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안한지 거의 6개월이 되었다.
주1회 친정 엄마가 와서 밥과 반찬을 해주면, 그것을 먹거나. 거의 대부분 다 배달시켜먹는다.
나만 먹는 것이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데
아이들이 마음에 걸린다.
매주 피자 햄버거 통닭은 기본이고, 김밥 떡 떡볶이 등을 돌려가며 시키다보니
애들 건강이 매우 염려된다.
이 와중에 큰애는 다이어트 한다고 안 먹어줘서 참 고마운데
성장기에 안 먹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라 그것대로 속상하다.
내가 집에서 밥을 해줄 수 있었다면.
적어도 엄마가 차려준 밥을 억지로 라도 먹으면서
건강을 챙길 텐데 하는 죄책감이 하루하루 커진다.
밥을 안하고, 청소를 안하고, 빨래를 안하고
그렇게 살림에 손을 놓은지 거의 6개월이 넘어가는 지금
그 원인을 생각해본다.
가장 큰 표면적인 원인은
절대적인 체력부족이다.
새벽 3시 취침, 아침 10시 기상하는 일과를 기준으로, 주말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생활 리듬도 너무 불규칙하다보니 물컵하나 설거지할 힘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 정신병도 이렇게 체력적으로 힘듦에서 시작이 되었기에, 그때부터 친정엄마도 모시고 왔고, 가사도우미도 2주에 한번씩 모시게 된 것이다.
또한 주1회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체력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고, 아이들도 주 1회라도 따뜻한 저녁을 얻어먹을 수 있었고, 엄마 아빠도, 손주들 보는 뿌듯함을 가지시기에 결과적으로 모두가 좋은 일이되었다.
그런데
내가 살림에 점차 더더욱 손을 놓은 것은 또 다른 이유가 2개가 있는데.
첫번째는 살림을 도와주는 친정엄마의 손길이 묻은 부엌이 이제 더이상 내 부엌같지가 않아서 마음이 가지 않는다.
두번째는 남편이 내가 가사일을 하는 것보다 일하는 것을 더 지지하고 존중해준다는 것이다.
친정엄마의 마음은 잘 안다.
하지만 서랍 하나하나 다 뒤집에서 엄마 마음대로 정리하고, 냉장고 하나하나 다 마음대로 버리고, 이불도 마음대로 사서 깔고 버리려고하고( 간신히 버리는 것은 막았다 )
그러다보니 내 집이 아니라 친정엄마 집 같아졌다.
물론, 엄마가 다 맞다. 버릴때가 된 것들이고, 엄마의 정리가 내 정리보다 역시 더 편하고, 정말 다 맞는데!!!
그런데!!! 내 것 같지가 않다.
엄마가 사준 옷이 더 예쁘지만.
내가 고른 촌스런 옷이 더 내 마음에 드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러다보니 내가 정리해봤다. 엄마가 또 잔소리 하면서 뒤집어 놓을 텐데 싶어서 아예 손을 안 대고 싶어진다.
진짜 불효막심한 딸년이다.
세상 진짜 불효녀 맞다.
그래도 이런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고, 감사합니다만 외치고 있으니 이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런 점보다 더 큰 것은 남편과 아이들이다.
남편과 아이들이
엄마의 부재를 느끼고, 엄마가 밥해주고 청소해주면 좋겠다.
엄마가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 밥이 더 먹고 싶다
여보가 밥을 해주면 진짜 좋은데
이런 말을 한번이라도 해준다면 아마 밥을 했을 것 같다.
그런데 가족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 참고로 나는 요리를 잘 하는 편이다. 하면 진짜 맛있게 한다 )
남편은 내가 가사일 때문에 회사일을 못했다고 하면 "핑계대지마. 그리고 누가 집안일하래? 집안일 안해도 돼, 그냥 일을 해" 라고 말한다.
애들도 엄마 밥이 좋긴 한데. 사주는게 더 맛있어, 신경쓰지 말고 돈 버세요 돈 많이 버세요 라고 한다.
이 말들은 내가 마음 편히 집안일에 손 놓게 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전업 주부였던 결혼초 10년의 내 시간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섭섭해진다.
완전히 전업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결혼 초, 7년 -10년 정도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살림을 했었다.
어떻게든 애들 밥은 해먹였고,
개지 않아도 빨래는 돌렸었다.
( 그 와중에 청소는 못했었지만...... )
그랬던 내 과거가 부정당하는 기분이고
지금 내가 가진 죄책감이 길을 잃어, 나 혼자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꼴이 된다.
주부가 밥을 안하고 빨래 청소를 안한다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나처럼 청소를 귀찮아 하고, 빨래도 귀찮아 하고, 설거지를 싫어한다면
지금의 환경과 가족들의 지지는 매우 감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정 엄마의 "그래도 밥을 차려는 줘야지 엄마가 하는 일이 뭐냐" 라는 소리와
애들이 변비로 고생하거나 감기 걸리거나 할 때는
또
그래도 엄마인데 너무 밥을 안해줬나 하는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남편은 이런 죄책감 안 갖던데...
그러니 생전 한번을 일찍 집에 가라는 말을 안하지......
배가 불러 호강에 겨운 소리를 하는 워킹맘인 것을 잘 안다.
애들 어릴때 소아과에 매일 다니면서,
일 전화 하면서, 밥하면서 소리치던 시기가 불과 1년 전인데
그 사이 애들도 컸고, 친정 도움도 받으면서 편하게 살면서
이제는 밥 안하면서 죄책감만 가지는 웃기는 상황이라니
좀 기가 막히는 상황이긴 하다.
에휴 우울증약이나 더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