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채의 무게와 오래된 세제의 프레임
상속세를 둘러싼 논쟁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제 개편안이 나올 때마다 “부자 감세”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호출되고, 그 뒤에는 늘 비슷한 구도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어떤 제도든 그 제도가 작동하던 시기의 조건이 달라지면, 그 제도가 겨냥하던 대상 또한 자연스럽게 변한다. 우리는 오래된 기준을 오늘의 삶에 끼워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질문을 조용히 다시 꺼내보아야 한다.
상속세 공제 기준이 마련된 해는 1997년이다. 그 시기에 설정된 배우자 공제 5억 원과 일괄 공제 5억 원은, 당시의 경제 규모와 주택 가격과 물가를 고려한 결과였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의 시간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가격은 20년 넘는 기간 동안 거의 다른 차원의 숫자가 되어버렸고, 국민 자산 구조의 대부분이 주택 형태로 고착화된 것도 이미 오래다. 그런데도 상속세 공제 기준만큼은 1990년대 후반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오늘날 15억~20억 원대의 아파트는 어떤 의미일까. 과거의 감각으로는 “부자”의 상징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지금 이 가격대의 주택은 서울의 평범한 학군, 평범한 역세권, 평범한 대단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평범의 의미를 오독하지 않기를 바란다.) 집을 가진 사람이 매달 수천만 원의 소득을 벌거나, 복잡한 자산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는 자산가라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많은 경우 이 주택은 “오랫동안 살아온 한 채의 집”이며, 소유자의 연령은 은퇴를 앞두거나 이미 은퇴한 세대일 때가 많다. 결국 “18억 원 아파트를 가진 가구는 이미 충분한 부자”라는 말은, 오늘의 중산층이 떠안게 된 구조적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자산의 구성이다. 상속 재산의 대부분은 비유동성 자산, 다시 말해 현금으로 바꾸기 어렵고, 바꾼다 해도 삶의 기반을 흔드는 형태의 자산이다. 집 한 채가 전부인 가구에게 상속세는 일종의 ‘현금 요구서’다. 집을 팔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고, 집을 팔지 않기 위해서는 대출을 더 얹어야 한다. 사설이 말하듯 “18억 원짜리 집인데 현금이 왜 없겠는가”라는 질문은, 지금 이 사회의 소득·자산 구조를 올바르게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어쩌면 “현금이 없기 때문에 집 한 채만 남은 것”이라는 설명이 훨씬 더 정확하다.
그렇다면 세제 개편을 둘러싼 논쟁에서 무엇을 먼저 묻는 것이 공정할까. 세금이 줄어드는지, 세수가 빠져나가는지, 특정 소수에게 유리한지, 이런 질문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살펴야 할 것은 제도가 누구를 대상으로 설계되어 있었고, 지금은 그 대상이 누구로 바뀌었는가 하는 문제다. 상속세 공제 기준이 25년 넘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동안, 상속세의 사실상 대상은 자연스럽게 ‘중산층’으로 이동했다. 단지 제도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대상만 바뀌어 간 것이다.
상속세가 부의 대물림을 억제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의 작동 방식은 이론과 다르다. 규모가 큰 자산가일수록 더 정교한 절세 구조를 갖추고 있고, 각종 회피 수단에 접근할 수 있다. 반면, 제도에 그대로 노출되는 사람들은 별다른 설계 없이 살아온 평범한 가구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속세는 체계적인 자산 이전 구조를 가진 집단이 아니라, 그 구조를 갖추지 못한 중산층에게 더 즉각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공제 기준을 현실화하는 조치를 ‘부자 감세’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공제를 확대한 만큼 세수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단순히 국가 재정의 손실이라고만 보아야 할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과세 기준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세금을 ‘정상화’하는 과정이라면, 이 비용은 감세라기보다는 교정에 가깝다. 마치 과거의 기준이 지금의 삶을 억지로 누르는 압박을 약하게 조정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한겨레 사설이 말하듯 자산 불평등은 분명 심화되고 있다. 이 부분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해법이 “기존 그대로의 상속세 구조 유지”인지에 대해서는, 더 섬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지금의 상속세가 실제로 억누르고 있는 것은 ‘대물림을 위한 자산 전략’보다, 집 한 채를 기반으로 살아온 가구의 불확실성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질문은 하나로 정리된다. 상속세의 기준은 오늘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문제는 세금을 줄이느냐의 선악 문제가 아니라, 틀어진 기준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어떤 균형과 관점을 취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뀐다. 그 질문 앞에서 “18억 원 아파트면 부자”라는 문장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에겐 18억 아파트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