돌틈에서 잘 자라요.

단풍나무를 닮은 잎이 나며, 돌 옆에서 자란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돌나리, 추엽초, 노호장, 장장포, 바우나리, 부처손으로도 불리네요.


돌단풍의 개화. 꽃봉오리는 분홍빛이지만, 꽃은 흰색으로 핀다.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꽃줄기는 곧게 서는데, 높이는 30cm 정도.
그 기상이 노송(老松)을 닮아 늠름해요.

소나무를 좋아하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는 풍문이 있지만, 저는 믿지 않습니다.

꽃은 백색 또는 옅은 홍색을 띠며 5월에 핍니다.
원뿔형의 취산꽃차례를 이루죠.
꽃대는 짧아요.
화관(花冠)은 지름이 1.2~1.5cm.
꽃잎은 5~6개이며 달걀모양 바소꼴로 끝이 날카롭죠.
수술은 6개. 꽃잎보다 조금 짧아요.

잎은 황록색 또는 연녹색이고 길이는 20㎝정도.
잎자루가 길고요. 단풍나무처럼 손바닥 모양으로 5~7개로 깊게 갈라집니다.
잎 양면에 털은 없고 윤이 나며 톱니가 있어요.

나무가 아닌 풀은 단풍 들기가 어려워요. 돌단풍은 가을에 단풍이 듭니다.
열매는 7~8월경에 달리고 익으면 2개로 갈라져요.

어린잎은 나물로 먹는답니다.
꽃말은 생명력, 희망, 숭고, 애교, 기품, 겸허

자생지가 점차 사라져 가는 식물 중 하나지만,
중국에서 묘목을 들여와 관상용으로 널리 심어요. 정원사의 솜씨가 좋으면 바위틈에 심어 제법 운치 있게 키워요. 자생지 환경과 비슷하게 해 주려는 세심함에서 나오는 솜씨인 거죠.
전체적인 모양부터 붉은 꽃봉오리와 하얀 작은 꽃.
들여다볼수록 아름다운 친구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은근히 좋아하는 색이 있지요?

저는 파란색 계통을 더 좋아하는데, 그 까닭은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자신이 꽃이라면 어떤 색의 꽃을 피우시렵니까? 좋아하는 색과 똑같나요, 아니면 다른가요? 왜 하고많은 색 중에 그걸 고르셨나요?

어느 질문에도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군요.


꽃은 꽃색을 선택합니다.

당연히 목표가 있지요. 

우선은 곤충들의 눈을 자극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초봄의 노란 꽃, 중간 봄의 붉은 꽃, 더러더러 흰 꽃.


꽃잎의 색깔은 주로 플라보노이드라는 물질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플라보노이드에는 2천여 가지가 있다는데요. 그중에서 안토시아닌 그룹은 붉은색, 보라색, 청색을, 카로틴이라는 색소는 노란색을 내는 물질이랍니다.

그렇다면 흰색의 꽃잎? 색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색소가 없는 세포가 빛을 반사하여 나타난 것이랍니다. 식물 입장에서는 흰색 꽃이 가장 경제적인 꽃인 셈이지요.

-차윤정 <숲의  생활사> 요약.


흰색 꽃은 경제적이다. 애써 색소 물질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물질이 아예 없기 때운이다. 사진 = 들꽃사랑연구회


꿀벌이 태생적으로 꽃을 좋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명백합니다. 꿀을 얻을 수 있고, 꿀의 재료가 되는 꽃가루를 얻어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이 꽃을 좋아함으로써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일부 진화심리학자들은 흥미로운 답을 제시합니다.

그게 꿀벌이 얻는 이익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꽃이 피면 머지않아 그 식물에 먹을 게 열린다, 즉 꽃은 수확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전령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보자면, 꽃에 보다 잘 이끌리는 사람, 나아가 여러 꽃들을 분간할 줄 알고 어디에서 그 꽃을 보았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꽃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 비해 훌륭한 먹이 사냥꾼이 될 가능성이 훨씬 많다는 거지요.


자연은 변함이 있나요, 없나요?

변화무쌍하기도 하고, 변함이 없다고도 합니다.

나 자신은 어떻습니까?

변덕쟁이이기도 하고, 고집쟁이이기도 합니다.


옛 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식물과 인간, 누가 옛 것이죠? 식물!

누가 누구한테 배워야 할까요? 인간이 식물한테!

 나중 기회될 때마다 이를 입증해 보이겠습니다.


“자연에 대해 무지한 만큼 자신에 대해서도 무지한 법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2024년 4월 16일

작가의 이전글 골목길 야생화 27 살갈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