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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시집살이는 싫은 걸

by 지망생 성실장

시아버님이 많이 편찮으시다. 정말 많이...... 마음이 안 좋다. 당연하다.

시어머님은 그 와중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더 의지를 하신다. 당연한 것 같다,


시댁은 죽음에 대한 절대 이야기를 안 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혹 큰일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정황상 이제는 이것저것 상의해야 하는 분위가 되었고, 요즘 시어머니와 남편은 납골당을 다니며 어디가 좋을지 알아보는 중이다.


친정은 종갓집이라 결혼식장도 많이 다니시고, 장례식장도 많이 다니시고, 실제로 상주도 다 해보셨고 하다 보니 장례식이나 죽음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에서 대화를 많이 하곤 했었다.

밥 먹으면서 가까운 병원이 밥이 맛있으니 거기서 장례를 치르고, 집 근처에 시에서 운영하는 공동묘지가 싸고 가까우니 거기로 모시라는 말도 이미 하셨고, 엄마는 카톡 프사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해달라는 말까지 하는 집안이다.

나도 아무렇지 않게 자식들에게 엄마가 많이 아프면 무조건! 싼 요양원에 넣고 안 와도 된다 라는 말도 하고, 나 죽으면 내 지인들에게는 굳이 연락 안 해도 된다. 내 지인들이 내 가족들을 모를 텐데 와서 어색하게 있다 가는 것도 실례인 것 같아서 카톡 프사나 죽음/사망으로 해두면 되고, 가족들 지인들에게만 연락해서 위로받아라.라는 말도 서슴없이 이미 다 해두었다.


남편은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한 마디도 안 한다. 그냥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싫다고 한다. 죽음이 두렵고 무섭고 그런 것을 떠나 부정 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미리미리 이야기를 해놔야. 급하게 닥쳤을 때 기준이 돼서 자식들이 좀 더 편하게 결정을 할 수 있지 않냐고 말하지만 남편 가족들을 보면, 남편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암튼, 그런 점에서 시댁은 분위기가 안 좋다.


여기저기 납골당(봉안당?)을 남편과 시어머님이 다니면서 2군데 최종 후보지를 선정하고, 여동생들과 최종적으로 가보고 1군데 정해졌을 때. 마지막으로 시아버님을 모시고 견학을 가기로 했는데, 시아버님이 거기까지 보러 가실 수나 있을지 건강이 허락할지도 모르는 상황일 정도니까.


그런데 납골당이 생각보다 비쌌다. 친정 관련한 장례식에서는 모두 시에서 운영하는 납골당으로 모시는 것을 봤길래, 사설 납골당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서울의 00구에서 운영하는 납골당은 진짜 너무 멀어서 조금이라도 가까운 사설 납골당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생각보다는 값이 나갔다. 살아서도 집값으로 고생하는데 죽어서도 자릿세가 고민되는구나 싶어서 서글펐다. 다행히 너무 비싼 곳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삼 남매가 어느 정도 먹고 사니, 적당한 곳에 모실 수는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될 정도이다.


그런데 시어머님이 "죽어서라도 가까이 살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자식들 사위 며느리 자리까지 한 번에 다 사두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이고야!!

시아버님 돌아가시면 제사를 지내신다는 말씀보다 더 한 소리로 나는 들었다.


"어머니, 내 자식들이 서울에 살지 인천에 살지 부산에 살지 아프리카에 살지 알고, 미리 묫자리를 알아보나요? 내 묫자리는 내 자식들이 알아봐야지요"

라고 말을 했지만. 시어머니는 들은 척도 안 하시고

"죽어서라도 함께 살아야지! 살아서도 못 사는데."라고 하셨다.


일단 그 자리에서는 입을 다물었지만, 하이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발언에 속이 답답해졌다.


며칠 지나서, 남편한테 시어머니 말씀이 진짜 진지하게 그러실 생각이냐고 물어봤다.

"다니다 보니 한 가족이 한 납골당에 있는 것 보고 좋아 보이기도 하고, 자식들 돈 걱정 덜어주시려고 하는 생각이신가 봐"라고 말하기에

"나는 싫어, 아직 이혼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고, 내 자식이 어디 살지도 모르고, 살아서도 같이 안 사는데, 죽어서 시집살이까지는 더 싫어"라고 말했다.


남편은 조금 실망한, 뭔가 시어머니께 면이 깎이는 기분이 들었는지, 그런 표정으로 알았다고 했다.


결국, 시누들이 출가외인이라 사돈네에 뭐라 말할지도 어렵고, 우리도 우리 자식들이 컸을 때 상황을 다 봐야 하지 않겠냐고, 어머니 아버님 자리만 생각하시라고 남편이 잘 이야기해서, 어머님의 발언은 우야무야 되긴 했다.


너무나 다행이다.


왜? 시어머니는 같이 사는 것을 은근히 바라실까?

내가 그동안 살갑게 해드린 적도 없는데, 어머님도 어차피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실 텐데 말이다.


분위기 안 좋은 시댁에 발맞추어 입 다물고 있었어야 하나 싶기는 하지만

이런 말은 농답으로라도 진지하게 바로바로 정정하지 않으면 못 사는 못된 며느리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이런 며느리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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