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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Sep 12. 2016

가족 무급 종사원

 

나의 직업은 공식적으로 이그나이트 레이블의 성실장이다.

그리고 서류상으로는, 남편의 사업장에 출근하는 ‘가족 무급 종사원’이다.    


가족 무급 종사원이라는 말은 이번에 개정된 맞벌이 보육 정책 때문에 알게 되었다. 3살인 둘째를 어린이집에 종일반으로 맡기기 위해서는 직장을 다닌다는 서류가 필요하다고 해서, 동사무소에 문의하니, 나의 경우 ‘가족 무급 종사원’ 항목으로 신청하면 된다고 했다. 그때 처음 ‘가족 무급 종사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 무급 종사원은 쉽게 말해, 아빠 이름으로 운영하는 식당에 엄마가 같이 나가서 일을 하는데, 가족이기에 급여 등을 따로 주는 기록이 없는 경우를 말한다. 아마 대부분의 영세한 자영업자의 아내 혹은 자녀들이 엄밀히 말하면 ‘가족 무급 종사원’이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것은 가족‘무급’ 종사원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족‘무급’ 종사원이라는 것이다.


가족이니까, 부부가 어차피 한 통장 쓰는데 뭘 따로 주고받나 싶은 생각과 영세한 사업자의 특성상 굳이 쪼개서 나눌만한 돈도 별로 없기에, 그냥 ‘무급’으로 정해버렸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도 한 동안 나는 그 ‘무급’이라는 점 때문에 자존심이랄까, 자존감이랄까 하는 것이 조금 무너진 것 같아 우울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성실장이라는 직함을 장난으로라도 붙이고 났을 때는, 정말 비전 있는 스타트업의 임원이라는 기분으로 신나게 일을 했었다면,    


가족‘무급’ 종사원이라는 서류를 떼고 나니. ‘내가 하는 일이 결국 무급이구나. 무급이라면, 돈을 못 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일을 하는 것이 맞는가. 다른  '유급'일을 알아봐야 하는가. 혹 어린이집 선생님이 애 보기 싫어서 가짜 서류 내는 무책임한 엄마로 보면 어쩌지’ 등등의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네 애기 엄마들이나 어린이집 원장님이 ‘식당도 아니고, 남편 음악을 하는데 뭘 도와주는 거예요?' 라고 조심스레 물어보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난감하고, 애 맡기는 죄인이 되면서 쭈그러 들곤 했다.     



가족 무급 종사원은 대부분 전업 취급당하는 엄마들이다

  


그런데 사실 가족 무급 종사원은 진짜 힘들다.    


일단 맞벌이라는 것 자체를 인정 못 받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남편 사업장 보조니까. 출퇴근 마음대로 아냐? 살림하고, 육아하면서 쉬엄쉬엄 일하니, 얼마나 좋아.
라는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사업장도 있겠지만. (정말 부럽다 ㅠㅠ)    


대부분 무급인 이유는 ‘영세해서’이기 때문이기에, 더 절박하게 바쁘게 사업장에 메여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무리 종업원이라도, 내 사업장이라도, 실상은 일반 직장인보다 더 바쁘고, 힘든 경우가 많지 싶다.    


그러다 보니     


“남편 사업장이라고 편한 것 하나 없이, 일은 일대로 하고, 살림, 육아도 혼자 하게 되는데(남편이 더 바쁘니까 ㅠㅠ), ‘무급’이기에 결국은 맞벌이보다 전업으로 낙인찍히면서 쓸데없이 바쁜척한다는 눈초리를 받게 되는”경우가 은근히 많다.

(추가로 말하자면, 전업도 바쁩니다!!!)   


게다가 특히!! 사업장이 안정되지 않은 시기라서


“둘 중 하나는 월급을 받아야지, 둘 다 뜬구름 잡는다고 허송세월 하다 다 날리면 어쩌려고 그래. 둘 다 생각이 없네. 쯧쯧쯧.” 하는 걱정까지 듣게 된다면,     


가뜩이나 살림도 육아도 제대로 못하는데, 무급으로 남편을 돕는 내가 정말 바보인가? 싶은 생각에 심난해질 수 있다.    


세상의 눈이 뭐가 중요하겠냐만

 

그래서 사실 남편과 같이 일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나는 단돈 백만 원이라도 “유급”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돈”으로 남편의 음악 활동에 도움을 주는 것이 더 뽀대 나고, 편하다.    


그런데 운명인지 뭔지, 세상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던 나의 목소리와 글재주를 남편만 알아주고, 이 재주를 썩히지 말라고 펌프질을 한 것이다.    


나의 꿈도 키우고, 본인의 일에도 함께 하자고. 미래를 보고 하자고 날 유혹했더랬다.    


이 유혹은 ‘결혼하면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프러포즈보다 더 달콤했다.    

나 스스로가 포기하고 부끄러워했던 재능을 알아봐 주었으니까.    


넘어간 내가 잘못이다. 그래도 선택했으니 버틸 때까지 버티면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내가 가족 무급 종사자라는 타이틀에 우울해 하자. 남편이 뭘 하면, 기분이 좋아지겠냐고 물어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그나이트 홈페이지 도메인을 내가 사준 것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이그나이트 회사 지분 70%는 내 거야. 당신 성공하면 내가 정식으로 사장할 거야.”라고 말했다.   

 

그런데, 의외로 이 남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그때는 내가 당신 회사의 ‘가족 무급 종사자’가 될게.”    

라고 말해주었다.    


내 남자, 괜찮은데?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달콤한 약속을 받아냈으니,    

꼭 이그나이트 레이블을 돈으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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