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망생 성실장 Apr 06. 2024

또 어떻게 일주일을 살았네

수많은 일상 웹툰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출근을 싫어하고, 일을 싫어하고, 아침이면 썩은 눈을 하고 얼굴을 찌푸리며 이불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아침이면 우울하고, 눈물 나고, 활동하는 것이 괴로운 것, 출근길에 차사고라도 나서 출근을 안 했으면 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고, 다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출근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우울증이다"라는 문장에 너무 놀라서 돌아보니, 힘들고 괴로워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정상이고, 힘드니 죽고 싶다. 지쳤으니 죽고 싶다. 내가 쭈구리란 것이 들켰으니 도망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비정상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내가 지난 1-2달을 돌아보니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진짜 안 하고 있더라.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것은 여전하지만, 그냥 피곤해서이고, 평범하게 일하기 싫다 정도, 아니면 정말 피곤에 쩔어서 졸려서 더 자고 싶다는 의미에서 일어나기 싫다는 마음이지, 죽고 싶어서는 아니더라.


모두 다, 경이로운 현대의학의 약 덕분이구나 싶다.


특이 이번주는 그랬다.


자잘한 사고를 치고, 그 사실을 말을 안 하는 직원을 자르고, 결국 내가 그 자리에 투입이 되었다. 

남편은 끝까지 반대했지만. 내가 일을 안 하면, 사무실을 닫아야 하는데......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 참에 내가 알아두면, 직원 관리도 함께 하면서 지켜볼 수 있으니 더 좋을 것 같고. 


그래서 이번주에는 제2 사무실에 신입 사원으로 출근해서, 일을 배웠다. 


남편 사장님은 매우 엄격하고, 기준이 높고, 실수에 관대하지 않다. 딱 1번 지도하고, 딱 1번 실수를 허용하고, 2번째부터는 바보 아냐?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이미 이전에 함께 브런치를 발행했을 때, 

이미 이전에 학원을 함께 운영하면서 익히 남편 사장님의 스타일을 알고 있었기에, 또 얼마나 나를 깔아뭉개면서 간단 교육 후, 얼마나 화를 내면서 부려먹을까 란 생각에 시작도 전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었다. 


하지만, 웬일로 남편은 "아내가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 집안일과 회사일을 병행하는 것은 많이 힘들다. 지금 내가 미안해해야 한다"라는 것을 알고 있더라.

그래서 화도 좀 덜 내고, 또 나도 어깨너머로 배운 지 연 3년 차라 배우는 것도 빠르고

어찌어찌 정신적으로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덜 싸우면서 일을 배울 수 있었다. 

단지 문제는 택배업무까지 하다 보니 체력이... ㅠㅠ 늙은 아줌마가 하기엔 체력 손상이 매우 심한 일이긴 했다. 


그래서 결국은 애들만 피해를 보았다.

아침은 굶고, 점심은 학교 급식, 저녁은 라면, 치킨, 샌드위치, 식은 밥에 계란찜, 또 치킨... 

일주일 동안 밥을 안 하고 보니까. 참으로 미안했다. 


애들이 무슨 고생인가 싶고, 정말 한국 엄마가 밥을 안 한다는 것은, 엄마 본인이 온 마음을 짓누르는 죄책감에 몸부림치게 만드는 일인 것이다. 

남편은 "우리 둘이 늙어서도 이렇게 일하면 좋겠다. 애들은 알아서 다 큰다. 몇 끼 굶어도 된다. 늦게 가도 애들은 안 죽는다"라는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남편도 남이다. 

세상과 아이와 나 스스로가 "엄마라는 것이 저렇게 청소도 안 하고, 공부도 안 봐주고, 심지어 밥! 까지 제대로 안 차려주다니, 저게 엄마인가? 쯪쯪쯪" 하며 손가락을 하는데, 그 괴로움에 안달복달하는 것은 "엄마인 나 혼자"일뿐, 이렇게 일을 시키는 남편은 그리고 사장님은 결코 그 괴로움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니...... 


결국 몇 년 만에 친정 엄마한테 반찬 좀 부탁하게 되었다. 반찬을 사러 갈 시간도 없고, 반찬가게도 이미 다 질려서 안 먹겠다고 하기도 해서 어쩔 수 없었다.


이 지경까지 오면서

어찌어찌 1주일이 끝났다...... 어찌어찌 버텼다. 애들은 영양실조는 아니지만, 둘 다 변비에 괴로워하게 되는 정도로 끝난 1주일이었다. 


죽지 않고, 이혼 안 하고, 잘 버틴 1주일이었다. 


그 결과,

제2 사무실의 고객 응대 업무는 앞으로도 내가 맡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제1 사무실 일이 직원도 생기고 업무가 확 줄어서 좋다고 한지 2-3달 밖에 안 됐는데.....

나는 노는 운명은 아닌가 보다.

살림하는 운명도 아니고,

회사와 살림과 육아에 허덕이는 인생...... 언제 호강 한 번 누려보나..


***


암튼 수미쌍관으로 다시 돌아가서

정신과 샘이 활력을 주는 약을 3알이나 줬다고 했는데. 


정말 그 약 덕분인지, 이 지경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고

내일 일어나서 또 일해야지

내일은 어떤 일을 해야지

빨리 일 끝내고 소주 한잔하고 싶다. 

밥 먹고 싶다. 똥 싸고 싶다


딱 이 4가지만 생각하면서 일하는 나를 깨닫게 된 것이다. 


다음 주도 딱 이렇게 살고 싶다. 


언젠가 약을 줄이면 좋겠지만, 약을 안 줄여도 되니, 지금처럼 살면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삶이 나에게는 매우 매우 달콤한 나날이니까. 


잘 살았다.

잘 살자



매거진의 이전글 늙은 여자에겐 아무도 웃어주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