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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죽어도, 자식이 아픈 게 먼저일지도

by 지망생 성실장

23살 어느 날, 나는 매일 12센티 통굽 하이힐을 신고 다녔는데,

다리가 접질렸었다.

결국 집 앞병원까지 가서 반깁스를 해야 했는데

다리가 불편하고 아파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데리러 와달라고


나를 데리러 온 엄마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나는 날 걱정하는 줄 알고 뭐 그렇네 놀라냐고 그냥 접질린 것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가야 하는데

내가 다리가 아프다니 일단 나한테 먼저 오신 것이다.


외할머니 상을 치르는 3일 내내 나는 반깁스를 하고 있었고

엄마는 내가 무리하지 않도록 날 신경 써주셨다.


외할머니가 7년 넘게 병으로 누워계시긴 하셨지만

그래도 감히 돌아가신 분과 단순 발목 삔 거랑 어떻게 경중을 논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엄마는 그 힘든 와중에도 내 발을 걱정하셨더랬다.


둘째 딸 생일이다.

사무실 이전, 시아버님의 병환의 깊어짐으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

둘째 딸 생일을 챙겨주는 것은 친정 부모님 뿐이었다.

둘째 딸은 여태 생일 파티를 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도 못하게 생겼다고 입이 툭 튀어나왔다.

급기야 좀 전에는 울면서 자기 생일을 아무도 신경 안 쓴다고 신세한탄을 한다.


미안해져서

원래 일하려던 것을 미루고

오늘 토요일 저녁 외식을 하기로 했다.

생일 파티는 다음 주에 해주기로 하고

달래고 달래면서 속상했다.


시아버님이 특히 위중하셔서 일요일에 요양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 와중에 자식새끼 생일을 못 챙겨줘서 속상한 내가 한심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라고 생각을 하려고 한다


둘째는 아직 죽음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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