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은 종갓집이었고, 때마다 100명이 넘는 손님들이 왔었지만 그중에 전교 1등은 없었다.
내 위에 삼촌뻘 되는 분 중에 서울대가 있었지만. 아빠 항렬이고 나와는 20살 가까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고, 적어도 내 항렬, 내 또래에서는 다 비슷비슷해서 비교당할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나보다 더 똑똑한 1살 언니가 있긴 했는데, 내가 공부에 큰 의욕이나 승부욕이 없어서 그런지, 그 애는 몇 등을 했더라. 어떤 고등학교에 갔더라. 이대에 합격했더라는 말을 들어도 나 스스로가 아무 감흥이 없었다. "그렇구나. 좋겠네, 생각보다 똑똑했네."라고 정말 순수하게 생각했었다.
나이가 먹어 결혼을 하고, 사회생활 하면서는 뭐.. 성적대로 학벌대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란 것을 확인한 후에는 더더욱 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의 나의 삶에는 "엄친아" "엄친딸"은 있어도 별 상관없는 사람이어서,
남과 비교당하는 괴로움 같은 것은 느껴본 적이 없다.
결혼하고, 비슷한 또래인 시누들과 나를 비교를 한 적은 있다.
그 집 남편은 따박따박 월급도 그것도 고액 연봉으로 가져다주는데
그 집 남편은 심지어 연하에 의사인데
심지어 저 남편들은 아내 말에 껌뻑 죽고, 장인 장모님에게도 엄청 잘하는구나
비교 많이 했고, 지금도 그 점은 비교하고는 있지만...
비교해 봤자 어쩌겠나 싶고, 내 남편이 이모냥인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는 않았다.
단지, 시짜들에게 내가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을 못 견뎠을 뿐이고,
이건 비교와는 다른 개념의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내 삶은 "남과의 비교를 딱히 해본 적도 없고, 비교해서 질투나 시기를 한 적도 없고, 비교에 대해 생각을 안 해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 딸이다.
남편의 큰 여동생의 아들은 우리 딸과 11개월 차이다. 1살 많은 사촌 오빠인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이 솔직히 잘났다.
키도 크고, 인물도 훤하고, 공부도 전교권에서 놀고, 농구도 잘하고, 동아리 부장. 학급반장도 놓친 적 없는,
무엇보다 인성이 정말 최고인 아이다.
이제 고1이 되는 아직은 사춘기일 나이일 텐데. 시아버님, 시조카 입장에서는 외할아버지가, 거동이 힘드시니 꼭 팔짱도 껴주고, 아무도 집에 있을 수 없다 싶으면, 시아버님을 지켜보면서 공부를 하지 않나. 심지어 화장실 가실 때도 같이 가주는 등.
정말 잘나고 이쁘고 참 잘 큰 아이다.
심지어 이번 고등학교 입학식에서 신입생 대표로 무슨 선서를 한다고 하는데.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전교 1등이니까 그런 큰 일을 맡았구나 싶다.
전교 1등은 학교에서도 친구 해본 적 없는 존재이고, 누구인지도 사실 관심도 없었고, 만화에서나 나오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까이에 전교 1등이 있다니 싶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기분이 좋은 건 잠시......
1살 터울인 우리 딸, 4살 터울인 우리 작은 딸들이 보였다.
특히 큰 딸은.. 오빠의 잘남에 뭔가 스스로 비교를 하는 것 같다.
나는 전교 1등은 못하는데....... 나는 반장 하고 싶어도 못 됐는데...... 나는 교정까지 해서 지금 못생겼는데...... 등등
한 번은 시댁 모임에 가는데
오빠랑 비교될까 봐 걱정까지 한다는 것이다.
시댁 식구들 누구도 비교하는 말도 안 하지만
딸아이 스스로 승부욕이 있는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나도 우리 딸은 스스로 공부를 한다.
시누는 아들 하나 전폭적으로 매니지먼트를 해주지만
나는 우리 딸 일과도 모를 만큼 손 놓는데, 우리 딸은 스스로 한다고 자랑을 일부러 했다.
( 그 와중에 둘째는.... 정말 자랑을 못해서... 둘째도 없던 섭섭증이 생겼다... 근데 둘째야.. 너는 솔직히... 친구 많은 것 외에는 건강하고 착한 것 외에는 생각이 안 난다... ㅠㅠ 미안하다 )
그래봤자
시누 큰 아들은 엄친아로 자리 잡았고,
우리 큰 딸은 그냥 똑똑한 딸일 뿐
이미지가 이미 그렇게 정해진 것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 둘째는 심지어 아직 초5 되는데 시어머님이 "공부가 아니면 일치감치 기술을 배우는 것도..."라는 말까지 하셨다....
남의 자식도 아니고 조카가 잘 되는 것이기에 진심으로 축복하고 신기하고
정말 솔직히 시누는 뭐 그저 그래도
조카는 정말 예쁘다고 생각한다.
근데 우리 딸이 질투를 한다면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우리 딸도 잘하는데. 이쁘고 똑똑하고 진짜 생각 깊고 무엇보다 정말 스스로 잘하는데......
조카 칭찬을 안 할 수도 없고
우리 딸 칭찬을 막 눈치 없게 할 수도 없고
이게 비교라는 것이 이렇게 괴로운 것이구나. 앞으로 평생 볼 사이인데 틀어지면 안 될 텐데 싶고
애들이 크니까 별게 다 머리를 아프게 하는구나 싶다.
비교를 안 할래도
만나면 뭐 자식 이야기 밖에 할 일이 없으니 말이다......
암튼 그래도 집안에 잘난 조카. 잘될 조카가 있다는 것은 좋다.
사위들도 잘나서 좋다. 못난 것보다 잘난 게 훨씬 좋다.
우리 딸이 잘 나가는 전교 1등 사촌 오빠에게 너무 위축되지 말고,
긍정적인 발현으로
본인도 더 공부 열심히 하고, 더 노력하는 쪽으로 되면 좋겠다.
그나저나 우리 둘째 딸이... 너무나 평범한 둘째 딸이 벌써부터
"나는 공부 못해. 나는 공부 싫어 나는 기억력 나빠"라고 말하는데
이건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