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일기 7
오전 10시, 지금 나는 커피 한잔을 옆에 두고 일을 하려고 앉았다. 심지어 샤워도 하고, 머리까지 감고 출근을 했다! 비가 내리는 어둑한 날이지만, 오래간만에 시작이 좋은 하루이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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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원과 스마트 스토어를 남편과 같이 하고 있다. 나는 전화응대, 상담, 홍보, 내일 배움 카드 관련 행정 처리와 물건값을 매기는 일등을 하는데, 원칙적으로 사무실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다. 그래서 친정으로부터 육아 독립을 하며, 회사 근처로 이사 온 후,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었다.
재택... 에휴...
퓨전은 장점을 모은 것이 아니라, 단점이 더 커진 다는 것을 알면서, 그래서 식당 가면 오리지널만 먹는 사람이. 재택은 왜? 좋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심지어 시험공부 전에는 대청소를 해야 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할리퀸 소설을 읽던 인간이...
애들 학교 보내고, 일을 하려고 하면, 설거지가 보이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그것을 또 설거지를 하고, 책상에 앉으려고 하면, 학교 알리미가 울리고, 책상에 앉으려고 하면, 상담 전화가 오고, 애들이 오고, 간식을 챙겨주고, 공부를 봐주고, 놀이터에 감시자로 앉아 있고, 저녁을 먹이고, 치우고, 숙제를 봐주고, 그 사이 틈틈이 오는 상담 전화를 받아 응대를 하고 나면 밤 11시. 지쳐 앉아 있으면, 남편이 12시쯤 온다.
내 눈치를 보며, '오늘도 일은 안.. 아니 못했지.. 괜찮아. 나 배고픈데 그냥 라면 끓여줄 수 있어?'라고 남편이 말하고, 나도 남편 눈치를 보면서 라면이나 밥을 꺼내 주고. 학원생 상담, 민원, 행정 보고를 하고, 남편도 강의하던 일, 스마트 스토어에서 있었던 일 등등을 대화를 빙자해서 회의를 하고 나면, 새벽 2-3시. 그리고 또 자고, 또 다음 날이 시작된다.
그리고 다음 날은... 애들 학교 가자마자 1-2 시간은 잠을 더 잔다. 전날 늦게 자니 피곤하니까!! 그러면 11시이고... 2시간 뒤면, 애들이 온다는 생각에, 2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무슨 일을 하냐는 자괴감에, 영감이 안 떠오른다는 핑계에, 지금 일을 하면, 피곤해서 애들한테 짜증을 낼 수도 있다는 헛된 두려움까지 상상하고 나면, 큰애가 뿅 하고 집에 와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애들 학교 갈 때, 나도 책상 앞으로 출근해서, 10시부터 3시까지 일을 바짝 하고, 3시부터 9시까지 애들을 바짝 보고, 9시부터 11시까지 집안일을 하고, 12시에는 잠이 드는 것인데. 일단 잠을 새벽 3시에나 자다 보니...... 내 체력은 바닥이다.
내 체력은 진짜 바닥인데. 어느 정도냐면, 놀이터에 애들 노는 것을 감시하며, 벤치에 1시간만 앉아있어도, 집에 오면 30분은 누워있어야 할 정도. 우울증과 당뇨 때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결혼 후, 불규칙한 생활리듬과 안 좋은 식습관과 운동을 전혀 하지 못한 것들로 진짜 체력과 건강이 안 좋아서인 것 같다. 일단 결혼하고 출산 후에는 내가 만든 밥이 너무 싫다. 요리를 잘하는 편이라 다들 맛있게 잘 먹는데, 나는 내 노동의 결과를 편하게 즐길 수가 없다. 게다가 설거지 으윽 극혐!
심지어 내가 잘 차린 밥에 온 가족들은 멀쩡하게 밥 먹는데, 나는 옆에서 밥그릇이 아닌 플라스틱 반찬통에 밥이랑 국을 대충 담고, 국에 대용량으로 구매한 라면 수프를 타서 먹을 정도이니 쩝.
암튼 결론은... 방학은 방학이니 당연히 재택근무가 안되고, 애들이 학교를 가도, 그 시간에 너무 피곤하니 결국은 자버린단 말인데. 참... 어찌해야 쓸까나...
그럼 오늘은 어떻게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출근을 했냐면
어제 하루 종일 잤다... 애들 공부도 안 시키고, 청소 설거지 하나도 안 하고, 밥도 다 시켜먹고, 그리고 '브런치를 몰래 했다'. ㅋㅋㅋ 라이킷이 달리니 좀 기분도 좋고, 비타민제를 먹은 것 같았다. 마치 수업 시간에 그린 만화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히쭉히쭉 웃음이 나는데, 아무에게도 자랑을 못하는 것 같은 상황 같다. 암튼 그 기분에 애들도 그냥 자라고 했고, 남편이고 뭐고 나도 같이 10시에 자버렸다.
그랬더니 아침에 일어날 힘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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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들 학교 보내고, 습관적으로 자려고 누웠는데. 남편이 손을 내밀었다. "오늘은 나도 일찍 나갈 테니까. 같이 출근합시다. 씻고, 출근합시다." 라며 힘을 주었다. 어제 일찍 잠도 잤겠다. 핑계도 없으니 그냥 같이 나왔다. 씻고 집에서 나오고 나니 기분이 좋다.
어제 무엇을 했던, 안 했던, 상관없이 푹 쉰 어제 덕분에, 오늘 일찍 일어나서 출근을 했으니.
오늘 시작이 감사하다.
어떻게든 다 잘 될 것이다. 뭔지 모르지만 잘 될 것 같은 믿음을 갖기로 했다.
오늘 아침이 감사하다.
브런치를 마친 지금 11시 11분, 바로 발행을 누르고, 일을 시작하겠다!!
오늘은 재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