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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킷 하나면, 나는 살 가치가 있다.

by 지망생 성실장

사교 - 사회생활을 위해 여러 사람이 모여 다른 사람들과 사귐


사교 활동이 나는 거의 없다.

비즈니스 생활을 위해서는 직원들과 거래처들과 두리뭉실하게 지내지만,

친목을 위한 모임, 친구가 진짜 없다.


사실 친구 3명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중 2명에게 손절당한 것 같다. 그럴 수밖에 만나지도 못하고, 전화도 거의 안(못)하고, T인 성격으로 조언이나 찍찍 해대니 누가 날 좋아할까.


그래서인지

내 딸들이 친구들이랑 잘 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남편은 싫어하지만 "엄마는 외톨이었어, 왕따는 아니었지만. 친구가 딱히 없었지. 그러니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나한테 큰 조언을 바라지 마라"라고 항상 나는 이야기하며, 아이들의 교우관계에 더욱 신경을 썻다.


큰애는 몇 번 친구관계에 대해서 조언을 구하곤 했지만, 이제는 "엄마 그냥 듣고만 있어 봐, 내가 말하다 보면 정리가 되니까. 조언은 하지 말고, 그냥 '그렇구나'라고 맞장구만 쳐줘"라고 말하는 경지까지 왔고,

둘째는 정말 내 딸 답지 않게, 벌써 주말마다 여기저기 친구들하고 놀러다니며 아주 잘 지내고 있다.


30년 지기 50년 지기 친구들이 엄청 많은 우리 엄마는

늙으면 남편 말고 친구가 있어야 하는데 어떡하냐며, 지금부터 걱정이지만

남편은 본인도 마찬가지라며, 둘이 친구도 했다. 가족도 했다. 직장 동료도 했다. 멘토, 멘티 다 둘이서 하자고, 둘만 있으면 된단다. 어차피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을 못해서 수치심을 느껴도, 남편과 있어야 하는 운명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그러다가 얼마 전, 남편 친구가 부인을 데리고 우리 가게에 놀러 오기로 했다.

남편의 고등학교 친구인 그는 우리와 같은 업종의 가게를 운영 중이라, 남편과 말이 잘 통했다. 나도 몇 번 만났었고, 그 부인도 친구 결혼식에 2-3번 얼굴을 보긴 했었기에, 같이 만나자는 남편의 말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드디어 커플 데이트 날

생각해 보니 남편과 연애부터 15년 동안 커플 데이트를 한 적이 없었다!

우와 커플 데이트라니!

나는 어디를 갈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첫 인터뷰를 앞둔 리포터처럼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무엇을 먹어야 할까? 술을 먹어도 될까? 안 먹는 게 좋을까? 옷은 무엇을 입을까? 화장을 해야 하나, 평소처럼 그냥 화장 안 해도 될까?


막상 만나고서는 어색함을 못 이겨 쉴 새 없이 떠드는 파워 I 답게 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먹고사는 이야기, 재테크 망한 이야기, 여행 어디가 좋은지 등등 나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재미있었다.

안건이 없는, 자유분방한 수다의 가벼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은 그래도 남편 쪽 사람이니까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결괏값이 없어도 되는 수다라는 것이 이렇게나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나 또한 멀쩡한 대화가 가능한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서

또한 매우 매우 즐겁고 유의미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무용한 것의 아름다움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기능성이 없는 물건, 예를 들면 감상용 그림 같은 것은 보기엔 좋지만, 굳이 내가? 하는 생각으로

무용한 것은 사치스러운 것, 나에게는 감히 허락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돈이랑 상관없는 건 쓸데없는 만남의 시간이라 여겼던 사교 행위가

이렇게 정신을 즐겁게 하고

정상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일로 꽉 찬 머리를 개운하게 맑게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니

돈벌이랑 상관없는 대화도 무용하지 않고 "유용하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교모임을 통해

즐거운 하루를 만들고 있구나 싶으니 새삼 친구가 소중하구나 싶었다.

남은 연락처의 친구들에게 하나씩 전화를 해볼까

문자 카톡이라도 해볼까

그래도 될까? 여러 생각에 빠진 요즈음이다.


하긴

브런치도 나에게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라이킷 하나로 내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기에

의미가 있는 행위인 것을.


결국, 무용한 것은 이 세상에 없구나

모든 것은 다 의미가 있구나.

나도 의미가 있는 삶이구나.

감사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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