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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밭골샌님 Apr 04. 2024

골목길 야생화 20 양지꽃

빛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꽃


양지꽃

어제 종일 내린 비로 그토록 기운차게 피어나던 벚꽃들이 한풀 꺾인 듯, 멀리서 바라다보이는 벚꽃동산의 색깔이 조금 우중충해졌어요.

오늘도 오후에 비가 예보되어 있고 주말 휴일까지 구름 낀 가운데 해가 들쑥날쑥한다고 하니, 엊그제처럼 덥기까지 했던 화창한 날씨는 당분간 아니려나 봅니다.


일요일에 버스나 지하철로 근교 산에 가서 소풍삼아 반나절쯤 돌아다니는 게 제 봄나들이의 전부입니다.

평일에는 반경 500m, 그러니까 40~50분 정도 걸리는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두어 차례 하면서 1만보를 걷습니다.


어제 내린 비로 우리동네 대표 백목련 꽃들이 담장 너머 아스팔트 길로 우수수 떨어졌다.


코스는 도심의 아파트 밀집 지역 사잇길, 나머지 코스는 단독주택 지역의 골목길. 그리고 현재 벚꽃이 한창인, 엎어지면 코 닿을 근린공원.

이 정도가 저의 하루 생활반경입니다.


 우리 동네 골목길 산책은 제게 두 가지 이로움이 있어요. 첫째는 동네 사정을 훤히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간 잘 버티고 있던 동네 슈퍼가 언제 문을 닫는지, 어디에 식당이나 치킨집, 카페가 새로 생겼는지 등등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요.

이걸 화제로 식구나 동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골목 경제의 심각성에도 공감하게 됩니다.

둘째로, 단독주택 지역의 개방된 정원이나 자투리땅 텃밭에 자라는 풀, 담장 너머 고개 내민 꽃나무, 공원 안의 식물 집단이 모두 것과 다름없다는 점입니다. 구역이라는 영역표시를 해놓지 않았을 뿐이지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어디엔 무슨 풀 무슨 나무가 있는지 훤해지게 됩니다. 발길 향하는 곳마다에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은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는 동력이 되지요.


동네 공원의 왕벚나무 꽃들. 전날의 화창한 날씨 덕분에 만개했지만, 종일 내린 어제 비로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동네 한 바퀴 산책의 대가는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였습니다. 인구 5만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한 발짝도 이 도시를 벗어난 적이 없었답니다. 그의 하루 일과표가 유명한데요. 아침 기상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의 일과는 분단위로 짜여 있었어요. 특히 오후 3시 30분에 시작하는 그의 동네 산책은 너무도 유명해서, 그가 지날 때 주민들이 시계를 맞출 정도였답니다.

그는 평생 단 두 번 일과표를 어겼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산에서 일정 구역을 딱 정해놓고 산책을 하며 관찰과 명상, 그림 그리기를 실천해 책으로 펴낸 분도 있어요.
<열두 달 숲 관찰 일기>의 저자 강은희.
풀과 나무의 한해살이를 관찰하며 일지를 작성하고, 자신이 그린 세밀화와 관찰 포인트 등을 담았지요.


저자가 관찰한 숲은 서울 성북구의 정릉 골짜기.
2km 정도의 산책길에서 만난 것들이 그 대상.
서울 살 때 이 책을 읽으며, 동네에서 20분쯤 걸어가면 나오는 곳이라 놀랐고요.
그토록 한정된 곳에서 그토록 많은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어요.


칸트의 동네 산책과 강은희 작가의 관찰일기.
눈여겨볼 탁월한 취미로 마음속에 꼽아둔 것이 오늘에 이르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일요일 식장산에서 만난 양지꽃.


오늘의 주인공은 양지꽃입니다.
그 이름처럼 언제나 빛을 그리워하고, 빛을 사랑하며, 빛을 향해 피어나는 꽃.
양지(陽地)에서 잘 자라 붙여진 이름이겠죠?
병아리들 양지꼍에 해바라기 하듯, 노란 꽃이 올망졸망 모여 피어요.
그 노란색이 너무나 강렬해 저만치에 한 송이만 피어 있어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 다가가보면 무리지어 피어 있어요.

겨울철 양지바른 쪽의 지표은 생각 이상으로 따뜻하다고 합니다.
통상 온도는 잔디밭 위에 설치된 백엽상 안, 지상 1.5m의 공기 온도를 말합니다. 이 온도와 지면 온도는 꽤 큰 차이가 있대요. 만일 부엽(腐葉) 즉 썩은 낙엽이 있는 곳이라면, 그 발효열과 부엽이 가두는 포화열로 온도는 더 올라간답니다.

이른 봄에 핀 꽃들은 겨울의 혹독하지만 그나마도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을 최대한 이용해 부지런을 떤 결과물입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적으나마 헤쳐나갈 가능성은 있겠고요. 그걸 발판으로 삼아 스스로 돕는 자, 그를 하늘이 외면할 수는 없는 거겠죠?

장미과 여러해살이풀이예요.
소시랑개비라고도 불리는데요.
끝의 잎이 삼지창 같은 쇠스랑을 닮아서였을 거라네요. 치자연(雉子筵)이라는 한자 이름도 있어요.
30~50cm로 자라는데, 옆으로 기기 때문에 땅꼬마죠.

뱀딸기 꽃과 색깔이나 모양이 비슷한데요.
뱀딸기꽃은 꽃받침이 꽃보다 크거나 같아요. 잎은 3장뿐이고요.
양지꽃은 잎이 많아요. 많게는 9개의 작은 잎이 깃꼴겹잎으로 납니다.
잎 길이는 1.5~5㎝, 폭은 1~3㎝.
양끝이 좁고 양면에 털이 있으며 타원형.


장미과는 꽃잎이든 꽃받침이든 5라는 숫자를 기본으로 한다. 매화, 앵도, 벚꽃 등의 꽃잎이 모두 5장이다.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꽃은 황색으로 직경은 1.5~2㎝.
꽃받침보다 꽃잎이 1.5~2배 정도 길어요.
줄기 끝에 취산꽃차례를 이루며 10개 정도 달립니다.
꽃잎은 5장. 끝이 오목하게 파입니다.
열매는 6~7월경에 길이 2㎜ 정도로 열려요.

양지꽃은 그 종류가 20 개쯤 된다네요.
나도-, 너도-, 솜-, 돌-, 물-, 누운-, 섬-, 세잎-, 은-, 민눈-, 제주-ᆢ.

소시랑개비 외에 애기양지꽃, 왕양지꽃, 좀양지꽃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네요.
영어명은 Dewberry cinquefoil.

어린순은 쓴맛이 없어 나물로 먹고요.
한방에서는 치자연(雉子筵)이라는 이름으로 소화제, 지혈제, 이질 치료제로 써요.
한국, 중국, 시베리아, 일본에 분포한답니다.
꽃말은 ‘봄’, ‘사랑스러움’.


양지꽃과 비슷한 뱀딸기 꽃. 노란 꽃잎 사이사이 녹색의 꽃받침 길이가 꽃잎과 비슷하거나 더 길다.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골목길 야생화>가 오늘로 20회가 됩니다.

이곳에 등장한 민들레, 산수유, 회양목, 생강나무, 복수초, 괭이눈, 꽃다지. 상당수 노란 꽃이었어요.


봄철에 일찍 피는 꽃 가운데는 유난히 노란 꽃이 많습니다.

이게 우연일까요?

생물학자들은 이런 의문에 답을 갖고 있습니다.

저마다 꽃잎  모양이 다르고, 꽃의 색깔도 다양한 것은 꽃가루받이, 즉 수분을 가능하게 해주는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노란색은 꿀벌의  눈에 가장 잘 뜨이는 색이래요.

실험에 따르면 벌은 붉은색과 검은색을 잘 구분하지 못하지만, 사람이 보지 못하는 자외광선은 볼 수 있답니다. 노란이른 봄부터 활동하는 벌이 좋아하니,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벌의 취향에 맞도록 진화했다는 겁다.


꽃 색깔은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다양합니다. 꽃가루 운반자인 곤충은 벌, 나비, 나방, 딱정벌레, 파리, 등에, 개미가 대표적입니다.

각각의 곤충에도 수십 종이 있으므로, 노란 꽃을 좋아하는 게 벌뿐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어요.

벌 또한 노란 꽃만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곤충이 먹고 마시고 싶어 하는 건 꽃가루나 꿀이니, 그 식성에 따른 연구는 또 다른 영역일 듯합니다.

꽃의 색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관한 의문에도 학자들은 대답을 갖고 있답니다.

그건 나중에 소개드릴 기회가 있겠지요.



"이 세상에 노을 진 하늘만큼 기품 있는 그림은 없다. 노을을 보기 위해서는 그 누구와 만날 필요가 없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생생히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정신은 인간사회로부터 멀어진다.
자신과 물질과의 관계, 또 자신의 영혼과 육체와의 관계를 알고 싶으면 산에 올라야 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산에 오르거나 산책을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이유  없이 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요.

인도의 성자로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도 영국에 체류할 때조차 도심을 걷는 산책자였습니다.


"간디는 매일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서 아침 기도를 올리고는 비가 오든 날이 개든 힘차게 산책한다. 그는 런던에서조차도 이런 산책을 해서 그를 경호하도록 배치된 형사 두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한 일도 있다."


걷기는 자신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하다는 걸 알리고 싶다는 데 방점을 둔 글이 되었네요.


2024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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