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은 어떤 사이일까?

by 지망생 성실장

어제 모처럼 혼술을 했다.

남편이 시아버님 장례식에 온 친구들에게 밥을 사는 모임에 나갔고,

나는 혼자 모처럼 술을 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학원 근처 동태탕에 소주를 하려고 했는데,

장사가 잘 되는 그 집에서 1인 손님은 저녁에 못 받는다고 쫒겨났다.

단골집이었는데, 이사 가기 전에 혼자 이별주를 하려고 했는데 김이 세서 마음이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마포구청에 있는 김치찌개집에 가서 혼술을 했다.

그 집은 김치찌개도 1인분 가능하고, 혼술도 눈치주지 않는 곳이라 좋았다.

김치찌개도 맛있었고, 참이플 후레쉬도 맛있었다.


나 외에도 혼자 1인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몇명 있었다.

조용한 그곳에서 KBS 일일 드라마를 보며 소주를 3분의2병 정도 먹고 일어났다.


9시도 안되었는데

집에는 둘째가 혼자 있는데

집에 가봤자 둘째한테 숙제하라고 잔소리만 할 게 뻔해서 집에 가기 싫었다.

집까지 걸어가다가

감자튀김에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술집에 들어갔다.


테이블 10개 정도 있는 작은 술집인데

안주가 싸고 간단해서 원래도 인기있는 술집이다.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서

배는 부르지만 감자튀김과 맥주를 주문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 빼고 다 3-4인씩 모여 술을 한잔씩 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남자들이었다.

보통은 20대 손님이 많았는데

오늘은 옷 차림이나 얼굴이나 대부분 30대 40대 같았다.

금요일 저녁이라 집 근처에서 한잔 하는 모양이었다.


가만히 보니 정말 다 남자들이었다.

유뷰남 혹은 노총각 같은 후레한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남정네들이었다.

문득 궁금했다. 저들은 어떤 사이이길래 금요일 저녁 9시에 술을 함께 한 잔 할까?


가족들이라면,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내와 남편과 시동생이나 처남과 함께 사나?

아니면, 근처에 사는 가족들일까?

모처럼 여자들은 빼고 남자들만 한잔씩들 하는 것일까?


친구들이라면 어떤 친구?

애들 모임에서 만난 상대방 애기 아빠?

조기축구회 같은 동오회 모임?

아무리 봐도 회사동료들 같지는 않아서 이런 저런 추측을 하다보니

결국은


어떤 이유에서든 동네친구들일 것이다

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동네 술 친구를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동네에서 술 먹고 실수라도 하면 얼굴들고 다닐 수도 없고, 애들한테도 귀에 들어갈테니 조심스러울텐데.

아니 애초에 동네친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몇년을 한 층에 살아도, 엘레베이터에서 인사하는 정도이지, 딱히 친분을 나누는 시대가 아닐 텐데.


그리고 총각이라면 모를까.

애들 아빠라면 축구던 뭐던 동오회를 나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당키나 할 까?


아니 어쩌면 나만 이렇게 집 회사만 다니고

남들은 취미도 하고, 동네분들과 인사도 하고, 정도 나누고, 술까지 함께 할 수 있을 정도로 친분을 돈독히 하고 사나?


나만 이렇게 사나?

술 한잔 하고 전화할데도 없고

술 한잔 하자고 할 동네친구 하나 없이 사는가?

하는 불순한 생각이 시작됬다.


편한 옷 차람이로

슬리퍼신고 휘적휘적 나와서 동네친구랑 내일 출근 걱정 없이 불금을 즐기며

술 한잔 하는

이 술집의 모든 이들이 부러워졌다.


나는 반쯤 마신 맥주잔을 내려놓고

몇 점 먹지 못한 감자튀김을 두고

자리를 일어났다.


불순한 생각이었다.

그래 저들도 오늘같이 편한 술자리는 몇달만일 것이다. 자주 저러진 못할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신났지.

무슨 사이인지는 모르지만,

저들 속에도 가식적인 사이도 있을 것이다.

라는 신포도 같은 마음을 먹으며 계산을 하고 집으로 갔다.


둘째가 티비보는데 엄마가 빨리 왔다고 뭐라고 했다.

그래도 엄마가 온 게 좋다고 했다.

독서실에서 큰애가 늦게 왔다.

술취한 엄마를 보고 혀를 끌끌 차더니, 찬 물을 떠다줬다.

그리고 주절주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 참 하고 들어가 잤다.


나도 잤다.

집이 최고다

애들이 빨리 커서, 집에서 술먹어도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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