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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밭골샌님 Apr 18. 2024

골목길 야생화 30 으름덩굴

짙은 보랏빛 꽃이 키워내는 한국바나나


으름덩굴


오늘은 한국에서 자라는 바나나, 으름덩굴을 소개합니다.
으름덩굴과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수로 무언가를 감아 올라가는 덩굴식물이에요.

산기슭이나 마을 어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지나치기도 쉬워요. 단풍나무처럼 꽃은 잎그늘에서 짙은 자갈색으로 피우는데, 가을철 열매는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학명은 Akebia quinata(Thunb.) Decne.
영어명은 Five-leaf chocolate vine.

황해도 이남 강원도를 제외한 중부, 남부, 제주도 지역의 산이나 길가, 가까운 계곡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한대요.


덩굴줄기는 5m 정도 자라요.
잎의 모양은 넓은 계란형 또는 타원형의 작은 잎이 5개(간혹 6개)가 달리는 손바닥 모양의 겹잎, 즉 장상복엽(掌狀複葉)입니다.


꽃은 4~5월에 잎겨드랑이에서 꽃대가 나와 자갈색으로 핍니다. 암꽃과 수꽃이 같은 나무에서 피는 암수한그루.
암꽃은 수꽃에 비해 숫자가 적은 대신 꽃의 크기가 커요. 수꽃은 크기는 작지만 암꽃에 비해 그 수가 3배 정도 많답니다.


큰 꽃이 암꽃. 작은 꽃이 수꽃이다. 수꽃이 암꽃보다 3배 정도 많다. 암꽃에 소요되는 에너지가 수꽃보다 많기 때문에 그 수는 적다.


3개로 갈라진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진짜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이 발달한 것입니다. 수꽃에는 6개의 수술과 6개의 퇴화된 암술이 있고 암꽃에는 3-6개의 암술과 6개의 퇴화된 수술이 있어요. 암꽃에는 수술이, 수꽃에는 암술이 퇴화되어 무늬만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9~10월에 자줏빛을 띤 갈색의 길쭉한 열매가 바나나처럼 2~4개씩 붙어서 아래로 매달립니다. 길이는 6~10cm. 팔월찰(八月札)이라고도 불리는 맛있는 과일이지요.
으름은 머루, 다래와 함께 산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과일로 꼽혀요.


으름덩굴 열매. 열대지방의 몽키바나나처럼 작고 귀엽다. 맛은 달콤하고 식감은 물컹하다. 코리언바나나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열매 모양은 열대지방에서 나는 작은 몽키바나나를 닮았답니다. 완전히 성숙되면 열매껍질이 벌어지면서 열매의 살인 과육과 종자가 드러나는데요.
과육은 물컹하고 맛은 달콤합니다. 작은 씨앗이 함께 씹혀, 바나나에 익숙한 우리에겐 낯설어요. 씨 없는 으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라네요.

지난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는 세계 각국의 나무를 그곳 올림픽공원에 심었다는데요. 그때 보낸 한국을 대표하는 5종의 자생수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으름덩굴이랍니다.


으름나무의 과육과 씨앗. 바나나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씨앗이 많은 으름이 낯설다. 사진= 꽃순이아빠님 블로그.


으름나무는 지방에 따라 불리는 이름도 많아요. 목통, 연복자, 임하부인(林下婦人), 통초, 어름나물넌출, 어름, 어름나무, 유름, 졸갱이줄, 목통어름.

꽃말은 재능, 유일한 사랑, 단 하나의 사랑.

봄에 나오는 어린잎은 나물로 하며, 열매의 형태가 바나나 모양이어서 ‘코리언 바나나’라는 별칭이 있답니다.


으름나무를 이용한 화장품이 개발돼 시판되고 있다네요. 보습성이 우수해 주름살 개선 효과가 있답니다.


한방에서는 뿌리와 줄기 말린 것을 목통(木通)이라고 해요. 이뇨와 통경 등의 약재로 사용하고요. 민간에서도 열매의 껍질을 말린 후 차로 이용하는데 숙취 해소에 좋다고 합니다.


줄기는 질기고 강해 바구니와 같은 생활용구를 만들고 삶은 물은 천연염료로 사용한답니다.

으름덩굴 씨앗은 머리를 맑게 해 앞일을 미리 알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하여 ‘예지자(預知子)’라고 부른답니다. 이는 암세포 억제 효과가 있대요.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목통(木通)은 정월과 2월에 줄기를 잘라 껍질을 벗기고 말려서 쓰는데 12 경락을 서로 통하게 한다. 그래서 통초(通草)라 한다.”라고 했대요.


어제 늦은 오후 산책 중 아파트 화단에서 만난 으름덩굴 꽃. 뜻하지 않은 곳에서 오랫만에 보니 더 반가웠어요. 부랴부랴 준비한 끝에 부족하나마 소개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암꽃의 크기가 수꽃보다 큰 반면, 숫자가 적은 건 식물계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열매를 만드는 암꽃에게 들어가는 에너지가 꽃가루만 만들면 되는 수꽃보다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이건 암수딴그루(자웅이주, 雌雄異株) 식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계에서는 통상 수컷보다 암컷이 더 우월한 지위를 갖습니다.

힘이 센 건 수컷이죠. 아름답기로도 수컷입니다.

가까이로는 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수탉이 암탉보다 힘도 세고 아름다운 깃과 벼슬을 갖고 있지요. 그래서 수컷이 더 우월한 것 같지만, 그 반대입니다.


왜 수컷이 암컷보다 힘이 세고 아름다울까요?

왜 수컷끼리는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고, 더 멋지게 보이려 노력할까요?

이유는 단 하나.

암컷에게 간택을 받아 자기 후손, 자기 DNA를 남기위해서입니다.


결국 암컷은  힘이 가장 센 놈, 가장 멋진 놈을 선택해 짝짓기를 허용해요. 그 녀석이 나이가 들어 힘이 떨어지면? 당연히 그놈을 물리친 젊은 녀석과 짝짓기를 합니다.

배우자 선택권은 암컷에게 있으므로, 암컷이 수컷보다 지위가 우월할 수밖에요.


이게 인간에게도 적용될까요?

당연합니다. 인간도 동물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진화심리학자의 설명을 들어보시지요.


생물학적 성이 단순히 생식 세포의 크기로 결정된다는 사실은 아주 놀랍다. 수컷은 작고, 암컷은 크다. 암컷은 비교적 정적이고 영양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반면, 수컷 배우자는 이동성이 강하다.


크기와 이동성의 차이 외에 양적 차이도 있다. 남자는 시간당 약 1,200만 개의 정자를 생산한다. 반면에, 여자의 난자는 평생 동안 약 400개로 고정되어 있고, 보충되지도 않는다.

이는 비용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엄청나게 비싸다는 뜻이다.

비용은 난자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수정과 임신은 여자의 체내에서 일어난다. 한 번의 성행위는 남자에게는 최소한의 투자밖에 요구하지 않지만, 여자에게는 아홉 달 동안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의무적 투자를 요구한다.


게다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수유 활동도 온전히 여자의 몫이다. 일부 사회에서는 그 기간이 최대 4년이나 된다.

암컷은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수유하고 양육하고 보호하는 아주 소중한 생식 자원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것을 아무렇게나 낭비하지 않는다.


진화 역사에서 여자는 섹스를 한 결과로 큰 투자를 하는 모험을 무릅썼기 때문에, 진화는 배우자를 까다롭게 고르는 여자를 선호했다.

- 데이비드버스, <진화심리학>에서 요약.


위의 요약문 끝의 '진화는 배우자를 까다롭게 고르는 여자를 선호했다.'는 뜻은 남자보다 여자가 진화적으로는 더 우월하다는 뜻이겠죠?.

다음의 인용문은 우리가 꽃을 보아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식물의 생식기관인 꽃을 관찰함으로써 진화과정의 합리성을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서 자연의 모든 현상도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약업신문, <권순경 교수의 야생화 이야기>



■■ 오늘로 저의 <골목길 야생화>가 30회나 되었습니다. 6 주 동안 한 주에 5 편의 글을 올렸어요. 치밀한 계획도 없이 연재를 시작하고는, 단거리 경주처럼 풀 스피드로 달렸네요.

컨셉도 포맷도 들쑥날쑥, 질과 양도 들쭉날쭉이었습니다. 심야에 부랴부랴 올린 글을 아침에 읽을 때면 부끄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모든 게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힘에 겨웠습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뿌듯했어요. 부족한 저를 부축해 주고 격려해주신 많은 분들 덕분입니다. 그간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이별사를 쓰는 건 아닙니다.

첫날부터 오늘까지 글쓰기 습관을 들인다는 뜻에서 숨찬 단거리 경주를 해왔으니, 앞으로는 숨 고르기가 가능한 장거리 경주로 전환하고자 합니다.

정신없는 가운데 봄을 보내고, 온갖 생물이 무성한 여름을 앞두고 있네요.

다음 주부터는 밤새다시피 하지 않고, 쉬엄쉬엄 가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하시기를ᆢ.



2024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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