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망생 성실장 Feb 02. 2024

이혼하지 않는 이유 3. 설거지를 한단다

얼마 전, 병원에 치료를 받고 글을 썼다.

당연히 회사에서 ㅋㅋㅋ

남편 사장님이 갑자기 방에 들어와서 다른 탭으로 화면을 옮겼는데

탭 위에 제목을 들키고 말았다. [ 이혼해야 하는 이유 - 설거지 를 말이다. 


남편 사장님은 

"이혼해야 하는 이유 같은 거나 보지 말고, 이혼하지 않는 이유나 찾아봐. 시간 있으면 평생교육사 공부나 해!"라고 잔소리하고 나갔다.


남편은 내가 브런치를 하는 것을 알지만, 굳이 읽지 않고, 나도 읽기 않기를 바란다. 

그가 보면, 이렇게 편하게 글을 쓰지는 못할 것 같아서이고, 그는 자기 뒷담화 하는 것을 느끼기에,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싶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제목을 딱! 들켰으니! 

이혼을 하고 싶지만, 일단 최대한 이혼을 막고 싶은 내 현재 마음으로는, 들킨 것이 시원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랬다.


그날 저녁, 말 나온 김에 정리를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남편한테 "이렇게 된 김에, 설날에 어떡할 거야? 내가 시댁에 갈까? 말까?"라고 물었더니

남편이 "가야지. 그리고 내가 설거지 다 할게, 너는 앉아있어"라고 했다.

"시어머니께서 또 소리 지르고 하면?"

"그까짓 것 다 신경 쓰지 마. 내가 하면 되는 거야. 너도 시댁에 가고, 나도 친정에 가고 하자. 장모님께서 전화 엄청 하셨어. 며느리가 시댁에 안 가면, 처갓집에도 오지 말라고, 잘해주라고, 오죽하면 마누라가 명절에 시댁에 안 가냐고, 내가 잘할 께, 내가 알아서 할게, 가자"라고 했다. 


마음이 매우 푸근해졌다.


정말, 내가 결혼 15년 만에 소리소리 지르면서 집안일 하나 시킨 것은 숟가락 놓고, 물 떠놓는 것뿐, 본인 먹은 컵 하나 씻은 적 없고, 먹은 것 뚜껑 덮어 놓는 것도 못하는 사람이다.

아예 집에 있질 않은 사람이니 방법이 없었다. 


그저, 애들한테 아빠도 집안일을 하긴 한다는 것을 보여줄, 그리고 며느리가 종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상징적인 명절 설거지 하나 

그 당연한 것을 이루는데 이렇게 전투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야 이유가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남편이 기특했다.

( 고맙지는 않다. 당연한 거니까. 단지 성장했다는 점에서 기특한 것이다 )



***


지난번 상담 때, 의사 선생님이 1주일 단위의 치료를 2주로 늘리자고 했다. 약을 열심히 먹은 결과일까. 브런치에 일지를 쓴 결과일까. 월급을 받고, 직원이 일손을 덜어준 결과일까 모르겠지만.. 덕분에 시간도 많고, 이렇게 그리고 쓰고, 일단 내 정신건강이 좋아지고 있으니 무조건 좋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40126 - 9번째  치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