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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Mar 30. 2024

240329 - 13번째 진료

식세기를 사세요.

지금 활기를 주는 약을 3알이나 먹고 있어요. 그런데도 평범한 활력인 거예요.

물리적으로 하는 일이 너무 많고, 힘들다는 거예요. 가사도우미도 부르고, 식세기, 로봇청소기 다 사세요. 


***


이번주 의사 선생님의 처방이었다.

여러 증상이 좋아지고,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어서, 심지어 글을 쓸 만한 이벤트도 없을 정도로 참 하루하루 살만하긴 했는데, 단지, 잠을 좀 많이 자고, 곧 4월에는 일이 밀려들어올 예정이라는 내 말에,

의사 선생님은 잠으로 회피하고 있다면서, 해결 방법으로, 가전제품을 들이기를 추천해 준 것이다. 


흠... 남편이 계속 식세기를 들이자고 할 때는

"지는 생전 설거지도 안 하면서, 남이 보면 지가 설거지 한 번이라도 하는 줄 알겠구먼. 설거지로 스트레스받는 것은 나뿐인데, 왜 지가 설거지 기계를 돈을 쳐들여서 살려는 거지? 나한테 용돈 줄 돈은 없고, 식세기 살 돈은 있나? 맨날 돈 없다고 힘들다고 하면서, 왜 저거 살 돈은 있나 보지? 그 돈 나한테나 좀 주지"

하는 생각으로, 말은 안 하고, 그냥 안 산다고 했었다.


식기 세척기를 사기 싫은 이유는

1. 6인용밖에 둘 자리가 없는데. 4인 가족이 6인용 사봤자. 설거지 거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3분의 1 정도만 도와주는 꼴이 될 것이라는 점 

2. 애벌 설거지 하는 김에, 손을 빠닥빠닥 닦아버리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는 점

3. 소음과 2-3시간 걸리는 시간이 별로 인 점 

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무려 의사 선생님이 "10분이라도, 20분이라도 도움 받으세요" 라며, 식세기를 사라고 설득을 해주니. 진짜 살까 하는 생각이 들긴 든다.


남편에게 말하니, 본인 말은 안 듣고, 의사 샘 말만 듣는다고, 삐쭉대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기회에 사라고 한다. 


부엌도 좁고... 3분의 1의 도움을 위해 몇십만 원을 쓴다는 것이 주저된다..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


의사 선생님한테는 말할 시간이 없어서 말을 못 했지만.

요즘 남편이 이상하게 애정표현을 한다. 이제야. 지나가는 애를 보면서 울컥하는 나에게 "그때 옆에 못 있어줘서 미안하다. 당신 고생 많았다"는 말을 하지 않나. 

내가 눈을 부라리면 두 손을 공손하게 배꼽 앞에 두고는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잘하지 않나.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나.

남사스럽게 딥키스를 요구하지 않나. 


자꾸 한 이불을 덮고 자자고 하지 않나. 


희한하다. 왜 저러지? 불편하게... 

그래도 내게 선택지는 남편밖에 없기에 그런 점에서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낄낄 거리며 즐기기도 한다. 


연애도 짧았고, 신혼도 짧았고,

남편과 만난 14년 동안, 데이트 나 야한 거나, 뭐 즐거운 기억보다는

저 사람 죽으면 보험금 얼마 나오나 계산하고, 이혼하면 나는 뭐 먹고살지 하는 생각한 시간이 훠~얼 씬 많았기에 


이제 다 늙어서야 다가오는 남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다.

힘들고 외롭고, 괴로웠을 때 지나서,

다 늙어서, 축 처진 가슴 안고 있는 시든 나에게 오면 어쩌자는 건지...


그나마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이혼이나 사별보다는 사람은 착하니, 친구로 늙어 죽는 것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남편이 어떤 생각으로 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나도 긍정적으로 대처하도록 노력해야겠지 

어느 쪽으로 생각해도, 좋은 변화는 맞으니까. 


***


약을 이번에는 3주 치를 주셨다. 그만큼 내가 일상적이고 평범해지고 있다는 뜻이리라. 

모든 것이 나쁘지 않다.

이제 "좋다"라고 말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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