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입니다.
여보세요. 오랜만에 전화했네. 잘 지냈어?
왜? 무슨 일인데?
에휴......
너는 참...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니? 많은 이들이 매일 겪는 일인 걸.
내가 보기에는 그냥 설거지하다가 그릇 깬 것처럼 흔한 일 같은데. 그런 일 살면서 한 번도 안 당한 사람 있니? 다 비슷해. 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거야. 별 것도 아닌데 너는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징징대니?
그래, 알았어, 미안해. 네가 이런 말 들으려고 전화한 거 아니지...
그래, 너한테 아니 그 누구에게도 그런 일은 사실 작은 일은 아니지, 흔할 수 있지만. 작은 일은 아니지, 당장 수습하려면 돈이며 시간이며 그래 그래 알아. 네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그런데 참 이상해... 왜 유독 너한테만 그런 '특이하고, 이상하고, 귀찮고, 괴로운' 일들이 자주 터질까?
아니... 내 말은...
그래! 사실 네 탓 같아. 야! 내가 무슨 네 하소연 들어주는 사람이냐? 몇 달 만에 연락 와서 또 울고, 또 신세 한탄하고, 또 자책하고. 나보고 어쩌라고.
그냥 듣기만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번 전화할 때마다 힘들고 괴롭다고 징징대는데, 나도 다 똑같거든! 누구나 다 똑같거든!
그리고, 네 남편 욕을 같이 하자니, 그렇다고 네가 이혼할 것도 아니잖아. 결국 같이 살 거면서 내가 욕해봤자 나랑 멀어질 거고,
네 자식 욕을 같이 하자니, 결국 너 듣기만 괴로울 것이고.
결국 네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내가 몇십 년을 그렇게 조언을 해줘도, 너는 하나도 안 바뀌잖아. 내가 돈을 이렇게 해봐라. 운동을 해봐라. 남편한테 자식한테 이렇게 해봐라 말해봤자 넌 안 바뀌잖아.
잘 모르겠어. 너한테 이런 하소연 전화가 오면 내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쩜 너는 평생 그렇게 징징대기만 하니.
차라리 네가 잘난 척을 하면, 좋겠다 박수 쳐주고 내가 배 아프면 말 텐데
맨날 이래서 괴롭고, 저래서 괴롭다고만 하는데, 나는 가슴이 아파.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럼 나는 무슨 인형이냐? 그리고 그렇게 몇 시간, 몇 년을 들어줘봤자. 너는 하나도 바뀐 게 없어. 어제는 이래서 힘들었고, 오늘은 저래서 괴롭고, 내일은 오늘 때문에 어제 때문에, 본인 때문에 힘들고 괴롭겠지. 몇 달 만에 전화해서 똑같이 문제가 생겨서 전화했다는 것만 반복하는데. 이젠 나도 지겹다.
아니야, 전화 끊지 마, 알아. 이제 너한테는 전화할 상대도 나 밖에 없다는 것을 나도 알아.
너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너도 이렇게 나한테 징징대고 나면, 나한테 미안해서 또 몇 달을 연락 못하거나, 괜히 선물 보내면서 고맙다고 하면서 내 눈치 보는 것도 다 알아.
나 밖에 없어서 연락하는 건지
내가 제일 좋아서 연락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지만
전화받았잖아. 나도 너에게 애정이 있다고. 뻔히 알면서 전화받고, 뻔히 알면서 똑같은 말 하는 나도, 너한테 애정이 있다고
죽겠다는 말 하지 말아
너 몇십 년 동안 죽겠다고 죽고 싶다고 하면서 시도도 안 했잖아. 결국 마지막은 "자식도 있고, 가정이 있으니 살아야지"잖아. 앞에 건너뛰고, 두괄식으로 결론부터 말하고 생각하고 살아.
"결론은 산다" 그 한 문장만 말해버려, 왜 쓸데없는 서두를 길게 말해서 너도 나도 힘들게 하니.
넌 결국, 어떻게든 살고 싶고, 너도 결국 행복하고 싶다면서. 왜 너만 불행하냐고 말하지 말아.
너 스스로 불행부터 쓰고 있잖아.
돈 좋아하는 사람은 눈 뜨면 돈부터 생각해. 음악 좋아하는 사람은 눈 뜨면 음악부터 틀어, 자식새끼 좋아하는 사람은 눈 뜨면 자식 밥부터 하는 거야. 그런데 너는 눈뜨면 '나는 불행하다. 괴롭다'부터 생각하잖아. 그냥 그래 너는 '불행을 좋아한다' 인정해버려.
그래. 차라리 인정해버려.
태어나서부터 팔 한쪽, 다리 하나 없이 태어난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고, 자기 몸에 적응해서 잘 사는 사람처럼,
너는 그냥 우울을 품고 태어난 사람이다. 천성이 우울증에 걸려 태어났다 인정해버리자.
선천성 우울증 환자일 뿐, 평범한 사람이다. 이렇게 몇십 년 그 우울증 증세를 들어주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지켜보면서 잔소리는 하지만 내치지 않는 남편과 자식도 있으니, 선천성 사이코패스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그냥 그렇게 살아버려.
나도 너를 그냥 그렇게 생각해야겠다.
내가 너를 바꿀 수 없고, 너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우울증 걸린 내 친구, 우울증 빼고는 다를 건 없어요. 그냥 징징대고, 투덜대고, 오만가지를 과장해서 불행으로 만드는 것뿐. 다른 건 다 똑같아요.'라고 생각해버릴게.
야! 울지 마. 왜? 내 말이 또 슬퍼?
내가 곱게 말 못 해서 미안한데. 이 정도면 나 진짜 좋게 위로해준 거거든.
네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미안한데. 너도 그렇게 생각해 "이 사람도 참 냉정한데, 또 이야기는 다 들어주니까. 그게 어딘가. 투덜대면서 들어주는 친구가 나도 있긴 하다. 그게 어딘가." 하고 생각해.
웃는 거야? 기분이 좀 나아? 너도 특이하네...
뭐라고? 그러고 보면, 몇십 년을 징징대는 것을 받아주는 나도, 몇십 년 동안 위로 방식이 늘지 않는 나도 웃기다고? 나도 뭐... 선천성 위로 못하는 사람 인가부지 후후후
그래, 기분이 좋아졌다니 다행이다. 그래, 나는 잘 지내. 나는 뭐 그냥 그래.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고, 매일 비슷비슷하지. 나이 드니 나는 다 시큰둥하고 무덤덤한데. 너는 하나하나 반응하는 거 보면 네가 젊게 사는 것 같기도 하네. 괜찮아. 괜히 미안하다고 쪽팔린다고 혼자 생각하지 말고. 속 풀이했으니 다행이다 고맙다 생각하고 말아.
잘 자. 연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