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받이가 되어 준 남편이 고맙다

감사 칭찬 일기 8

by 지망생 성실장

"씨* 존*"

내가 어제 남편에게 보낸 카톡이다.


나는 진짜 욕을 안 하고 살았었다.

부모님은 문화적으로 우아함을 추구하셨고, 배운 사람, 교양 있는 집안에 자부심을 가지신 분들이셨고, 언니도 모범생이었으며, 나도 딱히 일탈하지 않았기에 입이 거친 친구들은 하나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작가를 기웃대고, 논술 강사 등을 하며, 나름 "말과 글"을 다루는 직업에 자부심이 높았기에 단어 하나 선택할 때도 잘난 척하려고 어려운 단어를 쓰면 썼지, 비속어는 입에 담지 않았었다.


내가 처음 욕을 하기 시작한 것은, 전 재산을 사기당했을 때, 사기꾼을 잡으러 다니고, 법원에 진술서, 고소장 등을 변호사 안 통하고 작성하면서였다. 만져보지도 못한 전재산을 사기당한 상태에서, 정신을 부여잡기 위해 발악을 하며, 돈이 없어 오뚜기 대용량 라면수프를 손가락을 찍어 먹으며, 소주병을 들이마실 때,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그래도 욕을 부사로 사용했지 어떤 이를 지칭하지는 않았다. 혼자 또는 남편하고 있을 때만 욕을 섞어 말할 뿐었다. 아무도 내가 욕하는 것을 몰랐다.


그때 무엇이든 도와주려던 친정과 평생 은인이신 어린이집 원장님이 아니었으면 어찌 되었을지 모르겠다. 나는 60일 된 둘째까지 어린이집에 맡기고, 콜센터로 취업했고, 예술가인 남편을 달래고, 꼬드겨서 돈 벌게 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버텼다.


솔직히, 그때가 좋았다. 왜냐면 "육아를 안 했으니까" 맘 편하게 애를 놓고, 돈 벌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 수 있으니 너무 좋았다. 큰애와 단 둘이, 산후 우울증으로 엉엉 울던 시절보다 차라리 더 나았다. 회사에서는 날 능력자로 인정해주었고, 고객들은 난 신뢰했으며, 단돈 5만 원이라도 인센티브를 받으면, 2만 원은 친정 엄마 커피값 드리고, 3만 원으로는 신나게 애슐리에서 뷔페를 먹으며, 맘껏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애들한테 화도 별로 안 냈고, ( 얼굴 볼 시간도 없었지만 ) 내가 평생 살던 동네에서, 안정감을 느끼면서 차곡차곡 돈도 갚으면서 멀쩡하게 살던 시기였다.


*


그래서 많이 컸다고 생각한 나는, 애들을 데리고 친정에서 육아 독립 겸 이사를 감행했는데....

그게 잘 못 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살림과 육아와 그리고 커진 사업을 다 감당할 그릇이 나는 아니었던 것이다. 남편도 생각보다 더더더 집에 없었다. 나 혼자 애들 학원을 알아보다, 코로나로 온라인 하게 되면 그거 봐주다. 밥 해주다, 친구들 관계에 고민하다. 늘어난 대출금을 보며 가슴을 졸이다. 일에 집중을 못 하고 그게 스트레스가 되고. 돈 버는 것에 더 도움이 못 된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고...


그러다가 다시 욕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애들 앞에서도 "썅" 이란 접두사를 쓰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처음 "썅"이 나왔을 때는, 나 자신이 너무 소름 끼쳐서 무서웠다. 그래도 뻔뻔스럽게 아무것도 아닌 척 지나가버렸다. 애들한테 엄마의 권위가 깎이는 게 싫었나 보다.

그런데, 결국 수위는 점차 올라가고, 애들도 욕을 배우기 시작하게 되고, 남편에게 고해성사를 했다.


남편은... 자기에게 욕을 하라고 했다. 정신과 상담도 받고, 심리치료도 했지만. 남편은 '욕하고 싶으면 나한테 하라고 다 들어준다고, 애들을 못 봐주는 나한테 화풀이를 하라고 미안하다고. 이해한다고'


그런데

내가 얼마나 꼬인 상태였냐면, 남편이 본인에게 욕하라고 할 때 내가 처음 든 생각이


12년 전 울며 불며 딱 1분만 나 좀 쉬게 해달라고 할 때는 방법을 모르겠다면 나 몰라라 하던 인간이 이제야 도와주겠다고 하네, 그때 1분만 10분만 나 쉬게 해 줬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했을 텐데, 내가 얼마나 육아를 두려워하고, 애들하고만 있는 것에 힘이 달리는지 그때 도와주었으면, 기저귀 한 번이라도 갈아주었으면 내가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흥! 지금 내가 없으면 사업이 안 돌아가고, 돈을 못 버니까 저러는 거지, 신혼 때처럼 내가 살림만 하고 돈을 안 벌면 그래도 저렇게 나를 달래주고 했을까? 아니, 돈도 못 벌면서 지랄만 한다고 더 성을 냈겠지. 더더욱 집에 안 있었겠지. 내가 돈 버는 거에 도움이 되니까 억지로 저러는 거지


그래. 나를 돕는 게 아니라. 애들을 위한 거겠지. 애들이 다칠까 봐 일단 날 달래는 것뿐. 어차피 날 위한 것은 아니지


이런 생각을 했었다.


심지어, 남편은 한 번도 이혼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진짜 과대망상처럼


흥! 이제 애들이 컸다 이거지, 이제는 내가 애들 두고 집을 나가도 애들이 혼자 먹고 씻고 티브이 보고 다 하니까. 이제는 내가 애들 놓고 나가도 본인이 다 케어 가능하다. 생각하겠지. 엄마는 필요 없다 그런 생각도 하고 있을걸.


이혼해도 내 명의 재산도 없으니 위자료도 못 받을 거고, 욕하는 엄마니까 더더욱 나는 돈 한 푼 없이 쫓겨날 거고, 애들도 엄마를 안 찾겠지, 나는 나이 마흔에 하나도 이룬 것이 없다. 예전에는 애들이 어리니까 이혼한다고 하면 애들 봐줄 사람이 없이니까 붙잡았겠지만, 지금은 내가 이혼하자고 하면, 아무도 안 말릴걸.


이런 생각에, 스스로 욕받이를 자처한 남편을 보며,

"그래 너 남편 욕먹어도 된다. 너 때문이다" 하면서 당당하게 남편에게 욕을 했다.


***


실제로 욱할 때

애들에게 방으로 들어가라서, 아빠랑 이야기하라고 하고,

나도 따로 남편 통해서 이야기하니

훨씬 감정이 누그러졌다.


어제도 일이 터졌는데, 애들한테는 참으로 이성적으로 대화했으며, 공감하는 대답도 해주었다.

애들 앞에서는 욕도 안 했고, 손찌검도 안 했고, 웃지는 못 해도 평화롭게 잠들었고.


남편에게만 씨* 하면서 화를 풀다가.

남편이 들고 온 맥주와 브런치의 라이킷과 치킨으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욱한 것도 오래간만이었는데.

최근에는 침착하게 감정 조절하면서 상황을 잘 대처해온 것 같다.


남편이고, 애들 아빠니까

애들과 나의 중재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욕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데,

그것까지 감수하며 노력해줘서 진심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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