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태어났을 때, 세상이 변했었다.
아니, 내가 변했다.
가슴에 아기를 안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사랑의 다른 이름이 책임감이구나
사랑은 계속 계속 바라보는 것이구나
눈일 뗄 수 없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으며, 그렇게 나는 바뀐 세상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거래처와 고객들의 연락은 그대로였고, 내가 남편이 할 일도 그대로였다.
주어진 시간은 고작 3일, 장사치는 그 3일도 온전히 슬픔에 빠질 힘이 없었다.
직원이 일을 해줘도, 사장이 해야 할 일은 별도로 있는 법
빈소에서도 틈틈이 급한 일을 하며, 중간중간 그렇게 슬픔을 잊을 뿐이다
나야.. 한치 건너 슬픔이라 몸이 피곤할 뿐이지만
남편은 큰 언덕을 잃었으니 얼마나 힘들까.
남편이 매우 안쓰러웠고, 나로 인해 아버님 가시는 길을 배웅하지 못해서 큰 죄책감을 느꼈다.
위독하시단 연락을 받았지만, 급한 일을 하느라, 남편에게 몇시간만 할일 하고 가자고 내가 말을 해서 임종을 못 봤기 때문이다. 정말로 나는 몇시간은 더 계셔주시리라 믿었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한 것이긴 했는데..... 그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었다.
못된 며느리 때문에, 돈돈 거리는 며느리 때문에 임종에 아들이 없어서 아버님께서 많이 섭섭하셨을까?
내가 그냥 돈 못 벌어도 아버님께 가라고 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더 나를 괴롭게 한다.
남편은 고맙게도 그런 나를 탓하지 않았고
묵묵히 상주로, 사장으로, 아빠로 피곤에 쩔은 채로 할 일을 다 했고, 하고 있다.
몇 시간 기다려주실 줄 알았는데......
죄송하고 허무하고
그렇다
한 생명이 가도 세상은 일상은 고대로 흘러가는 것이 슬픔에 휘몰아치지 않게 돼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열심히 사신 고인에게 너무 세상이 야박한 것 같아 섭섭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 그게 삶이지 싶다.
아버님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