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칭찬 일기 11
감사 일기를 쓰다 보니, 죄다 남편 이야기다.
남편도 나도 집과 일터만 오가는데, 심지어 일도
같이하니, 내 일상이 곧 남편 일상이니 당연할 것이다.
남편 험담으로 시작해서, 남편 고마워로 끝나는 것이
혹 상처를 줄까 싶어
남편이 이 브런치를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커지고 있다.
결혼 12년 차가 되었다.
체감시간은 5년 같이 짧지만
사건을 나열하자면 30년은 지난 것 같다.
43살, 내 인생의 3분의 1을 가져간 남편은 나의 겉과 속을 다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고마운 사람이자
전형적인 한국의 가부장제와 자기중심적인 예술가 정신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상처는 나 스스로 낸 것이기도 하다.
결혼과 출산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나도 예술가의 헌신하는 아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 내 팔자 내가 꼰 것이 맞다.
어쩌겠는가 그때는 정우성보다 잘생겨 보이고, 신동엽보다 재밌고,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멀쩡했고 멋있었다.
심지어 지금도 아주 가끔 잘생겨 보이고, 재밌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멋지고, 능력 있고 자신감 넘치는 남자인 것을......
운명이란 어쩔 것인가.
남편이 만난 지 5개월 만에, 부평에 있던 2층 던킨도너츠에서, 지금은 음악 장비 사느라 대출이 있지만 지금 계약한 곡을 팔면 목돈이 들어오고, 국내 최고의 대학에 강의를 나가니 결혼하자고 했을 때.
우리 아빠도 엄마한테 솔직하게 빚을 이야기하고, 월급을 까면서 프러포즈했다는데
어쩜 우리 아빠처럼 솔직하고 책임감 있는 남자네
운명이네 생각하며,
나도 월 200 만원 이상 버니까. 둘이 먹고는 사니까 걱정 말라고, 청소를 해서라도 나는 뒷바라지를 해주마 했었다.
신혼 초, 남편의 음악만이 목표가 되었고,
나 스스로 나를 뒷전에 놓고는
가사노동 분담은커녕, 딸이라 기저귀를 못 갈겠다는 남편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안 시킨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나가야 하는데, 남편에게 육아를 하라고 말도 못 꺼내고, 친정엄마를 끌여들인 내가
내 팔자 내가 꼰 거지 싶다.
그래도 내 장점은 문제를 깨달았을 때
문제를 연구해서, 답을 찾고자 하고, 원인 분석 및 해결방안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 큰 단점은 진짜 죽을 때까지 참았다는 것이고... )
내가 콜센터에서 남자 팬티를 판매하고, 몇 년 만에 월급 180만 원을 벌었을 때,
나는 남편에게 사무실에서 집에 오지 말던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오지 말던지, 아니면 이혼을 하자고 했었다.
아이가 없었으면 단칸방도 좋았고, 함께 시간을 안 보내도 괜찮았고, 내가 돈 벌 수 있는 곳도 충분히 많았다. 아이가 없었으면 남편은 아마 10집 앨범까지 냈을 거고, 스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린 아이가 있었고,
아이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는데 애 때문에 일을 못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아이 아빠가 있음에도 친정 도움을 받고, 나만 눈치 보는 것이 괴로웠다.
차라리 이혼을 하면 편하게 도움을 받던지, 안 힘들게 애를 놓고 나와 편하게 살며 돈을 모으던지, 어떤 경우의 수를 놓고 봐도 이혼이 나에겐 더 좋았다.
당장 오늘 남편 밥이랑 빨래만 안 해도 살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남편도 음악을 하려면, 차라리 그게 좋았다. 혼자 음악을 뜯어먹고 살고, 아빠 노릇은 생일 명절 방학 때 하루 이틀 놀아주면 되는 것이니, 내가 좋은 아빠로 말은 잘해
줄 것이고, 혹 딸들이 음악이든 미술이든 그쪽으로 나가면 든든한 아빠가 될 테고 말이다.
나는 정말 살고 싶지 않았다.
" 당신 딸이 나처럼 살면 좋겠어?
당신은 나에게 돈은 둘째고 시간도 주지 않았어. 혼자 음악해. 음악을 포기하게 만들고 싶은 건 아니야. 당신이 음악을 했으면 좋겠어. 내가 능력이 이것뿐인 거야. 그냥 각자
잘 살자. 같이 이렇게 살지 말고"
그리고 서로 애들은 포기 못 한다고, 싸우다가
결국은 내가 그냥 애를 포기한다고 했다.
애를 두고 이혼하자는 그 말에
남편은 매우 충격을 받고, 이후 몇 년에 걸쳐 자기 자신을 다 바꿔버렸다.
남편은 계속 "사랑하니까. 당신을 사랑하니까. 노력한다. 다 할 것이다. 미안하다" 말해주었고, 진짜 차곡차곡 많이 바뀌었다.
미안하단 소리도 하고, 시댁에서 내 말 한마디에 바로 엎드렸으며, 애들하고도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고, 이젠 내가 지랄병이 도지면, 맥주를 사주고, 설거지를 하며, 가사노동을 못 함을 사과하며, 듣기 좋은 말도 해준다.
무엇보다
"나는 애들 때문도 아니고, 돈 때문도 아니고, 당신을 사랑해서, 당신을 잡고 싶어서, 당신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내 모든 것을 바꾼다"라고 끊임없이 말해준다.
너무 늦었다고,
생활고와 외로움과 그 외 상처들이 너무 많다.
나는 노력 안 할 거다. 나는 팔짱 끼고 지켜볼 거다.라고 했지만... 어영부영 이젠 이혼 이야기는 거의 안 하고 살고 있다.
그렇게 12년, 아직도 산후우울증, 육아 우울증에 헤매고 있지만,
신용불량에서 카카오 신용정보 1000 점을 만든 지금
함께 사업과 가정을 잘 꾸려나가는 지금
적어도 남편과 내가 좋은 파트너 임은 안다.
무엇보다, 남편은 그의 음악을 듣고 울었다는 팬들과 훌륭한 교수로 실력을 인정해주는 존경해주는 제자가 천명이 훌쩍 넘지만,
내 실력을 인정해주는 사람은, 남편뿐인걸
내가 아픈 것을 걱정해주고
삐져나온 내 코털을 정리해주고
사치 낭비 안 하는 돈 궁합이 잘 맞는 남편이 고맙고,
음악을 조금씩밖에 못하게 된 남편에게 미안하다.
더 능력 있는 여자 만났으면, 음악만 했을 텐데.
이상하게 브런치를 하는 걸 남편이 본 것처럼 요즘 너무 잘해주고 있다.
남편이 진짜
브런치를 보고 잘해주는지
아니면 내가
브런치를 쓰면서
내 태도가 바뀐 건지 모르겠지만
모두
브런치, 글쓰기의 힘인 것은 분명하다.
그것 또한 감사하다.
오늘 외출도 하고, 엄청 피곤했고, 허리디스크로 고통스러운 와중에 애들 숙제시키느라
욱하는 순간이 많았지만
오늘도 욕을 안 했고,
소리도 안 질렀고,
손찌검은
당연히 안 했다.
그런 나를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