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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Apr 13. 2024

남편은 내 상황이 궁금은 할까?

나는 항상 "지금 너는 피곤하니 좀 쉬어라, 지금 너는 배고프니 밥을 먹어라, 지금 너는 아프니 약을 먹어라 하며 남편의 컨디션을 살피고, 관리하는데, 남편은 어쩜 단 한 번을 일주일 내내 일했으니, 너는 오늘 하루 쉬어라 라는 말 한마디를 안 하지? 저 사람은 정말 내가 로봇인 줄 아나? 어쩜 단 한 번을 쉴 때가 되었다. 쉬어라. 이맘때쯤 휴가를 가라라는 등의 말을 한 번을 안 할까?"


라는 생각이 뾰족하게 나를 찔렀다. 


토요일 낮 1시였다.

10시부터 하루종일 애들 먹을 것을 해놓고, 출근을 위해 막 샤워를 하고 나온 참이었다.

아픈 생각이 나를 콕 찌르는 통에 갑자기 화가 불끈 났다. 


아.. 그러고 보니 약을 2-3일을 안 먹었었다. 


사무실 2에 신규로 투입되면서, 완전 초짜 상태로 일을 배운 일주일이었다.

일주일간 밥을 딱 1번만 했고, 다 어떻게 굶지 않고 애들이 버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거의 매일 밤 12시에 들어갔다. 

애들이 일찍 오라고 해도 남편은 옆에서 일찍 집에 가라고 단 한 번을 말을 안 했었다.

일에 미친 사람,

일이 즐거움이고, 생활이고, 가족을 위한 최선의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지만

당신의 목표를 이뤄주기 위해.

당신의 비서이자, 직원이자. 당신의 가정에 대한 의무를 모두 내가 짊어지고 있으니

저녁이 되면 애들 곁으로 나를 보내줘야 할 텐데

애들을 위한 길이라며, 나를 집에 보내주지 않는 남편이다. 

그래도 화가 나지는 않았었다.

조금 피곤하고,

애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화가 날까?

그것도 애들에게 미안해서도 아니고,

"직원이든 부인이든 어쩜 쉴 날을 챙겨줘야 한다는 본인이 해야 할 일을 그렇게 까맣게 신경을 안 쓰고 살 까?" 하는 섭섭함으로 화를 내다니 


얼른 정신과 약을 먹었다. 

이성적으로 지랄을 하고 싶었지

감정적으로 병자로 지랄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


약을 먹는다고 화가 바로 가라앉지는 않는다.

그냥 나 스스로 이성을 부여잡도록 해주는 플라시보 효과인 듯 


일단 출근을 했다.

어떻게 어떻게 오늘의 할 일을 했다. 

평소라면 토요일에 9시까지 11시까지 일을 할 테지만

오늘은 7시에 들어가리라.

가서 드러누워 잠을 자리라 되뇌며

감히 비싼 택시를 탔다. 


***


사무실 1에 와서 남편사장을 보니

저 사람도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피곤해 쩐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니 또 불쌍하다.


나는 사실 꿈이 매우 작고, 그저 하루 벌어 하루 살고, 넷플릭스나 보며 뒹굴거리는 것이 삶의 목표인 사람이다.

그런데 남편은 꿈이 크고, 본인은 물론 그것이 우리 아이들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온 힘을 다해 매일매일 고3처럼 달리고 있다. 

그래서 돕고 싶은 것이다. 김연아를 응원하고, 박찬호를 응원하고, 막 열심히 하는 사람 보면 당연히 돕고 싶은 것처럼, 남편사장을 그냥 돕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내가 쪼그라들면 안 될 텐데 그래서 정신과 약을 먹는 것일 텐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암튼 열심히 먹던 약을 2-3일 안 먹으니 바로 "나쁜 생각 가시가 날 건드린다"

일단 열심히 약을 먹어야지

의사 선생님을 믿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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