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지금 너는 피곤하니 좀 쉬어라, 지금 너는 배고프니 밥을 먹어라, 지금 너는 아프니 약을 먹어라 하며 남편의 컨디션을 살피고, 관리하는데, 남편은 어쩜 단 한 번을 일주일 내내 일했으니, 너는 오늘 하루 쉬어라 라는 말 한마디를 안 하지? 저 사람은 정말 내가 로봇인 줄 아나? 어쩜 단 한 번을 쉴 때가 되었다. 쉬어라. 이맘때쯤 휴가를 가라라는 등의 말을 한 번을 안 할까?"
라는 생각이 뾰족하게 나를 찔렀다.
토요일 낮 1시였다.
10시부터 하루종일 애들 먹을 것을 해놓고, 출근을 위해 막 샤워를 하고 나온 참이었다.
아픈 생각이 나를 콕 찌르는 통에 갑자기 화가 불끈 났다.
아.. 그러고 보니 약을 2-3일을 안 먹었었다.
사무실 2에 신규로 투입되면서, 완전 초짜 상태로 일을 배운 일주일이었다.
일주일간 밥을 딱 1번만 했고, 다 어떻게 굶지 않고 애들이 버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거의 매일 밤 12시에 들어갔다.
애들이 일찍 오라고 해도 남편은 옆에서 일찍 집에 가라고 단 한 번을 말을 안 했었다.
일에 미친 사람,
일이 즐거움이고, 생활이고, 가족을 위한 최선의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지만
당신의 목표를 이뤄주기 위해.
당신의 비서이자, 직원이자. 당신의 가정에 대한 의무를 모두 내가 짊어지고 있으니
저녁이 되면 애들 곁으로 나를 보내줘야 할 텐데
애들을 위한 길이라며, 나를 집에 보내주지 않는 남편이다.
그래도 화가 나지는 않았었다.
조금 피곤하고,
애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화가 날까?
그것도 애들에게 미안해서도 아니고,
"직원이든 부인이든 어쩜 쉴 날을 챙겨줘야 한다는 본인이 해야 할 일을 그렇게 까맣게 신경을 안 쓰고 살 까?" 하는 섭섭함으로 화를 내다니
얼른 정신과 약을 먹었다.
이성적으로 지랄을 하고 싶었지
감정적으로 병자로 지랄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
약을 먹는다고 화가 바로 가라앉지는 않는다.
그냥 나 스스로 이성을 부여잡도록 해주는 플라시보 효과인 듯
일단 출근을 했다.
어떻게 어떻게 오늘의 할 일을 했다.
평소라면 토요일에 9시까지 11시까지 일을 할 테지만
오늘은 7시에 들어가리라.
가서 드러누워 잠을 자리라 되뇌며
감히 비싼 택시를 탔다.
***
사무실 1에 와서 남편사장을 보니
저 사람도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피곤해 쩐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니 또 불쌍하다.
나는 사실 꿈이 매우 작고, 그저 하루 벌어 하루 살고, 넷플릭스나 보며 뒹굴거리는 것이 삶의 목표인 사람이다.
그런데 남편은 꿈이 크고, 본인은 물론 그것이 우리 아이들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온 힘을 다해 매일매일 고3처럼 달리고 있다.
그래서 돕고 싶은 것이다. 김연아를 응원하고, 박찬호를 응원하고, 막 열심히 하는 사람 보면 당연히 돕고 싶은 것처럼, 남편사장을 그냥 돕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내가 쪼그라들면 안 될 텐데 그래서 정신과 약을 먹는 것일 텐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암튼 열심히 먹던 약을 2-3일 안 먹으니 바로 "나쁜 생각 가시가 날 건드린다"
일단 열심히 약을 먹어야지
의사 선생님을 믿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