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온 마을이 함께 키워야 한다."는 권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이는 온 마을이 함께 키워야 한다’는 말은 보통 돌봄을 나누자는 의미로 자주 쓰이지만, 사실 그 말에는 아이에 대한 훈육과 예의 지도까지도 함께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것까지 수용할 준비가 된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장 나부터도 그 말 앞에서 움찔하게 된다.
공공장소에서 내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다른 어른이 조심스럽게 지적하거나 훈육에 대해 한마디 했다고 해서 곧바로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건 옳지 않다. ‘함께 키우는 사회’란, 아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뿐 아니라, 그 아이가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예의와 책임을 배울 기회도 받아들이는 사회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현실은 조금 달랐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말하면서도, 정작 아이가 사회적 책임을 배우도록 훈육하는 일에는 소홀한 경우를 많이 봐왔다. 권리는 말하지만, 책임은 피하는 모습들. 그게 낯설지 않게 느껴질 정도다.
사실 이건 누구를 비난하려는 얘기가 아니다. 누가 떠오른다거나, 구체적인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 사회가 권리를 말하는 데는 익숙해졌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을 자연스럽게 감당하고 즐기는 연습은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나도 예전에 노키즈존인 줄 모르고 어느 카페에 갔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괜히 눈치도 보이고 마음이 서운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로 인한 업장의 매출이나 평판 또한 사장의 몫이다. 노키즈존 운영으로 가게의 의도한 톤앤매너가 유지하는 걸 선택하는 건 사장의 전적인 자유다.)
이 감정과 이 판단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공존’이라는 단어가 감정적인 호소만으로는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존이란, 누군가의 권리가 다른 누군가의 책임 위에만 서 있지 않도록 서로의 자리를 조심스럽게 살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