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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징 대기 싫어서, 투쟁가를 선포했다

by 지망생 성실장

며느리 고충을 토로하는 글의 마무리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시부모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지혜롭게, 현명하게 대처하고 싶다는 며느리의 착한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시부모, 시어머니로부터 상처를 받았음에도

쫓겨나면 안 되는 출가외인이라서일까,

어른들에게 함부로 대들면 안 된다는 유교의 가르침 때문일까

이혼은 절대 안 할 거니까 하는 마음을 깔고 있어서일까

정말 내가 그들의 가족의 일원이 되었으니까, 잘 어울리고 싶어서일까

알 수는 없지만


여성스럽게, 지혜롭게, 현명하게,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착하게 고민하는 많은 여성들이 있다.


나도 그랬다.

임신 8개월에 김치 100 포기를 하고 대상포진에 걸렸어도

현명하게 남편을 붙들고 엉엉 울어도, 시어머니의 "그렇게 힘들 줄 몰라서 그랬지"라는 전화 한 통에

조신하게 "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심지어 "내 부모가 아니니 장모님 장인어른에게 아버지 어머니라고는 못하겠는데"라는 남편 말에도 감히 이혼은 생각 못하고, 그저 울고 불고 할 뿐이었던 여리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다가 내가 목소리가 커진 것은 맞벌이를 시작하면서였다.


그 이전에도 반 맞벌이 었지만,

결국 정말 돈이 없어서, 콜센터에서 남자 팬티를 팔기 시작하면서, 나는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내가 돈 벌어 생활비를 대고

내가 애들 기르고

친정 엄마가 애들 봐주는데

시댁은 정말 10원 한 장 도와주지도 않고, 애는 당연히 안 봐주셨고

( 심지어, 어린이집 맡기는데, 정말 급할 때는 봐주실 수 있냐고 물어보는 내 말에, 절대 노 NO!라고 해서

시댁 근처 이사 6개월도 안 돼서, 친정 근처로 이사를 간 것이었다 )

남편은 육아에 1도 도움도 안 주고, 집안일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애 봐주고 반찬 해주는 장인 장모님께도 살가운 사위조차 아니었던 것이다.


남편과 시댁의 불만이 커지던 와중에

제삿날 저녁에 시댁에 갔는데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하기에 힘드냐는 식의 말이 나왔던 것 같다

그때 나는 큰 소리로 "남자 정력에 좋다는 빤스 팝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원한 것은

"우리 아들이 능력이 부족해서, 며느리가 돈 버느라 고생하는구나" 였지만

시댁은

"며느리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창피한 일을 하는구나"였다.


그때부터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참을 이유도 없었다.

남편을 붙들고 울고 불고 하기도 싫었다.

그냥 연습을 했다.

내가 시댁에서 불편한 말을 들으면 바로 어떻게 대답을 해야겠다

싸움이 필요하면 싸우겠다.


나는 이 결혼을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징징대며, 그래도 남편이 좋으니까 참는다 라는 말은 싫다.

징징대기 싫고

남편이 좋든 말든

결혼해서 나는 나아진 부분이 하나도 없기에

이혼해도 상관없다

애들 뺏겨도 상관없다. 주말에만 보면 더 좋다. 육아가 얼마나 힘든데


이런 생각으로

나는 열심히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메갈이 되기로 결심하며

행동으로 말로 내 사상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현명한 방법은 싸움을 불사하고, 이혼을 각오하며

내 생각을 말하고,

내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야 바뀌고

그래야 내가 살고

그래야 내가 징징대지 않고, 웃으면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해부터

나는 제사에 가지 않았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남의 제사에, 심지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다음날 출근에 방해되는 행위자체를 하기 싫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친정 제사도 안 가는데, 먼 시댁 제사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달력에서 제사날짜를 지워버렸다

남편에게도 "당신이 제사 가는 것은 나와 상관없다. 추후 당신이 제사 지내면 말리지 않는다. 내가 청소기 정도는 도와준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안 하고, 나는 제삿날 외출 할 것이다"라고 선포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자기도 시부모님 돌아가시면 제사 안 지낸다고 선포하더라.


그 후에, 명절이 다가오면서 나는 연습을 했다.

남편을 교육시켰다.

평소에 집에서 설거지는커녕 물 한잔도 직접 안 떠먹는 것은, 진짜 일을 하느라 (돈은 안되더라도) 정말 열심히 일하는 당신을 내가 배려한 것이다. 우리 애들이 그런 남자랑 살고, 그런 남자가 디폴트 값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니 일 년에 2번, 설과 추석의 설거지는 당신이 해라.

시댁에서 아빠가 설거지하는 상징적인 행위만이라도 해줘야. 애들이 그런 남자를 만나고, 그런 시댁을 만날 것이다.

라고 가르쳤다.

남편은 잘 이해를 했고,

설날에 추석에 시도를 했다.


몇 년 동안 명절 때마다 남편이 설거지를 시도했고, 그때마다 시어머니는 소리를 질렀다.

집안이 시끄러웠지만 나는 지지 않았다

나도 큰 소리롤 싸우기도 했다.


그리고 결론을 시어머니가 울고 불고 난리를 쳐서

그냥 시어머니 혼자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며느리 아들 딸 사위들 모두가 앉아서 먹고, 시어머니가 혼자 다 설거지를 한다.

나는 불편해도, 절대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결론도 아니고

한국의 며느리로서 편하지도 않다.

하지만 지지 않는다


대성통곡을 할 정도로 아들의 설거지가 속상하다면

나는 왜? 남의 집에서 10년을 설거지를 했지?

나도 귀한 집 딸인데?

나한테는 왜 그런 대접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절대로 그 집 부엌에 가고 싶지 않다.


그렇게 시어머니가 독박 부엌일을 하시는 것으로 일단락된 상황이다.


현명한 결과나 지혜로운 방법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곰살맞게 여우처럼 그런 것도 나에겐 안 어울리고

나는 그저 그 집에 적어도 손님 대접, 편치 않은 사람, 어려운 며느리로 이미지 메이킹을 한 것 자체로 매우 만족한다.


투쟁의 결과에 나는 만족한다

적어도 이제 명절이나 시댁에서 가족 모임이 있을 때

설거지로 징징대거나 불편해하지 않으니까

그냥 손님대접을 받으니까

그것으로 됐다


이제는 적어도 내 눈치를 보고

내가 불편해할 것 같으면 말을 안 꺼내고

부탁할 일은 조심스레 부탁을 하니까

모든 것은 잘 된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이제 징징대지 않기에

시짜들때문에 힘든 분들이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혼을 두려워하지 말고

남편이 내편이 아니면 이혼을 하겠다

남편이 대신 싸워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싸우겠다.

며느리의 도리는 없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한다.

다짐하고 행동하면

처음에는 나 때문에 분란이 일어나는 것이 불편하겠지만

내 딸이 보고, 배운다고 생각하고, 싸웠으면 한다.


이혼은 쉽지 않겠지만

나를 위해 싸움에, 남편이 내 편이 아니라면 살 이유가 없으니

이 혼불 싸 투쟁가가 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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