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칭찬 일기 10
어릴 때는 돈이 없고, 시간이 많고.
어른이 되면, 돈이 있는데 시간이 없다고 했었다.
내가 그럴 줄이야.
결혼 전에 내 여권에는 약 20개국의 비자 도장이 찍혀있었다. 15개국 한 달 배낭여행과 미국, 필리핀, 중국 등 짬짬이 여행을 자주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 후, 태교여행 겸 신혼여행으로 필리핀을 다녀온 것 외에는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 아니 하루 나들이조차 안 했었다.
남편이 어디 가자고 하면, "하루에 집 대출이자가 3만 원인데, 왜 나가서 또 집값을 쓰냐, 나들이? 당신은 나들이 준비도 안 할 거면서 나는 준비하고 애 안고 업고 먹이고, 와서 씻기고 짐 정리하고 나만 힘들다. 그리고 당신은 돈이 있어? 나는 어제 천 원짜리 동전 넣고 타는 폴리를 돈 천원이 없어서 못 해줬는데, 돈이 있어? 그럼 그 돈 나 줘, 그 돈으로 반찬거리 사야 해!"라고 악을 썼고, 그런 마음으로 가는 나들이는 꼭 악다구니를 하는 싸움으로 끝이 났다.
나는 남편에게 서운했다.
걸어서 5분 거리 백화점에 마트에 단 한 번도 못 가고, 롯데 999 마트에서 할인 붙은 거 6백 원짜리 양파를 사면서, 이유식 책에는 소고기 안심을 먹이라는데, 도저히 소고기 안심을 살 돈이 없어서, 호주산 뒷다리 다짐을 먹이는 나는 안 보이고.
놀러 갈 돈은 있다는 게, 놀러 갈 체력은 있다는 게 화가 났다.
문제는 안 나가기로 하면, 남편은 집이 아닌 "작업실"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다. 밥도 안 먹었다. 남편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에 있지 않았다.
내게 특별한 일은 돈쓰는 일이었기에
최대한 특별한 일을 안 만들려고 했고, 우린 더 멀어졌다.
그러다, 큰애가 3~4살 되었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큰애는 말이 빨랐다. 또박또박 아나운서 같은 또렷한 발음으로 친구들이 바다를 가는데 우리는 안 가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큰일이었다. 진짜 그때는 돈과 시간이 다 없을 시기였다. 애한테 아무것도 못 해주는 날 보고, 감사하게도 친정 부모님이 애기를 데리고 다녀와주셨다. 을왕리 바다도 데리고 다녀와주셨고, 웅진 플레이도시도, 강화도 펜션에 1박 2일로도 보내주셨다.
그렇게 몇 년 지나. 감사하게도 먹고살만해졌다. 그래서
큰애가 6살이었던 해에는 친정 찬조금 없이도 동물원도 가고, 월미도도 가고, 펜션도 가고, 웅진 플레이도시도 가보고 조금씩 나들이를 다녀올 수 있었고,
드디어 우리끼리 2박 3일 여행도, 베트남 가족 여행도 다녀올 수 있었다.
2018년 딱 그 해 1년이 참으로 행복했었다.
" 내 소원은 결혼 10주년에, 나 빼고 3 식구만 한 달 여행 다녀오는 것. 나는 가족과 떨어지고 싶다. 나는 여행이 싫다. 나 혼자 있고 싶다 "라고 말하던 나지만
이제는 꼭 같이 갈꺼야! 라고 말한다.
일단,
준비된 예산이 있다는 점이 안심이 된다.
넉넉하진 않지만, 매달 5만 원씩 모아서 50만 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매우 뿌듯하고,
기저귀도 이유식도 필요 없는 어린이가 된 애들은 여행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제 애들 다 컸는데, 나 혼자 멀어지면, 그동안의 내 노고가 없어질 거 같아서 불안함에 꼭 같이 가려고 하는 것도 있다.
무엇보다, 남편이 이제는 여행에 따른 스트레스 "돈, 그리고 시간과 체력과 관련한 내 스트레스"를 이해해준다. 이젠 여행 다음 날에 내가 왜 피곤해하는지, 내가 무엇을 불안해 하는지를 알아주니 좀 더 마음이 누그러진다.
지난 코로나로 3년 동안 여행은 꿈도 못 꾸었는데. 지금은 나라에서 숙박 쿠폰도 준다고 하니, 한적한(허름한) 펜션을 예약했다. 다음 주에 다녀올 것이다.
정말, 3년 만의 여행이고, 휴가다. 사실 코로나가 아니어도 여행갈 시간이 진짜 없던 시기라. 코로나 핑계로 못 놀던 것이 참 좋았는데. . . . . .
이젠 더이상 휴가를 미룰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여행 스트레스가 시작되긴 했다.
훌쩍 커버린 애들 수영복 쇼핑이나 가서 뭐 먹을지 고민하고, 애들 학원에 일정 안내하고. 보강 일정도 다 확인하고, 짐 싸고 하는 일들에 벌써 스트레스가 시작되긴 했다.
그래도 감사하다.
애들이 이렇게 좋아하고,
남편도 쉴 때가 되었고, 예산도 너무 타이트하지 않고,
무엇보다
남들 하는 것 우리 애들한테도 해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자식을 위하는 여행 준비로 웹서핑을 하며
정신없어 하는 나를 남편사장이 이해해주고, 일을 못 하는 것을 타박하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일은 많이 못 했다.
어젠 술도 먹었다.
그래도 출근은 했고, 밥도 잘해 먹었고, 설거지도 했고, 애들에게 소리 지르지 않았고, 기본 공부는 조금씩 시켰다. 오늘도 멀쩡히 하루를 산 나를 칭찬한다.
살고있는 나를,
내 우울증을 티 내지 않고 잘 숨기고 있는 나를
또 지난 3일간, 발행을 못 누르며 고민했지만
결국 용기를 내고 발행을 누른 지금의 내 용기를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