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과 같이 장사를 하고 있다. 2개나!
남편은 사장이고, 나는 실장이다. 사장이라고 해서 놀멘놀멘 결제 사인이나 하는 것은 아니고, 사장 겸 회계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 장부 정리, 재고 정리 등 남편도 매우 바쁘다.
나 역시 실무 담당으로 고객관리 상담 서류정리 등을 하기에 정신없는 날들이 많다.
사실 정신없이 바쁜 게 좋긴 좋다. 일이 많고, 100원이라도 돈을 번다는 것이니까. 오늘처럼 브런치에 글을 3개째나 쓰고 있는 날은 돈을 못 번다는 뜻이기에, 글을 쓰면서도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장사가 안된다고 굿을 매일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체념하는 날도 있는 거지 뭐
암튼,
남편을 사장님으로 모시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나보다 일을 잘하기 때문이다.
특히 숫자에 밝아 바로바로 계산이 되고, 암기력과 실행력이 좋아서, 휘리릭 보고, 바로 일의 순서를 정리해서 촥촥 굉장히 빨리 일을 해버리곤 한다.
반면에 나는 전화 상담, 영업, 사후 서비스 등의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것은 잘 하지만, 서류정리 특히 숫자에 약해서 두 번 세 번 보고도 "0" 하나를 빠뜨린 다던가, 더 넣는 다던가, 제품명에서 알파벳 하나를 빠뜨린 다던가 등등 정말 웃픈 실수를 종종 하곤 한다.
문제는 "남편" 사장님이라는 것이다.
일반 회사였다면, 내가 실수를 하고, 상사에게 혼나도, 집에 오면 가족들은 내가 혼나고 일을 못하는 것을 모르고 그저 "수고했다" 며, 안아주고, 우쭈쭈 해줄 텐데
남편 사장님이기에 회사에서 실수를 하면, 하루 종일 눈치가 보이고, 죄책감을 느끼고, 쭈구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이제 사업장 2에 합류한 지 4개월째, 나름 일을 잘한다고, 이제 웬만해서는 실수 안 한다고 좀 자신감이 붙을 만큼 일이 손에 익었다. 나름 오랫동안 실수가 없었다.
사실, 정말 열심히 일을 하긴 했다.
남편이 너무 힘드니까 도와주고 싶기도 하고,
나도 사람으로 실장으로 사장으로 "일을 잘하고, 칭찬받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4개월째면 잔잔바리 실수는 안 해야 하는 것이 맞으니까.
그러다가 며칠 전,
중요한 거래처에서 견적서를 요청했다. 보통은 남편이 하던 일인데, 그날 남편사장님이 진짜 바빴고, 거래처는 빨리 달라고 재촉을 했다.
남편이 드디어 나에게 한 번 해보라고 일을 시켰고, 나도 이것이 기회다! 란 생각으로 신경 써서 서류를 작성했다. 그 사이사이 사업장 1과 사업장 2에서 정신없이 전화가 오긴 했지만, 전화 응대를 하면서도 어쨌든 진짜 집중을 하긴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0"을 2개나 빠뜨리고,
엉뚱한 제품을 검색하는 실수를 한 것이다.
다행히 남편사장님이 바로 알아채고는 수정을 했지만......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너무나 창피했고, 속상했다.
그냥 사장이나 상사가 아니라. 가족 앞에서 내가 그렇게 실력이 없고, 무능력하다는 것을 까발려진 기분이었다. 가장인 아빠가 자식 앞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창피한 모습을 들킨 것처럼,
남편 사장님께 혼나면서, 혼난 것이 서러운 것이 아니라. 그게 바로 가족이란 것이 너무나 창피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 사장님이 그동안은 정말 "바보냐? 집중 안 해?" 등으로 진짜 기분 나쁘게 말했었는데, 이번에는 "바쁜 와중에 일하느라 실수를 한 것 같지만, 이런 식이면, 일을 2번을 해야 하니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아직까지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하면 나는 너를 믿기 힘들다. 다음에는 잘 하자" 식으로 정중하게 혼냈다는 점이다.
그런데 결국 혼나면서 '이젠 아예 포기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어 더 서글퍼지고, 속상했다.
나는 하루 이틀 쭈그리가 되어 있었다.
시무룩한 나를 보면 남편은 어떻게든 도와주려 했지만
내가 일을 못한 것을
내가 실력이 없는 것을
내가 그것밖에 안 되는 것 때문에 쭈그리가 된 것이기에
남편은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족과 일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회사에서의 가면과
집에서의 가면이 각각 있어야 한다고 믿는 나에게는 더더욱 힘들다.
24시간 일하는 기분이기도 하고
24시간 남편에게 감시받는 기분이기도 하고
일과 생활이 분리가 안 되는 사장의 삶, 부부의 삶이란 정말 정말 괴로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