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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낭독 모임 - 2

by 지망생 성실장

희곡 낭독 모임에 나갔다.

일정기간 나가지 못하면 짤리는 모임이다.

하지만, 그래도 일과 가정이 먼저라, 주말에 나가질 못하니 모임에 꽤 오래 나가지 못했다.


탈퇴당할까 봐 걱정하던 차에,

간신히 열린 평일 저녁 모임에 나갔다.

이번책은 멕베스, 셰익스피어 작품이었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중학생 때 읽었었다. 서점에서 광고하던 두꺼운 희곡집을 샀었다. 리어왕, 로미오와 줄리엣, 멕베스 뭐 이렇게 있었던 두꺼운 책 희곡집이었다. 뭔 내용인지, 왜 셰익스피어가 유명한지도 몰랐고, 문학소녀라면 셰익스피어는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광고하던 희곡집을 사서 읽은 것이다.


솔직히 읽긴 했는데. 대충 줄거리는 이해했는데. 문장 하나하나는 이해가 정말 어려웠다.

갑자기 마녀가 나오기도 하고, 장황하고 난해한 표현들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고, 나는 무지했었으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함께 낭독하는 것이니 이해를 좀 더 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참가 신청을 했다.


남편에게 통보하고, 애들에겐 비밀로 하고 - 아직 엄마가 취미 따위로 너희들과 저녁시간을 함께 못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 가뜩이나 매일 밤 1시에나 집에 가는 주제에 즐겁겠다고 취미를 갖는다는 점이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 희곡 낭독 모임에 갔다.


2시간 넘게 낭독을 하고 난 후,

내가 깨달은 것은

중학생이던 나는, 맥배스와 맥더프 2명의 인물을, 둘 다 맥베스로 이해해했었다는 것이다.

맥배스랑 맥더프를 한 명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도 이해가 안 가서 내 머리는 돌대가리네 하고 체념했었더랬다. 진짜 바보였구나 싶다.


이번에는 희곡으로 낭독으로 여러 명이 읽으니 확실하게 인물을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마 혼자 읽었으면 또! 맥배스와 맥더프를 헷갈렸을 것이다.

왜 이름을 이따위로 지었지? 싶었지만

우리나라에서 형제들 이름을 지혜, 지예로 지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좀 납득이 가긴 했다.


다 읽고 사람들하고 운명이란, 비극이란, 셰익스피어는 왜 유명한가 등에 대해서 대화를 했다.. 누군가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운명적으로 비극이 결정되는 내용이라 비극으로 뽑힌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었고, 그 시대의 왕과 귀족들 결국은 사촌 등 친인척이니 가족끼리 죽고 죽이는 내용이니 참으로 막장극이라는 이야기도 했었다. 새삼스레 소설 하나를 읽기 위해서는 그 시대상과 사회상을 제대로 이해해야지만 소설을 잘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오늘 모임에서 가장 뇌리 깊은 것은

맥베스와 맥더프 이렇게 2명이 다른 인물이라는 것, 사촌 같은 관계의 친구끼리 죽음을 두고 싸우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나만 이런 것은 아니겠지? 한 명쯤은 있겠지? 나의 무지함에 박수를.....


******


취미란 정말 고급행위이다.


돈과 시간과 정성을 쏟으면서, 아무런 결과도 바라지 않으니까.

하다못해 자식을 기르는 것도, "잘 커야 한다"라는 아웃풋을 기대하게 되거늘

취미는 뭐라도 되면 좋고 아님 말고 하면서 그저 좋아 돈을 쓰고, 시간을 내고, 집중해서 정성을 들인다.

하다못해 나는 13년 만에 도서관을 가고, 서점에서 나를 위한 책을 사기 시작했다!!

그렇게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아무런 아웃풋을 기대하지 않는다.

수익과 전혀 상관없는, 그저 즐겁기만 한 행위인 것이다.


얼마나 고급진 행위인가!!


그런 행위를 3달에 한 번씩 하는 나는 얼마나 부자인가!!


무려 애들한테 거짓말까지 하고, 2-3시간 셰익스피어를 읽고 깨달은 것이

고작

등장인물이 2명이 각각 다른 인간이었네? 하는 그 사실 하나.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만 깨닫고도 즐거워하는

나는 정말 부자이구나라고는 생각을 했다.


나는 정말 고급진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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