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남편이 많이 힘들어한다
결혼 16년 동안 한 번도 힘들단 소리 우울하단 소리를 안 하던 사람이
스스로 우울증 같다는 말까지 할 정도니 사실 매우 두렵다
엄마도 우울증
아빠도 우울증...
심지어 엄마는 아빠와 결혼생활 때문에 우울증인데... 아빠까지 우울증이면...
엄마인 나는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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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열만 남편욕, 시댁욕을 하는 나에게 많은 이들이
도대체 왜 사니? 그냥 이혼을 해!라고 말을 하곤 한다.
진심으로 나는 이혼이 하고 싶었다.
이혼을 하고 싶어서, 부부싸움을 할 때는 이혼을 불사하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혼을 하기 위해서 싸울 정도로 살벌하게 싸웠다.
암만 생각해도 내가 이혼을 안 할 이유가 정말 없었다.
돈도, 시간도, 섹스도 그 어느 것도 충족되지 않는
체력이 바닥나고, 사기를 당해 힘들게 10년간 모은 전 재산을 날리고, 남편은... 하아....
남편은 이혼을 하자고 싸우고 싸우고 그만하자고 애원하는 나에게
계속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내가 바뀌겠다고 더더더 애원을 했더랬다.
자꾸
사랑한다고 말을 했더랬다.
그리고 정말 개미 발톱만큼 스스로를 힘겹게 바꿔나갔다.
내가 왜! 당신 가족을 좋아할 수 없는지
내가 왜! 당신에게 실망을 했는지
단순히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한다고 주둥이로만 나불대는 말을
내가 왜! 체감할 수 없는지
악다구니를 쓰며 말을 하면
정말 또 개미발톱만큼 스스로를 반성하고 바꾸고 노력을 했다.
나는 애들도 놓고 나가려고 했다.
우울증 걸리고 욕하고 때리는 엄마보다
멀쩡한 남편이
정말 정말 자식들 시집 장가 엄청 잘 보낸 시어머니가 훨씬 더 애들을 잘 키울 것 같았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팔짱 끼고 지켜볼 거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암만 생각해도 결혼하고 나는 좋아진 것이 단 한 개도 없다. 그런데 애들 아빠니까 노력한다니까 지켜보겠다고, 그렇게 말을 했다.
팔짱 끼고 지켜본 지난 7년 동안
남편은 많이 바뀌었다.
데면데면하던 처갓댁에서도 말이라도 하려고 노력하고
장인어른과 술이라도 한잔 하려고 노력하고
설거지 거리라도 나르고 상이라도 치우려고 노력하고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려고 자기 엄마랑도 싸우고
내가 널브러져 있으면 이제는 설거지 한두 번도 할 줄 알고
무엇보다 돈을 벌었다.
둘이서 돈을 열심히 벌었다.
사기당해 날린 돈 보다
더 돈을 벌었다.
내 팔짱이 점점 풀어졌다.
남편은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아프면 겁이 나고, 남편이 제때 식사하지 않으면 걱정되고
안색이 안 좋으면 신경이 쓰였다.
남편이랑 같이 일하기에 얼마나 많이 힘든지 너무나 잘 알기에
나도 힘들지만
남편을 더 도우려고 나서게 되고, 일을 하게 되었다.
자꾸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남편이 웃으면 든든하고 기분이 좋다.
내 개그에 웃어주면 좋다
내가 옷을 사고 가방을 사면 뿌듯해하는 것이 고맙다
같이 티브이를 보며 깔깔댈 때가 가장 안락하다
그리고 남편과 자고 싶다.
우리 부부는 섹스리스인데
나는 정말 다른 남자와의 섹스를 생각하지 않았다.
불법은 싫은 것도 있지만
굳이? 내 남편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더 크다.
남편이 우울하다. 남편 입에 인삼을 넣어주고, 밥을 제때 먹이려고 노력하고.
내가 어딜 가든 옆에 있어주기를 원하는 남편이기에
애들 밥은 더 신경 안 쓰고
남편 차 조수석에 앉아 같이 배달도 가고, 미팅도 가고, 옆에 붙어 있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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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동안 이 결혼 생활을 참은 이유는
애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랑 따위 나는 안 한다고
당신의 사랑도 나는 믿을 수 없다고
그래도 이혼은 하면 안 되는,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하니까
기회를 한 번, 두 번 준 것뿐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마 어쩌면 나도 너를 사랑해서 여태 말도 안 되는 그 어록들을 참고 참았나 보다
어쩌면 나도 너를 사랑하니까 기회를 주고 또 줬다보다
어쩌면 이제는 너를 사랑한다고 인정해야 할지도
아니 너를 사랑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말하지 않으련다.
합방을 하게 되는 날 말해야지
나도 뭔가 얻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나
***
암튼
남편이 지금의 힘듦을 잘 이겨내기 바란다
나처럼 약을 먹지 않고도 이겨내면 제일 좋을 것 같다
잘 도와주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