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밭골샌님 Mar 12. 2024

골목길 야생화 3 별꽃

하늘의 별이 꽃으로 환생하다

이른 봄 대표적인 난쟁이 꽃인 별꽃. 아직은 땅에 붙어 키가 3cm도 안 된다. 다 자라면 20 cm 정도!


요즘 산과 들에 피는 야생화 대부분은 난쟁이들입니다.

당연히 꽃도 작지요.

이웃한 다른 풀이나 나무들이 높이 자라 그늘을 드리우기 전에 번식을 해야 하니 높이 자랄 여유가 없이 꽃부터 피우는 겁니다.


땅을 기듯이 퍼져나가 영역부터 넓히고, 부지런히 꽃을 피워  후손들을 만들며 키웁니다.

나름 햇볕 쟁탈전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지요.


땅이 풀릴 때쯤 찾아오는 꽃샘추위에도 땅바닥에 가까운 쪽은 지열 때문에 상대적으로 좀 더 따스합니다.

당분간 땅꼬마로 살아야 할 이유인 거죠.

모든 식물에게 햇볕  혹은 햇빛은 성장의 열쇠입니다.


잠깐, 여기서 햇볕과 햇빛의 차이를 아시나요?

볕은 온도를, 빛은 밝기를 뜻하지요.

햇볕을 쬐면 따스하고, 햇빛을 쬐면 눈이 부십니다.

햇살은 또 뭔가요?

그건 해에서 나오는 빛줄기 또는 기운을 일컫는다는군요.

창문을 열면 쏟아지는 찬란한 햇살!


햇빛을 쬐면, 비타민D가 생성된다고들 하죠?

이건 왜 햇빛일까요?

빛을 분해해 보여주는 프리즘을 거치면  빛은 빨주노초파남보로 갈라져 무지개가 됩니다.

이 가운데 파란색의 파장이 바로 세로토닌이라는 기분 좋은 물질 생산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햇빛 좋은 날 걸어라!'

우울증 앓는 분들에겐 더없이 귀한 보약이라니, 그분들과 손잡고 걸어가자고 권유하는 건 그분도 나도 잘 사는 길입니다.


샛길에서 다시 가던 길로^^

쑥이나 냉이 같은 봄나물 종류는 산이 아니라 들이나 논둑이나 밭으로 캐러 나가죠?

햇볕온전히 받을 수 있는 곳이 들판이기 때문입니다. 초봄에 영양분이 많은 나물들은 사실 지난여름 혹은 가을부터 준비해 겨울에도 잠지 않았던 친구들이에요.


냉이나 민들레만 해도 겨우내 묵은 잎을 땅바닥에 넓게 펼쳐두고 햇빛을 받아 뿌리를 벋고 꽃 피울  양분을 만들었고요.

늘어져 얼었다 풀렸다를 반복하면서도 잎들은 땅에서 나온 지열을 가두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자란 나물들을 인간인 우리가 누구에게 뒤질세라 날름 캐다가 먹는 것이고요.


요즘 한창인 난쟁이꽃들은 별 같아요.

갈색 낙엽과 한 줌 녹색 풀들 사이로 고개를 내민 앙증맞은 꽃들은 지상으로 와서 꽃으로 환생한 별입니다.

오버한다거나 호들갑 떤다 생각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정확히 ‘별꽃’이란 이름을 가진 녀석을 소개함으로써 입증해 보죠.


별꽃. 꽃잎이 5장이지만 10장처럼 보인다. 토끼 귀처럼 귀엽다.


사진에서 보시듯, 별꽃은 생김새에 딱 어울리는 좋은 우리말 이름이에요.

꽃잎은 5개인데, 깊숙이 갈라져 10개로 보이죠?

꽃잎이 토끼 귀처럼 귀여워요.


석죽과의 두해살이풀.

밭이나 산길 가장자리, 도심의 양지바른 담장 밑, 한  뼘 텃밭 가장자리 따라 자랍니다.


전체적으로 연한 녹색.

여름에 다 자라면 높이 20cm 내외.

줄기에 한 줄의 털.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

길이 1~2cm, 비 8~15mm.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으나 때로 물결 모양.

꽃은 5~6월에 많이 피고 흰색.

꽃잎과 꽃받침은 5개.

외면에 선모(腺毛)가 빽빽.

수술은 1~7개이고 암술대는 3개.

열매는 삭과로 달걀 모양.


어린잎과 줄기는 식용.

민간에서는 전초(全草)를 피임, 젖이 나오게 하는 최유제(催乳劑)로 사용.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분포.

학명은 Stellaria media.

stellar는 별이라는 뜻의 라틴어.

영어명은 Chickweed.

병아리가 뜯어먹나 봅니다.


지역 따라 곤방부리, 곰밤부리, 곰방부리로 불리네요. 한자명은 번루(繁縷),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양에서 붙여진 건 아닐까 유추해 봅니다.

꽃말은 '추억(追憶)'.

잎을 반으로 가르는 선이 매우 또럿합니다. 뿌리로 향하는 물길 역할을 합니다.


지금부터는 일본의 잡초생태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관찰 및 연구 결과입니다.

그는 이 작은 별꽃이 생존을 위해 7가지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주장해요.

들어보시죠.


1. 줄기 끝에 꽃을 피우는 풀은 대부분 개화와 함께 성장을 멈춥니다. 별꽃은 줄기 끝에 꽃을 달고도 아래 줄기에 두 개의 나눔 가지를 계속 뻗음으로써 이를 피해 갑니다.


2. 줄기 한쪽에 뿌리를 향한 털이 한 줄로 나는데, 빗방울을 뿌리 쪽으로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3. 줄기 속에 질긴 심을 마련해 놓아, 밟혀도 죽지 않습니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도심 속이나 등산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


4. 꽃잎이 5장뿐임에도 10장처럼 보이게 하는 건, 벌레를 유혹하기 위한 위장 전술. 지름이 최대 8mm 밖에 안 되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풍성하게 보이려는 몸짓인 것이지요.


5. 비가 오거나, 벌레 유인 작전에 실패할 경우엔 저녁 무렵 꽃잎을 닫을 때, 자체의 암술과 수술이 접촉해 자가수분을 해버립니다.

자기 복제를 통해 후손을 남기는 게 무자식보다는 낫다는 거죠.


6. 처음에 꽃은 하늘을 향해 피는데요.

수정이 이뤄지면 바로 고개를 숙인답니다.

아직 수정하지 못한 다른 꽃들을 돋보이게 해 주기 위해서요.

이 자세로 열매를 다 익히고 나면 다시 고개를 들어요. 씨앗을 조금이라도 멀리 튕겨내려는 것이지요.

이는 제비꽃도 마찬가지.


7. 마지막으로 씨앗 겉에는 돌기가 잔뜩 돋아나 있답니다. 땅에 안착한 뒤 흙 속에 파고들기 쉬운 구조. 이는 또 사람의 신발 바닥에 딱 붙어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게 한다는 겁니다.


별꽃 열매와 씨앗. 이런 형태의 열매를 삭과라고 한다. 씨앗 표면이 오톨도톨하다. 출처는 사진 하단 블로그.


이상의 설명은 앞서 소개드린 이나가키 히데히로가 쓴 <풀들의 전략>에서 발췌했습니다. 별꽃의 생존 전략도, 그걸 면밀하게 관찰하고 해석한 저자도 참으로 대단하지요? 앞으로 이 <골목길 야생화>에 자주 등장할 겁니다. 타국 식물학자에게 커다란 빚을 지는 셈이지요.


땅에 떨어진 별, 별꽃을 읊은 두 편의 노래 소개합니다.


땅에 납작 엎드려 피는 꽃, 별꽃을 아시나요

나무들이 눈도 틔우기 전에, 우수 경칩도 오기 전에

볕 좋은 곳이라면 어디서건 순백의 별로 뜨는 꽃

어젯밤 하늘 쳐다보며 떨어져 다친, 사람의 눈빛

거친 세상 살아가느라 몸 구석구석 옹이 박힌 사람의 노래

다 모아  아름다운 문장으로 완성해 놓는

이 작은 꽃 경전을 당신은 읽어보신 적 있나요

우리보다 더 낮게 땅바닥 기면서도

우리 서러움을 별로 뜨게 하는 꽃, 별꽃.

- 배한봉, <별꽃>


"땅 위에도 별이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하늘만 보고 있다."

나카시마 미유키, <땅 위의 별>


별꽃은 인간처럼 무리 지어 니다.

만일 우연히 발 밑에서 송이 별꽃이 눈에 띄었다면, 그 자리에 딱 멈추어 살펴보세요. 주변이 온통 별꽃 천지일 테니까요.


이 봄에 만나는 별꽃 하나하나가 이 글 읽는 귀하에게 행운의 별들이 되기를 기원할게요.


2024. 3. 12



작가의 이전글 골목길 야생화 2 매실나무(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