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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낮술이 땡긴다

by 지망생 성실장

화창한 날씨이다.

오늘은 모처럼 정말 밝은 일요일이다.

적당히 상쾌한 바람과 눈부신 햇살과 벗꽃과 상큼한 연분홍의 나뭇잎들까지

정말 눈부시게 찬란한 봄이다.


안타깝게 힘겨운 세상에 나온 꽃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예쁜 아기 꽃들을 보면 탄성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런 낮이면

원래도 아무일도 하기 싫어하지만

더더욱 아무일도 하기 싫어진다


그늘막 아래

따뜻한 경량패딩입고

모닥불 피워, 조개탕이나 생선을 굽고

소주를 한 잔 하고 싶다.


아니

편의점 앞, 진실의 의자에 앉아

새우깡에 맥주 한잔이면 된다.


혼자는 처량하니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나란히 하늘을 보며 한 마디도 안해도 되는 친구 하나 옆에 두고

맥주를 마시고

복숭아맛 탄산주를 마시고

각자 핸드폰도 하다가

바람도 느끼다가

얼굴이 너무 탄다 싶으면

창이 넓은 술집으로 옮겨서

따끈한 전골에 소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뭐 먹고 사냐

뭐 하고 사냐

건강은 어떠니

폭삭 속았수다는 봤니

너는 학씨랑 사니 양관식이랑 사니

나는 학씨 닮은 양관식 되려고 하는 그래서 좀 봐줄만 하는 남편이랑 산다

시댁 뒷담화도 하고

친정 걱정도 하고

연예인 가십 이야기도 하면서

술깨면 기억도 안날 가벼운 이야기 하면서

소주를 한 2명 마시고


해가 지기 전에 헤어진다


친구는 집에가고


나는 혼자 단골 술집에가서 한 잔 더 하고

꽐라가되어 집에가서 애들한테 뽀뽀하고

오늘 혼자 놀아 미안한 죄책감을 안고 코골면서 자는 거다


사실 봄날이 아니어도 되긴 한다

가을이어도 좋고

여름이어도 좋고

겨울이어도 상관없다


그런데 유독 봄에는 더욱 이런 낮술이 간절해지는 것이다.

늙어가니 봄이 예쁜 것을 더 잘 알게 되서 그런가

나는 이제 가을이니까

늙어야 젊음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화창한 봄날 일요일 12시

사무실에서 이렇게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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