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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밭골샌님 May 03. 2024

골목길 야생화 35 쥐똥나무

억울한 이름이지만, 꽃향기는 일품인 나무


쥐똥나무

우리 산하의 나무나 풀이름들은 어떻게 붙여졌을까요?
'일정한 체계나 규칙은 없다'가 정답입니다.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것들, 즉 향명(鄕名)이 식물분류학이라는 체계 안으로 들어오면서 명칭이 통일, 즉 정명(正名)이 되었어요.


하지만, 세계의 생물학자들 사이에 통일된 이름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온 게 학명(學名)입니다. 로마제국 시대에 쓰이던 국제공용어인 라틴어를 중심으로 한 학명은 엄격한 규칙에 따라 정해집니다. 최초 발견자 또는 보고자의 이름을 붙여 그 업적을 기리기도 해요.


국가별 정명은 그 나라 안에서만 통용되니, 학명을 기준으로 볼 때는 이 또한 향명입니다.

진달래는 우리나라에서는 정명이고, 참꽃, 두견화 등은 향명입니다. 영어로는 Korean rosebay인데, 이 또한 향명이지요. 학명은 Rhododendron mucronulatum Turcz.


학명은 현재 어느 곳에서도 통용되지 않아 죽은 언어, 즉 사어(死語)인 라틴어를 주로 사용해요. 언어라는 게 보기보다는 변화무쌍해서, '아' 다르고 '어' 다르잖아요. 하지만 사어는 말 그대로 죽은 상태이니, 변함이 없습니다.


라틴어는 현재 일상적으로는 사용되지 않지만, 일부 전문 분야에서는 그 역사성, 정확성, 국제성 등으로 인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법률, 의학, 과학, 음악, 교육 등이 바로 그런 분야지요.


이분법 체계로 된 학명의 창시자격인 스웨덴의 카를 린네라는 사람은 라틴어 마니아였습니다. 자신의 스웨덴식 이름 린네를 '린나에우스'라는 라틴어식 이름으로 바꿀 정도였지요.


자, 이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유사종 가운데 특정 지역에서 나는 것들은 그 지역을 접두어로 붙이기도 합니다. 광릉요강꽃, 동강할미꽃, 남산제비꽃 등이 그런 경우지요.


꽃이나 열매 등 각 부위의 생김새 따라 붙여진 것들이 많습니다. 꽃봉오리가 붓을 닮은 붓꽃, 꽃이삭이 강아지 꼬리를 닮은 강아지풀, 꽃이 장구채 모양을 한 장구채, 해오라기를 닮은 해오라비난초.


별꽃, 처녀치마, 우산나물, 은방울꽃, 초롱꽃, 노루귀, 비짜루, 솜방망이, 애기똥풀, 소경불알, 용머리, 쇠무릎, 며느리배꼽ᆢ.
이게 모두 정식명칭들이에요. 전체적인 모습, 꽃, 줄기, 열매 등이 각각 이름 그대로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겼을까 궁금하다면 이미지 검색으로 확인해 보셔요.


쥐똥나무 열매. 여름을 앞두고 향기롭고 앙증맞은 꽃을 피우지만, 가을철에는 쥐똥처럼 생긴 열매를 맺는다. 이름은 바로 이 모습에서 얻었다.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오늘 소개하는 쥐똥나무는 열매가 쥐똥을 닮아서 붙여진, 간은 억울하다 싶은 이름을 가진 나무입니다. 가을철 타원형의 까만 콩 같은 열매를 맺을 때까지는 이름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윤기마저 없는 게 똑 쥐똥이거든요. 북한에서는 검정알나무라고 부른답니다. 이 열매로 차를 끓여 마시기도 한다니, 차마 쥐똥이라는 이름을 쓰기가 민망했을 성싶어요.


그렇다면 꽃은?
열매와는 반대로 순백색의 미니 초롱처럼 생겼어요.  하나의 크기는 2~7mm. 여러 송이가 원뿔모양으로 뭉쳐 피어도 4~5cm. 대신 꽃은 많아서 멀리서도 분간할 정도입니다.

여름에 접어들 무렵부터 꽃을 피우고, 꽃이 지면 열매를 맺기 시작해 가을에 까만 쥐똥과 비슷해집니다. 이제 막 개화하기 시작했으니 한동안 볼 수 있을 거예요.


각각의 꽃들은 1cm도 안 될만큼 작지만, 뭉쳐서 피어 나무를 수놓는다. 진한 향기로 근처에만 가도 느낄 수 있다.

쥐똥나무는 가뭄도 잘 견디고 공해에 강한 데다 공기 정화 기능까지 있다네요. 그래서 조경수나 생울타리용으로 많이 심어요. 산기슭이나 등산로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요. 주변에 경쟁하는 나무가 없으면 쉽게 군락을 이뤄요. 알아서 잘 크고 번식하니 조경수로는 더없이 좋겠지요.


도감식 설명 덧붙입니다.


원산지는 한국, 중국 북동부, 일본.

물푸레나무과 쥐똥나무속낙엽활엽관목

학명은 Ligustrum obtusifolium.

앞의 속명의 뜻은 '잡아매거나 묶는다, 단단하다'는 뜻이래요.


지역에 따른 향명은 개꽝낭, 개쥐똥나무, 검정알나무, 털광나무, 검종알나무, 귀똥나무, 꽝꽝넝,  백땅나무, 싸리버들, 남정실(男貞實), 백랍나무.

향명이 많다는 건, 우리와 가까이 혹은 여러 지방에 널리 퍼져 있다는 뜻으로 보면 되겠어요.


개화 시기는 5~6월.

흰색의 꽃이 가지 끝에 모여 달리고, 잔털이 많습니다. 꽃의 모양은 통 모양이고 끝이 4개로 갈라지며, 갈라진 조각은 삼각형이고 끝이 뾰족합니다.


작은 꽃이 모여 원뿔형의 총상꽃차례를 이룬다. 꽃 향기는 빼어나서 근처에 있으면 금방 알 수 있다. 사진 = 들꽃사랑연구회

는 2∼4m이고 가지가 많이 갈라지는데, 가늘고 잿빛이 도는 흰색. 어린 가지에는 잔털이 있으나 2년생 가지에는 없습니다.


잎은 마주나고 긴 타원 모양이며, 끝이 둔하고 밑 부분이 넓게 뾰족.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잎 뒷면 맥 위에 털.


열매는 둥근 달걀 모양이며, 10월에 검은색으로 익어요.

한방에서는 열매를 남정실(男貞實), 또는 수랍과(水蠟果)라 하여 약재로 써요. 강장, 지혈, 신체 허약에 효과가 답니다.


쥐똥나무와, 사촌인 광나무에는 초파리 비슷한 백랍벌레가 기생하는데요. 애벌레들이 분비하는 하얀 가루 물질이 가지를 하얗게 덮는데, 이것을 백랍(白蠟)이라고 한대요. 백랍으로 초를 만들면 밀랍으로 만든 초보다 훨씬 밝고, 촛농도 흐르지 않는답니다. 별명 중 하나인 백랍나무로 불리는 이유지요.


꽃말은 휴식, 억제, 좋은 친구, 강인한 마음.



쥐똥나무가 이제 막 개화하기 시작했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낮아 멈칫멈칫 수줍게 꽃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50 여 종, 우리나라에는 10 종이 넘게 있습니다. 왕-, 섬-, 버들-, 상동잎-, 산동- 등이 있고요. 4 계절 푸른 상록활엽수로는 둥근잎광나무와 제주광나무가 있습니다.


관목이라 키는 작은데요. 도심 속에선 머리를 단정하게 깎아, 우리 가슴 높이 정도로 가꿔요.

쥐똥나무를 두고, <궁궐의 우리 나무> 저자인 박상진 님은 '생울타리로 쓰이기 위해 태어났다.'라고 했습니다.


 꽃의 향기를 아찔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좋은 냄새가 나요. 아파트든, 학교나 큰 건물이든, 공원이든, 도로변이든 작은 화단이나 울타리가 있다면 꼭 눈여겨보시길 권합니다. 꽃향기에 익숙해지면, 코끝을 스치는 미세한 향기만으로도 쥐똥나무가 가까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우리동네표 쥐똥나무. 전지하지 않아 자연 상태로 자란다. 골목길을 진한 향기로 채워 금방 느낄 수 있다.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생태학자 에리슨 칼슨의 유고집에 나오는 말이래요. 자연은 머리 싸매가며 공부할 대상이 아니라, 그냥 느끼는 게 우선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이게 사실은 쉽지가 않습니다. 새로 만난 꽃과 나무는 이름부터가 궁금하고, 익숙한 것들에게조차 폰카부터 들이대는 게 습관이 되어 온전히 느끼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저 같은 사람을 위해 아일랜드의 한 수녀님이 적절한 가르침을 주시네요.

무언가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보아야만 합니다. 초록빛을 보고 그저 "정원에 봄이 왔구나"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나무나 꽃을 이해하고, 그 푸른빛과 노란빛이 소리처럼 생생하게 다가올 때까지 그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뭇잎과 꽃봉오리, 열매와 꽃송이 사이의 작은 침묵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시간을 갖고, 그들을 세상에 내보낸 고요함과 만나야 합니다."

- 스태니슬라우스 케네디, <영혼의 정원>, 이해인 수녀와 그 조카 이진 옮김.


■■ 무엇이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하지요? 자세히 본 뒤라야 말을 걸 수 있고, 예쁘다고 말할 수 있어요. 소통 부재의 시대,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다가가서 자세히 보지 않음이 그 첫째 원인이 아닐까요. 제일 야속한 건, 보지 않으면서도 본다고 우기는 행태입니다. 우리의 정치 현실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것만을 지적하자는 건 아닙니다.


나 자신, 나와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과의 소통은 원활한지 묻습니다. 아니라면, 자세히 보지도 듣지도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많은 걸 놓치고 사는 우리의 삶.

부부, 가족, 친구라는 아름다운 이름에 걸맞도록 아름답게 사는 건 참으로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차라리 쥐똥나무라는 아름다움과는 동떨어진 이름에도, 그 멋진 향기와 예쁜 꽃을 지니며 아름답게 사는 게 낫지 않을까요?


2024년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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