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과 현실 사이의 작동방식
예술지원 논의를 살펴보면,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만큼 이상화된 문구도 드물다. 영국 예술위원회의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오랫동안 예술계가 지향해야 할 원칙처럼 반복되어 왔다. 예술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메시지이자, 관료적 개입에 대한 통제 장치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문장을 조금만 밀어보면 사실상 해결되지 않은 모순들이 드러난다. 손이상이 지적했듯이, 지원 자체가 이미 간섭의 형식을 띠고 있다. 누군가를 선정하는 순간 누군가는 탈락하고, 어떤 장르는 제도적 승인 아래 들어오고 다른 시도는 기준 밖으로 밀린다. 지원은 간섭을 제거한 상태에서만 가능한 행위가 아니라, 애초에 간섭을 포함한 구조적 기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둘을 분리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너무 오래 머물러 왔다.
문제는 이 착시가 한국의 생태계에서는 더 강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공공지원에는 항상 공공재원 사용을 둘러싼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이 붙는다. 예산이 어디에 쓰였는지 기록하고, 결과를 보고하는 기본 절차는 예술이어서가 아니라 공공이기 때문에 요구된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내부에서는 이 당연한 절차가 종종 ‘왜 굳이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예술의 특수성을 이유로 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 질문이 예술계 울타리 안에서만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예술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공공지원 영역에서는 정산을 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비상식이다. 연구비를 받는 학자도, 복지사업을 수행하는 비영리단체도, 각종 공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민간 기관도 동일한 요구를 따른다. 이들에게 정산은 불합리한 간섭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다. 예술만이 이 상식에서 예외가 되고자 한다면, 그 예외를 가능하게 만드는 설득과 설명이 필요하다. 정산을 거부하는 감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을 공공의 합리로 전환하려는 성의는 지금까지 축적되지 않았다.
예술성과 행정성의 충돌은 여기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행정은 일관성과 형평성을 전제로 운영되며, 예술은 다양성과 실험성을 전제로 한다. 이 두 속성을 동시에 품은 제도는 결국 ‘기획서’라는 중간 지점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행정은 사전에 검증 가능하고 문서화될 수 있는 근거만을 다룰 수 있고, 예술은 대부분 그 문서에 담기지 않는 영역에서 의미를 만든다. 그 결과, 기획서를 잘 쓰는 예술가와 행정 언어에 능숙한 기획자가 상대적으로 유리해지는 것은 개인의 기량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필연이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어느 순간 ‘지원 친화적인 예술’이 등장한다. 공공이 강조하는 의제나 키워드와 쉽게 결합하는 작업은 문서에서 설명 가능하다는 이유로 선택되고, 반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실험적 시도는 공모 구조의 뒤편으로 밀려난다. 이것은 누군가의 오판이 아니라 예술성과 행정성이 조우할 때 피할 수 없는 결과다.
“지원금 없이 자생하는 창작 생태계”에 대한 기대도 종종 제안되지만, 그것 역시 구조적 해법이 되기 어렵다. 몇 해 전 공공지원 없이 축제를 만들겠다며 모금을 성공시킨 기획자가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발적 사건이었다. 매년 반복 가능한 모델이 아니라 공동체의 감정 노동과 관계 자본을 동원해야 하는 방식이었다.
결국 질문은 단순하다. 지원이 예술 생태계에 어떤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가 어떤 관계를 재생산하는가.
간섭 없는 지원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간섭의 부정이 아니라, 그 간섭이 어떻게 최소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투명하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태도다. 선언은 오래되었지만, 우리가 바라봐야 할 지점은 여전히 그 선언의 바깥에 있다.
예술은 자유를 전제로 하지만, 그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언제나 비자유적이다. 행정은 형식과 책임을 필요로 하지만, 그 목적은 통제가 아니라 공공성의 유지다. 이 둘이 만나는 곳에서 생기는 긴장과 충돌을 억지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 충돌이 만든 구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비로소 새로운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아마도 우리가 다시 꺼내야 할 문장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이쪽에 가까울 것이다. 지원은 간섭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간섭이 어떤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지 끝까지 바라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