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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Feb 14. 2024

240213 - 10번째 치료

2주의 텀을 두고 받은 진료이다.


상담이 아니고 진료라고 하는 말이 와 닿는 시간이었다. 


약을 잘 먹었는지. 삶에서 다른 점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그간 큰 일이 있었는지 간단히 짚고 진료가 끝난다.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


"약을 먹는다고 해서, 겉으로 좋아진다고 해서, 아직 땡땡님 안의 불안이나, 힘듦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약을 통해, 정상적인 일상을 회복한 후에, 객관화를 시켜서 내 문제의 근원을 찾아야 하는데요. 아직은 그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안 하고 있을 뿐입니다.

때가 되면, 가족, 남편, 내 성향 등 깊이 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치료하는 순간이 올 것이고 그때 힘들 수도 있어요, 지금 겉으로 감정기복등이 좋아졌다고 해서, 다 좋아진 것은 아니고, 치료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천천히 각오를 다지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들었다.


대뜸 내 이야기를 줄줄 읊는 다고 치유가 안되는 것은 작년에 100만원 상담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40년의 인생의 힘듦을 어찌 몇 시간만에 해결이 될까.

그렇다고 약이 그 기억들을 잊게 해주거나, 나와 가족, 남편 등과의 관계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님도 분명하고 말이다. 


어쨌던 그런 치료의 과정에서, 일단 나는 만족한다.


큰애에게 뽀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고, 둘째에게 욕을 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을 차렸고,

남편이 이뻐보이고, 잠자리도 요구할 만큼 숨어있던 애정도 찾았으니 말이다.


이번 설날에는 큰 일은 없었다. 차례가 없어졌고, 그냥 양가에 가서 차려주는 사주는 음식 먹고, 세벳돈만 받아왔으니 싸울일도, 힘든 일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명절에 설거지를 남편을 시키는 이유가

단순히 힘들어서가 아니라, 남여펑등 페미니즘 사상에 의한 것임을 "가족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징징 대니 안시키면 그만이다" 로 끝나는 형국이 답답하다.


남편은 좋다고 어깨춤을 추지만

나도 좋다고 박수를 쳤지만

김이 빠진다


나는 언제고 페미니즘 투사가 되고 싶은데. 기혼여성의 페미니즘 투사가 되기는 이렇게 힘들구나 싶다.

내 딸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나는 이러다 그냥 죽고 말겠지 싶어 조금은 서글프지만.

아직 남은 생이 있으니, 오늘 할 일을 하는 것으로 살아야겠지.


오늘도 약을 잘 먹었다. 

10번째 진료 후, 2주 뒤에 진료를 잡을 만큼 호전되고 있다.

그것으로 된 것이다.

잘 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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