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와 양치만 한지 3일째다.
머리를 질끈 묶고 속옷은 갈아입어서 남들은 모를 것 같다고 버티는 중이다.
남편은 얼굴을 찌푸리지만......
씻지 않는 것이 우울증의 증세인 것 같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몸이 피곤하니까
1분이라도 더 눈을 감고 있고 싶다.
남편이 출근 준비를 하면
눈을 질끈 감고 최대한 늦게까지 버티고 있다가
아슬아슬할 때 세수와 양치만 하고
옷을 갈아입고 뛰어 나가는 것이다.
정신과 약을 먹은 지 1년이 넘었는데,
왜 한쪽 눈을 못 뜨고,
이제는 씻지도 않는 것으로 증세가 더 악화되었냐고 소리치고 싶다.
그럴 때면 의사 선생님이 한 말을 생각한다.
"지금 환자분은 일상생활이 너무 힘들어요. 규칙적으로 먹고 자고 쉬고 해야 하는데 일상이 너무 불규칙하니까 병이 안 나아요. 약은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뿐이고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안 됩니다"
그렇다.
모든 것은 불규칙한 생활과
돈에 대한 불안감과
좋은 엄마 노릇을 못한다는 ( 숙제도 못 봐주고, 밥도 못 차려주는 ) 죄책감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것들을 해결을 못하면서 약 먹었는데 왜 안 낫냐고 하다니
헬스장에 돈 냈는데 , 운동은 안 하고, 돈 냈는데 왜 살 안 빠지냐고 화내는 진상 손님과 같다.
결국은 장사가 안정돼서
직원이 생겨서
시간을 가지고
집안 살림과 일의 밸런스를 맞추면 될 일인데.
장사란 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서 생긴 일이다.
인생이 아무리 한 치 앞을 못 본다지만
장사는 아무리 오늘 장사가 잘 돼도
내일을 알 수 없으니 불안할 뿐이다.
장사 사업을 안정적으로 꾸리고
직원들 잘 건사하는 사장님들이 너무 부러워
관련 책도 보고 유튜브도 보긴 하는데
나에게 대입해서는 왜 잘 안 풀리는지 모르겠다.
매일 매달 정산을 할 때면
대출 원금을 갚지 못하고, 겨우 이자만 어찌어찌 갚고 나면
안도의 한숨과 함께
불안함이 밀려온다
다음 달 대출금 이자도 못 내면 어쩌지?
다음 달 생활비가 없으면 어쩌지?
다시 그때처럼 힘들어지면 어쩌지?
한때 버스비가 없어서 뻔뻔스럽게 그냥 버스를 두세 번 탄 적이 있다.
신용불량자로 후불 교통버스카드 발급이 안 돼서
교통카드에 한 달 치 교통비를 입금해 놓고 타는데
계획보다 더 출근을 해야 할 때였다.
정말 돈이 없으면 바닥이 보인다고, 나는 그때 진짜 뻔뻔했던 것이다.
그리고 10년 전쯤,
집 앞에 키즈카페가 생겼을 때, 돈 만원을 겨우 모아서 처음으로 키즈카페에 갔었다.
둘째가 1-2살, 첫째가 4-5살이었을 때였다.
키즈카페에 가면 아이가 혼자 잘 놀 줄 알았는데
과자만 사 먹고 ( 과자 살 돈도 간당간당했다 )
티브이만 보고 앉아있는 것이다.
나는 퐁퐁도 타고, 소꿉놀이도 하고 좀 놀라고 아이를 닦달했다.
티브이만 볼 거면 이 큰돈을 들여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화를 냈다.
보다 못한 키즈카페 사장님이 쿠폰을 주면서
"입장료랑 동일하니까요. 다음에 그냥 오시면 돼요"라고
나가달라는 말을 했다.
아이랑 나오면서, 집까지 오는 길 내내 난 큰애에게 큰 소리로 화를 냈었다.
"돈 아깝다고, 돈 아깝다고"
돈이 없으면 사람이 이렇게 천박해지고, 흉악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날의 악몽은 지금도 생생하고, 아이에게 몇 번이나 사과를 했지만,
너무나 미안한 일화다.
돈이 없어서 다시 그런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의 정신병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지금 치킨 짜장면은 편하게 먹는 상황이어도,
장사의 특성상 많은 대출까지 있는 상황이기에
언제든지 나락으로 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 가장 큰 것 같다.
70살 80살까지 일하면서 사는 것은 싫지 않은데
구질구질 천박하고 흉악해질까 봐
그래서 일을 줄여, 육아와 일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해도
집에 있으면 돈만 축내는 것 같아서 악착같이 회사에 나오게 되고
회사에서는 또 애들이 걱정돼서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나마 큰애는 이제 다 커서 똑똑하게 할 일 하면서 잘 크는데
둘째가 영~ 일단 숙제를 안 하고 보는 스타일이다 보니 걱정이 크다.
당뇨약처럼 정신과약도 평생 먹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식이면
나는 환경을 바꾸지 못할 테니까
그래도 적어도 씻는 것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환경을 다 바꾸진 못해도
나 혼자 나 스스로는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침에 일어나서 씻는 것이 힘들면
저녁때 자기 전에 씻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물론 집에 도착하면 옷 갈아입을 힘도 없이 그냥 드러누워버리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상이긴 했지만,
오늘부터
아니 내일부터라도
자기 전에 씻기로
매일매일 씻기로
2일에 한 번은 꼭 머리를 감기로
다짐해 본다.
정신병 우울증이 조금은 나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