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의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대표님이 고객님의 제품에 대해 농담을 했는데, 멋모르고 같이 웃었지만, 생각이 계속 나고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충분히 그렇게 기분 나쁠 농담이었다.
그렇다고 당연히 저급의 농담은 아니었고, 친한 사이라면 웃을 수 있는 농담이지만, 처음 본 고객에게는 하면 안되는 농담이었던 것이다.
당장 남편대표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고,
남편대표는 "아니 같이 깔깔 웃을 때는 언제고!" 라며 순간 버럭했다.
하지만, 금세 잘못을 깨닫고 사과를 하고, 사과를 받아주며 사건이 일단락 되긴 했다.
참고로 절대 음담패설은 아니었고, 저급 농담도 아니었다. 그냥 제품에 대한 사소한 농담이었다.
그래도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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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대학교는 경기도에 있는 학교였다. 자연과학부였는데, 여자가 귀할 정도는 아니어도, 남자들 위주로 운영되는 학과였다.
남자 선배들은 그때 동아리방에서 빨간마후라를 틀어놓고 보기도 했고, 여자애들이 같이 보면 같이 본다고 대단하다고 했고, 안 본다면 "너도 다 볼거면서 유난떤다. 나중에는 라면 먹으면서 볼껄" 이러면서 빈정대고 깔깔댔었다. 흑인 남자 대물을 맛보면, 다시는 동양 남자를 못 만날 거라는 등등 지금 생각하면 진짜 성희롱에 가까운 음담패설을 하곤 했었다.
나는 그때마다 차라리 같이 보는 편을 택했다. 술을 잘 마시는 편을 택했다. 같이 욕을 하고, 깔깔대고, 더 심한 야한 농담을 하며 웃는 포지션을 택한 것이다.
그러다 어느날 기분이 안 좋았다.
앞에서는 분위기를 망칠까봐 깔깔 웃었지만, 그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생각에 깔깔 웃고, 약해 보이기 싫어서 더더더 세게 농담하고 술 먹고 욕했지만.
집에 와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인간들과 계속 있으면, 이런 종류의 인간들과 비슷하게 되고, 이 들 중에 하나랑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나는 휴학을 하고, 여자 대학교로 편입을 했다.
나는 여중, 여고, 여대, 여자대학원 그리고 여초회사만 다니는 길을 택했다.
남자들이 진짜 싫었다.
남자들이란 하나같이 여자들을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만 있는 종족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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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인터넷으로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다.
여러 글들을 읽으며 나 스스로 계몽을 시작했다.
그 중에 어떤 글이 있었는데,
많은 여자들이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도 될까요? 내가 기분 나빠도 될까요?" 라는 글을 쓰는데,
이는 자기 기분조차 허락을 받으려는 뜻이고, 오랜 "을"의 입장에서만 쓸 수 있는 글이란 내용이었다.
아!! 과거의 내가 그랬구나
남자들의 음담패설에도 내 기분을 먼저 생각하지 못하고, 분위기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시댁의 갑잘에도 내 체력과 내 기분과 내 일정을 먼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시댁에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서 내가 참았구나. 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남자들도 그럴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여자들이 아무래도 더 많이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을까 싶다.
분위기를 맞추려고
멋모르고 웃는 모든 상황과 사람을 싸잡아 계몽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럴 수도 있으니까
단지, 뒤돌아 아니다 싶으면
그때라도 말을 해서, 고치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남편처럼 사과하면, 태도와 진실성을 보고 받아주면 되고
사과 안하면 안 보고 살면 되니까
직장상사나 시어머니같은 존재에게는 말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일단 깨닫고 생각이라도 하고 시작하는 거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