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쓰레기통 / 나도 그런데 화법
나는 80년생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그 생생한 역사 속에서 젊음을 보낸 세대이다.
하지만 당연히 내게 컴퓨터는 수많은 야동과 동인지와 불법 다운로드 미국 드라마의 창구였을 뿐이다.
그러다 제대로 인터넷을 친구로 삼게 된 것은 바로 큰애를 낳고, 인생 첫 아이폰을 손에 쥐게 되었을 때였다.
시골에서 혼자 아이와 둘이 지낼 때였다. 남편은 오후 1시쯤 일어나서 2시쯤 나가서, 새벽 3시에 귀가하던 시기였기에, 나 혼자 아이를 길렀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돈도 없던 그 시기에 남편은 내가 싫다 싫다 해도 내 손에 아이폰을 쥐어주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아이폰 속에는 갓난아이 엄마들의 커뮤니티가 있었고, 비슷하게 결혼한 신혼부부의 싸움 이야기도 있었고, 고부갈등 이야기도 있었다.
예전에 빨래터에서 하던 수다를 인터넷의 미즈넷, 네이트판, 그리고 다음 카페에서 실컷 할 수 있었다.
아이는 젖만 물고 잠만 자던 시기였기에 나는 젖을 물리며 한 손으로 인터넷을 했고, 팔베개를 하고 애를 재우면서 인터넷으로 다른 삶을 읽으며 외로움을 떨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는가에, 전화로 수다를 나눌 수 없어서, 정말 누군가에게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를 말하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확인하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남의 이야기를 읽고, 댓글을 달고, 종종 다음 카페에 내 이야기도 올리면서 정신을 붙들 수 있었다.
그나마 인터넷 중독이 되었기에,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위로도 받고, 정상임을 인정받고, 그리고 다른 이들의 글을 읽으며 말 한마디라도 남겨야 소통이란 것을 할 수 있었기에, 남편이 인터넷 중독이라고 뭐라고 해도 당당했다.
특히, 다음의 한 카페에 아주 활발하게 활동을 했는데. 심지어 거기서 만난 친구와는 지금도 계속 연락하는 진짜 친구가 될 정도였다.
암튼 그렇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하면서, 나는 비로소 세상을 배우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배운 세상 그리고 삶의 지혜는 정말 정말 많았다. 왜냐면, 내 입으로 말하기 참 부끄럽지만, 나는 매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부유(?)한데, 정말 정말 순진무구하게 세상을 몰랐기에, 다른 이들을 배려하면서 대화하는 것을 정말 몰랐기 때문이다.
그중에 배운 가장 큰 깨달음은 바로 "감정의 쓰레기통 그리고 '나도 그런데'" 화법이었다.
나는 친구가 처음부터 없지는 않았다. 공부도 곧잘 했고, 책도 많이 읽었고, 얼굴도 예쁘장했고, 집안도 별 문제없고, (그때는) 꼬인 마음도 없는 아이였기에, 착한 친구들이 말도 걸어주었고, 나도 잘 대답하면서 친구가 있긴 했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어서 사귄 친구들하고 결혼을 기점으로 절연을 하게 되었는데, 그게 내 삶의 가장 큰 상처였고, 지금도 사실 치유가 다 된 것 같지는 않다.
암튼 그런 사건을 겪으면서 동시에 인터넷 중독이 되면서,
나는 인터넷에서 정말 진짜 하이퍼리얼리즘의 삶의 지혜, 에티켓을 배우면서 많은 것을 반성하고 깨닫게 되었다.
그 중 첫번째 깨달음은 "감정의 쓰레기통 그리고 나도 그런데 화법"이다.
어쩌면, 나는 친구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의 쓰레기통은 그냥 타인에게 내 감정을 다 말하고, 내 기분을 다 말하고, 동시에 타인의 조언등은 듣지 않고, 그냥 일방적으로 내 말만 주르륵 말하면서, 혼자 기분 풀고, 내 걱정하는 친구를 무시하는 그런 상황을 말한다.
어쩌면 나는 내 할 말만 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의 상황을 먼저 물어보거나, 친구의 지금 감정을 먼저 물어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지금 생각하면, 집안이 많이 여유롭지는 않아서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알바를 10개씩 하던 친구도 있었고, 꿈을 위해 학원을 열심히 다니며 미래를 준비하던 친구도 있었고, 부모님이 반대하는 길을 선택해서 길에서 쓰러지면서까지 아르바이트하면서 공부하던 친구, 유럽여행을 목표로 알바를 열심히 하던 친구들 앞에서
나는 인생이란... 연애란... 예술이란 이런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해대면서. 나는 관심 없지만 부모님이 사준 고급 옷을 입고 다니면서 부모의 간섭이 싫다고 말하면서... 친구가 돈을 모아 배낭여행 갈 때, 나도 가야지 하면서 그냥 엄마한테 돈 타서 같이 나가고...
아무리 순수하게 행동하고, 정말 순수했고, 나름 알바도 하니 비슷하게 살았다고 나는 생각했지만 친구들은 그다지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 같다.
행동이 저랬으니 말 한마디 배려심이 있었을까...
그냥 내가 뜻도 모르는 예술가병에 걸려서 술 먹고 나만의 이야기를 떠들 때 친구들은 "그래그래" 하면서 들어주면서 시간이 아까웠겠지...
그러면서 또 하나 배운 것은 "나도 그런데" 화법이 나쁘다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들의 말에 공감한답시고
친구가 아프다면, 나도 아픈데
친구가 돈이 없다면, 나도 많지 않아
친구가 공부한다면, 나도 해야 하는데
등등 나도 화법을 많이 이용했었다. 나는 그게 공감인 줄 알았고, 대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그건 "대화의 주도권을 친구에게서 나로 가져오는 좋지 않은 대화법"이라는 것이다!
그러게!!
친구가 아프면, 많이 아픈가, 어떻게 아픈가. 내가 도와줄 일은 없는가. 나도 네가 아파서 속상하네라고 해줬어야 했는데
내가 더 아프다고 해버리면 위로도 뭣도 아닌
재 뭐지? 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을 나이 서른이 넘어서 알게 되다니.
감정의 쓰레기통
나도 그런데 화법
이 2개를 알게 된 후, 나는 대화를 조심스럽게 하게 되었다.
충분히 둘 다 안 좋은 것이 납득이 가기 때문이다. 이제야 생각을 하면서 대화를 할 줄 알게 된 것이다.
내 진심이 상대에게 닿기를 기대하면서, 상대방의 상황도 물어보고, 문제가 있으면 나름 해결법을 고민해 주고, 내 이야기가 자랑으로 들리지 않게, 또 너무 우는 소리만 해서 걱정하지 않게, 적당히 조절하면서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래서 사실...
사실은 친구 사귀기가 더 어려워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좋은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조심스레 시작된 인연이 더 깊고 소중한 것 같다.
늦게라도 알게 되었으니 너무 감사하다.
남은 몇의 친구들이 소중하고, 고맙고, 예전의 친구들에게 미안함도 있다.
그래도 아직 남은 난제는
친구가 조금이라도 고민 같은 이야기를 하면, 나는 막 해결책을 제시해주려고 하는데
그걸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터넷으로 알게 되었다.
F는 공감을 원하는데 T는 조언을 해주는 게 싫다고??
같이 해결책을 고민하는 것이 왜 공감이 아니지?
공감도 안 하면 해결책도 고민 안 해주는데??
특히 딸내미가 아프다고 하면, 약 찾아주고, 병원 가라고 하는데, 아이는 같이 속상해해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한다.
아니 속상하니까 약 먹고, 약 바르라고 하는 거지...... 공감 같은 소리 하네 싶다.
결국 딸한테는
"안 아프니까 약 안 먹고 안 바르는 거지 그것도 안 하면서 아프다고 하지 마"라고 대답해 버린다.
딸이니까 내가 이렇게 T스럽게 말해도 연이 끊어지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서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해서
또 고민스럽기는 하다.
그래도 항상 진심은 상대방이 안다고 생각한다.
나는 표현을 잘 못할 뿐, 당신이 궁금하고 잘 되길 바란다는 것을 상대는 알아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