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유급종사원

by 지망생 성실장

처음 남편 일을 도울 때, 나는 가족무급종사원이었다.

작은 식당이나 마트 등 가족사업을 할 때, 사업체에 이름을 걸진 않고, 정해진 급여 없이 일하는 가족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처음에 나는 회사에 다니며 월급을 받으면서 동시에 남편 일을 도왔고, 집안일을 했었다. 나는 내 월급으로 생활을 했고, 남편은 보험비와 공과금과 대출이자를 맡아 각자 어떻게 아등바등 살았다. 사업 소득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사업이 조금 커지면서, 남편의 설득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 사업에 전적으로 힘을 합치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둘 때의 나는 조건이 1개만 있었다.

"매달 정해진 날짜에 200만 원을 줄 것"

남편은 알았다고, 그 정도는 줄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나보고 소박한 꿈이라고 말하면서 아주 좋아라 했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10년이 지나도록, 남편은 정말 약속한 돈을 제 날짜에 꼬박꼬박 입금해주고 있다.




그러다 한 번은 돈으로 스트레스받은 내가 부부싸움을 걸었었다.


"나는 따박따박 남편 월급 받으면서 살림하는 여자들이 너무 부러워, 오히려 월급 받는 사람들은 돈도 다 아내 주고, 휴가도 따박따박 다 쓰면서, 쓰레기 버리던지, 설거지를 하던지, 퇴근하고 아이를 본다던지, 조금이라도 가사육아를 돕기라도 하지.

당신은 사업하느라 바쁘다면서 가사 육아 하나도 돕지도 않으면서, 생활비 한 푼 주지도 않잖아."

라고 내가 말을 했었다.


남편은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말했다.


"내가 매달 25일에 따박따박 200만 원씩 주잖아. 그게 생활비가 아니고 뭐야?"


"그건 내 월급이야! 내가 일을 안 하냐? 출퇴근도 없이 밤낮 24시간 붙어서 일하는데. 그건 내가 일한 월급이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생활비가 아니야! 내가 다른 회사 다니면 월 250은 받아. 당신이 사람을 고용해도 월 230은 최소한으로 줘야 해. 나는 그보다 싸게 200만 원만 받고 일해주고 있는 것이고, 그 200만 원은 내가 일한 당당한 급여야. 남편이 벌어다 주는 생활비가 아니라고!"


남편은 처음에는 어이없는 표정이었고, 화가 많이 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이성을 차리고, 생각을 하는 표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매달 아내에게 생활비 몇백만 원씩 주는 가장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했어.

그런데... 나는 여태 생활비 한 번 제때 주지 못한 사람이 된 것이네.

200만 원으로 애들 학원비, 생필품, 식비 하기에도 모자란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어 그래서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생활비를 준다고 생각했어."


"당신이 생활비를 주고는 있어. 한 푼도 주지 안았다고 하는 것은 말이 헛 나온 거야. 그건 미안해. 애들 의복비, 미용실, 추석이나 설날 양가에 들어가는 돈, 공과금도 당신이 내니까. 당신이 생활비를 안 준다는 것은 아니야. 당신은 충분히 가장 노릇을 하고 있어.

단, 나에게 주는 200만 원은 내 급여일뿐, 가장이 아내에게 주는 생활비가 아닌 것이지.

이름을 똑바로 해야 해. 나는 집에서 가사하면서, 온전히 남편의 월급으로만 생활하는 전업주부가 아니야.

당당하게 회사에 출근해서 내 월급을 받고, 내 월급을 가정에 쓰는 가장이자. 맞벌이하는 주부인 거야."




특히 남편의 일을 돕는 아내들은 급여를 제대로 챙김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 가게일은 가게일대로 돕고, 가사노동 육아도 다 아내가 하면서, 남편이 주는 생활비로 살림하면서, 그 와중에 아내의 근로노동비는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진짜 많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내 급여를 별도로 책정했던 것이다. 물론 엄청 싸게.. 월 200만 원으로 이렇게 굴릴 수 있는 직원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


그날로 남편은 내게 생활비를 주기로 했다.

월 200만 원은 내 급여이고, 별도로 생활비 100만 원을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적지만 나도 생활비를 따박따박주는 남편 가장이다!"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나 역시 전체적인 월 소득이 늘어나서 스트레스도 줄었고, (그 돈이 그 돈이지만) 남편한테 월 백만 원이라도 돈을 받는다는 점이 왠지 부자기 된 것 같고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역시 월급은 타인에게 받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일반 회사였다면, 회사가 불안정하면 걱정은 되겠지만. 한 다리 건너 걱정이고.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당당하게 월급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사장이기에, 매달 함께 사업체 가계부를 작성하고 나면, 매달 간신히 버티는 것을 알게 되니까.

돈이 들어올 때마다 미안하고, 이렇게 돈을 받아도 되나 걱정도 되고, 눈치도 보인다.

내가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한 것이냐는 상관없이

아직도 사업이 온전히 안정을 찾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받을때마다 괜히 미안해지고, 소심해진다.


남편에게 월급을 받는 것은

남편이 사장인 것은

정말 눈치 보이는 일은 맞는 것이다.

그리고 연봉이 오르지 않는다. 근로자에게는 최악이다!

( 물론 대신, 남편이 주는 생활비 보너스는 생기지만 )


암튼

가족무급종사원은 대부분 아내일 거라고 짐작된다.

몇 달 나도 그런 시기가 있었고,

이제는 가족 유급 종사자가 되었고, 남편인식도 바꿔놨지만.


쉽지는 않다.

가족이기에 따박따박 아내에게 급여를 챙겨주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

돈 돌아가는 거 뻔히 보이는데, 내 월급 챙겨달라고 말할 수 있는 아내도 많지 않을 것이고.

결국 돈 벌어다 주는 남편은 돈 번다는 타이틀로 가장이라고 당당해지고

아내는, 일은 일대로, 살림은 살림대로, 육아는 육아대로 이리저리 진 빠지고 껍데기만 남아 늙는 것이다,

그런 집이 생각보다 있다. 나도 잠깐 그랬고.


그런 점에서

부부사업 특히 아내가 남편 사업을 돕는 일은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굳이 해야 한다면,

남편 일을 돕는 것이 내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될지

최악의 상황에서 이혼을 하면, 남편 사업을 도운 것이 어떤 경력이 될지를 꼭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는 남편과 이혼하면, 지금 커리어로는 월 250만 원 받기 힘든 것은 알고 있다.

이 사업 분야에 10년 경력 월급이 월 230-250만 정도로 짜기 때문이다.

월 300 벌기가 진짜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암튼 그래도

나는 취업은 될 커리어를 만들었고,

이혼을 해도 취업은 가능하게 머리를 쓰면서(?) 가족 유급 종사원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은

이런 생활에 그럭저럭 살고 있다.


언젠가는

남편 사업이 잘 돼서, 직원도 두고, 나도 사모님 놀이나 하면서 지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고

매달 월급과 생활비를 받을 때 마음 편히 받을 수 있게

사업이나 좀 더 안정되면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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