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생일 지옥에서 벗어나다

by 지망생 성실장

오늘 나는 마흔다섯살 생일을 맞이했다.

아니 마흔 여섯인가? 81년생인데. 큰 아이를 낳은 서른 두살부터는 내 나이는 잘 잊고 산다.

물론 애들도 열살 넘어서부터는 헷갈리고 ㅋㅋ


원래도 내 생일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생일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어떤 에티튜드를 갖춰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물욕이 없는 편이라 딱히 갖고 싶은 것도 없고, 몇번 생일 파티도 했었지만 내가 주인공의 역할을 잘 못했었던 것 같다.


생일은 항상 우울했고, 어색했고, 빨리 지나가는게 나은 그런 날이었을 뿐

생일이라고 즐거웠던 기억은 생각할 수록 거의 없었다.


그나마 애를 낳고, 애들이 케이크 앞에서 즐거워하는 날이 되면서 좀 좋아졌었고

이제 애들이 커져서 나름 엄마 생일이라고 챙겨주고 하다보니

그런 점에서 오히려 작년이나 올해 생일은 좋은 편이었다.


올해는 애들한테 생일 선물로 과일 생크림 케이크를 부탁했었다.

애들은 너무 늦게 가서 과일 생크림케익 하나 남은 것을 샀는데, 뭔가 부족해보여서 자몽을 사다가 케이크에 예쁘게 데코를 해서 주었다.

나와는 다른 그런 섬세함과 신경써줌이 그저 감사했다.


그리고 친정 부모님과 언니가 각각 용돈을 주었고, 모처럼 남편이 휴가를 주어서, 친구도 만나고, 혼술도 하고, 그렇게 기분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시댁과의 생일지옥이 끝난 것 같아 매우 후련했다.





결혼 후, 거의 5-6개월만에 임신을 했었다. 임신 4-5개월차에 시어머니의 생신이 있었다.

나의 시댁 생신 예산은 10만원이었다.

그때 우린 정말 가난했었기 때문에 예산을 마음껏 늘릴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남편에게 예산 10만원으로 "그때 유행같았던, 시어머니를 집에 초대해서 생신상을 차려드릴지, 또는 시어머니께 용돈을 드릴지" 선택하라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벌써 본인 친정에서 살고 있던 시누이가 40만원이 넘는 골프가방을 선물해드리고 싶다며, 둘이 반씩 22만원인가 25만원인가 각각 내서 사자고 했다고, 그 돈을 드리면 된다고 했다.


임신 4-5개월차였고, 돈도 예산보다 넘게 내게 되었기에, 나는 별도로 생신상을 차리지 않았다.


암튼, 내가 생신상을 차리지 않은 것이 시어머니는 섭섭했었나보다.

며느라기 드라마처럼, 아침일찍 시댁에가서 미역국이라도 끓이기를 바라셨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 부가 설명을 하자면, 그때 나는 구멍가게도 없는 시골에서 살았고,

그때는 쿠팡같은 신선식품 택배 시스템이 없었다. 나는 그 집에서 신문을 보기 위해 '우편배달료 추가 금을 지불' 해야했다.

그래서 집으로 초대를 하려면, 장을 보기위해서 일부러 서울에 나가야했고, 장보는 값은 아마 예산 10만원을 넘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운전도 못하고, 임신 중이었다. )


무엇보다, 시골에서 굳이 남편을 설득해서 시댁까지 가서 생신상을 차릴 돈과 시간과 열정도 없었고,

우리집으로 다들 초대할 힘도 없었고

무엇보다 정말 돈이 일단 없었다.

남편은 그리고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동생과 함께 생일 선물을 드렸으니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나름 눈치는 보았으나

정말 돈도 없었고, 임신중이라 힘도 없었고,

그리고... 우리 친정 엄마 생신이라고 사위가 생신상을 차릴 것도 아닌데,

아직 내 엄마 생신상도 제대로 대접해드린 적도 없는데

무리해서 시어머니 생신상을 차리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 아마, 결혼식 일주일 전에, '부잣집에 장가간 줄 알았는데 해온게 없네' 와 결혼 딱 10일 뒤, 신혼여행 다녀온 다음주에 우리 신혼집에서 김장 100포기를 뽑는 것부터 시작한 것등등의 앙금이 남아있었을지도 모르고 )


암튼

시어머니 생신날에 전화를 했었는데,

"너 대신, 네 시누가 미역국을 끓었다. 고맙다고 해라" 라고 말씀하셨더랬다.

나는 지지 않고

"지금 시누랑 같이 사시잖아요. 시누는 결혼전에는 안 끓였었나봐요? 결혼한 딸이랑 같이 사시니 좋으시네요. 딸이 미역국도 끓여주고 좋으시겠어요" 라고 대답했었다.


아마 그 시어머니 생신상을 내가 안 차린 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시어머니는 음력 생신과 내 양력 생일은 항상 비슷하게 있는데,

곧 다가온 내 생일에 시어머니는 "얼마전에 사위생일이라고 만나고, 내 생일이라고 만나고 했으니, 네 생일까지 만나면 너무 자주 모이니 그냥 내가 10만원 보낼테니 따로 보진 말자" 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 억울했다.

아니 같은 해에 결혼한 사위 생일은 온 가족이 모여 잔치를 했으면서

나는 나는?!

나는 남편을 닥달했다.

우리가 등촉샤브칼국수 값을 내고, 생일 턱을 쏠테니 자리를 만들라고 했다.

남편은 "뭘 그렇게 생일을 챙기고 싶냐?" 라고 말했지만

"나도 결혼 첫해 생일 사위처럼 대접받고 싶다. 자리라도 만들어라" 라고 했다.


결국 다들 불편한 마음으로 밥을 먹고, 내가 생일 턱을 내고, 생일 선물로 밥값만큼 봉투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게 결혼 첫해의 일이었다.


그 후, 살기는 힘들었지만.

나는 사위들 생일에는 꼭 남편을 통해 10만원씩 용돈을 보냈고,

시누들 생일에는 3만원-5만원 정도 기프티콘을 보냈고,

하나있는 조카 생일에도 3-5만원 정도 선물은 꼭 보냈다.


남편과 합의하에 양가 부모님 생신 선물은 현금 10만원을 보냈고, 그 외에 상을 차리거나의 지출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 아무도 우리 부부의 생일, 특히 내 생일은 챙기지 않았었다.


사실 내 생일은 안챙겨도 상관없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결혼 첫 해에 오기로 자리를 만든 그 하루를 빼면

나는 딱히 생일에 감흥도 없고, 주목받기를 바라는 사람도 아니고, 바라는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매번 시어머니 생신때마다

"내 생일은 안 챙겨도 되는데, 며느리 생일을 챙겨야 하는데, 며느리 생일이 언제지? 다음에는 내 생일에 모이지 말고, 며느리 생일에 만나자" 라는 시어머니의 대사가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저서 정말 싫었다.


그리고 정작 내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치셨고

시누들도 당연히 아무도 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았었다.


차라리 언급을 안했으면 모르겠는데,

내 생일보다 항상 10일 정도 앞에 있는 시어머니 생신마다 같은 레퍼토리 대사를 듣고,

그러나 돈 만원도 안 챙겨주시며

결혼 10년이 지나도록 "내 생일이랑 며느리 생일이랑 비슷한데, 며느리 생일을 하고, 내 생일은 하지 말고, 그런데 며느리 생일이 언제지?" 라는 대사만 계속 치시니 어쩌란 거시? 싶었다.


그러다가 2년 전, 2023년에 결국은 폭발했다.


남편에게 이래저래해서 시댁에 내 생일을 안 챙겨준 것이 섭섭하다.

아니 안 챙겨주는게 좋은데

말을 안하면 좋겠다.

특히 시어머니가 꼭 본인 생일 잔치때마다 "며느리 생일을 챙겨야 하는데, 그런데 며느리 생일이 언제지?" 라고 말하는게 정말 너무 싫다. 그래놓고 챙기지도 않으면서

말을 말던가.

구구절절히 말을 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당신네 가족 생일을 안 챙길테고

가족들 생일을 애플 캘린더에 기재해두었으니 당신이 알아서 챙기라고, 나는 이제 신경 안 쓸 거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 바보같은 남자가 그걸 쪼르르 지네집에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시누들에게 너들도 안 챙겼냐고 딸들 탓을 했었나보다.

시누들이 "새언니 미안해요" 라면서

내가 카톡 생일 알림을 비밀로 해놔서 몰랐었다며

늦은 선물을 보낸 것이다.


세상 어색하게 감사의 인사를 했고, 정말 세상 불편하게 선물을 받았었다.

나는 그저 남편이 나와 시댁의 어색함을 알기나 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는데, 세상 더욱 어색해져버렸다.


그래도 나는 2023년 겨울부터 내가 선물을 받았거나 사과를 받았거나 상관없이

시누 및 사위들 생일은 남편에게 알아서 하라고 일임했으니

진짜 남편이 알아서 제때 용돈 보내고 전화통화하라고 시켰고,

정말 나는 신경 안 썼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작년 2024년 생일에도 시누들이 선물을 해줬고,

이땐 정말 결혼 14년만에 시어머니께서 두번째로 용돈 10만원을 보내주셨고

그렇게 감사히 생일 선물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굳이 시댁 생일 선물을 챙기지 않았다.

남편보고 알아서 하라고 했고

남편이 송금하고 전화하고 그렇게 2024년, 2025년 봄 여름을 지냈다.



그리고 2025년 올해!


시누들이 갑자기, 시어머니 음력 생신 날짜가 내 생일 날짜와 많이 겹치니, 시어머니 생신을 양력으로 지내자고 했다. 예를 들면 음력 8월27일었다면, 그냥 양력 8월 27일로 말이다.

시어머니 생신과 내 생일이 가까운 것이 무슨 상관인지도 모르겠고,

음력 날짜를 고대로 양력으로 가져오는 건 또 무엇인가 생각했으나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시누들이 모이자고 한 날에 모여서 밥 먹고, 선물을 드렸었다

( 올해는 특별히 150만원짜리 핸드폰을 사드렸다! )


암튼 그렇게 시어머니 생신이 약 1달 전 쯤 지냈고,

오늘이 내 생일인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시댁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다.


이제야 어색한 생일 축하 지옥에서 벗어난 것 같다. 진짜로 내 생일을 아무도 기억 못해주는 것이 진심으로 감사하다

억지로 어색하게 축하받는 것도 부담스럽고, 불편했기에

진심으로 마음이 편했다.


앞으로도 시댁에서 내 생일은 아예 언급이 안되면 좋겠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대사를 쳐야할지 모르겠으니까 말이다.


오늘을 기점으로 제발 진심으로 잊어주기를 바란다.


생일 그깟거 진짜 별거 아니니 제발 잊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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