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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업

by 지망생 성실장

태업 : 노동자가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 일부러 작업 능률을 저하시켜 사용자에게 손해를 주는 행위.


태업을 한지 2주일 정도 된 것 같다.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계속 일을 미루고, 못 본척 하고, 힘들다 힘들다 소리만 반복했다.


남편 사장님은 지켜보고, 응원해주다가, 결국 힘들게 "언제까지 그럴거냐고" 한마디를 했다.


월요일인 어제가 정신과 진료일이었다.


중간중간 문진표같은 것을 작성하는데. 항상 질문이 같았다.

그리고 솔직하게 죽고싶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잠이 많아졌다 등등 안 좋은 쪽으로 작성을 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께 솔직하게 말을 했다.

"눈이 안 떠지는 것이 정신과 약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일주일간 약을 안 먹었습니다. 특히 잠들기 전에 먹는 약은 너무 많이 잠을 자니까 남편이 먹지 말아보라고 해서 안 먹었는데.. 근데 그랬더니 밤에 한 숨도 못 자고 정말 너무 괴로워요.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정말 태업을 하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지난 1년동안 못 보던 모습으로 굉장히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약으로 당신을 다 치료해줄수는 없습니다. 정답은 알고 있으세요.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자고, 먹고 하는 생활이 정답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못 산다면서요. 장사를 2개나 하면서 또 돈 없어질까봐 일을 줄일 수 없다면서요. 그래서 약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뿐이고, 약이 지금 당신을 다 치료해주거나 낫게 해줄 수는 없습니다.

지금처럼 현재 불안증과 우울증이 너무 높아요. 이런 식으로 약을 안 먹고 움직이면서 증상이 심해지면, 입원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싫으면 약을 열심히 먹고, 어떻게든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진료를 받으며 울었던 적은 없는데, 이번에는 좀 울었다.

약이 치료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살도록 도와주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내 삶을 컨트롤 하지 못하기에, 죽으려는 것을 최소한으로 막기 위한 처방이었음을 알았다는 점이 새로웠다. 그래서 앞으로는 죽이되든 밥이되든 약을 열심히 먹으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약을 1년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쪽 눈이 자꾸 감기는 증세가 나타날 정도로 호전되지 않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약을 안 먹으면 더더욱 심각한 증세가 나타나고 "일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지니까"


언제부터 왜 태업을 하게 되었는지를 정리해본다.


태업을 하게된 이유는

1, 체력저하 - 2주 연속, 1박2일, 2박3일 여행과 주말 시댁모임이 있었다. 시댁모임도, 여행도 여러 필요성에 의한 일이었고, 나름 즐거웠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의 결과로 심한 피로감이 누적되었는데. 쉬는 날 없이 일하다보니 결과적으로는 몸을 가누지를 못하게 된 것이다.


2. 장사가 잘 안됨

새로운 손님이 없다. 컴플레인과 환불이 많아졌다.

장사 8년동안의 가장 심각한 달이다. 이렇게 등록생이 없고, 환불이 있던 적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핸드폰이 울리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화부터 난다.

전화벨이 울리면 "신규생인가?" 하는 설레임으로 즐겁게 상담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안된다.

친절한 응대 상담 -> 등록 -> 리뷰 -> 전화 -> 친절한 응대 의 선순환이 되어야 하는데

환불 -> 의기소침 -> 상담전화 저조 -> 의기소침 -> 응대의 만족도 떨어짐 -> 등록생 저하 의 악순환이 되고 있다.


3. 집안일의 스트레스

밥 한끼라도 차려두고 나가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거나, 저녁 늦게 자야한다. 그나마 그 밥도 잘 챙겨먹지를 않는다. 그래도 햇반에 인스턴트 반찬으로 끼니를 떼우다보니 애들은 엄마밥이 그립다고 한다.

있는 힘을 모아 장사를 해야 할지, 집안일을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그나마 겨우 밥을 몇 번 했다. 있는 힘을 모아 새끼입에 넣을 밥을 해놓으니 기분이 좋긴 했다.

하지만 남은 에너지가 없으니 회사일은 더욱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4. 나 아니면 안되는 건지 확인하고 싶은마음과 나 아님 왜 안굴러가는지에 대한 억울함(?)

장사하는데 기본적인 탕비실 음료 채워넣고, 쓰레기통 비우고 하는 일도 하기 싫었다. 너무나 기본적인 것들인데 내가 이정도로 안해도 굴러가나?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뭐랄까... 이렇게까지 내가 힘들어서 일을 못하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고 도와줄 사람이 없는가? 를 확인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학원꼴만 우스워지고, 약 먹고 얼릉 처리했다.

그냥 내 자신이 더욱 한심해졌을 뿐이다.



내가 그 동안 왜 회사를 1년이상 제대로 다니지 못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태업을 해도 내 회사니까 다행이기도 하고,

반면에

대출이 너무 많은 이 시점에 내가 가족들을 죽이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과약 단약 1주일, 다시 약을 먹은 2일째

생각이 좀 명료해졌다.


결국 피로감을 못 견디고 폐업을 했구나. 거기에 움직이는데 도움이 되는 약까지 안 먹었으니 오죽했겠나


약을 다시 열심히 먹기로 한다.

직원을 다시 열심히 뽑아보기로 한다.

아무리 장사가 안되고 힘들어도 낙담하지 말고 기도하면서 오늘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든 하기로 한다.


주인이 태업하는 사업이 잘 될일이 있나.

내 자신부터 탓하고, 반성해야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살 수 있을 것이다.


약 2번 먹고, 꽤나 긍정적으로 바뀐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정신과약을 먹고 있다면

정말 꼬박꼬박 열심히 먹읍시다.

나처럼 후회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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