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것 같기도......

by 지망생 성실장

남편과 무지무지하게 싸우고, 남편이 출장을 갔다.

제주도로 갔는데, 가기 전에 남편이 '뭐 사다줄까?' 라고 물었다.


나는 친정 아빠 술이나, 친정 엄마 생신이니까 엄마꺼 뭐 살 것 있으면 사오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은 술은 돈 주고 사는게 정말 아깝다고, 다른 것이 보이면 사온다고 했고,

친정 엄마 화장품 사다 줄까? 하면서

당신도 화장품 사주면 쓸꺼야? 했다.


"사다주면 쓰지."

"팍팍 쓸꺼야?"

"팍팍 쓰지."

"알았어."


그리고 남편은 돌아오는 길에 화장품을 사왔다.

그 화장품은 남편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내가 신혼여행길에 샀던 에스티로더의 갈색병 제일 큰 사이즈였다.

화장을 하지 않고, 화장품에 관심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고급 화장품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남편이 기억을 하고 콕 짚어 사온 것이었다.


내거 큰 거 하나

친정 엄마꺼 큰 거 하나

시어머니꺼 큰 거 하나

총 60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기분이 싫지 않았다.

헐리우드 영화처럼 '오우 마이 갓! 이즈 잇 갈색병?! 오우 허니 알라뷰~' 처럼 호들갑을 떨 정도로 감동은 아니었으나.

예쁜 상자에, 좋은 향기가 나는 듯 한 느낌적인 느낌에, 그리고 남편의 화해의 제스쳐가 싫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게다가 이제는 이렇게 돈으로 화해를 해도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이제 친정 엄마나 시어머니에게도 고급 가방은 못 사드려도, 화장품 정도는 사드릴 수 있다는 점도 뿌듯했다.


예전에는 싸우고 나서, 남편이 맥주에 치킨 하면서 화해하자고 하면, 그것도 돈이다. 돈으로 화해를 하자고 하지 말라고, 그럴 돈 없다고, 지랄 지랄을 하면서 더 싸웠었다.


그런데 이제는 돈으로 화해를 해도 큰 걱정이 없다는 점이 매우 안정감있게 다가왔다.


물론 쬐끔은 찝찝하다.

돈으로 화해를 하지 않았을 때는, 끈질기게 대화(싸움)을 하면서 감정을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돈으로 어영부영 덮어놓은 것 같기는 하다.

똥 다 싸고, 돈으로 똥꼬를 대충 덮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남편의 화해의 제스쳐가, 여유로웁다고 우기는 남편의 지갑이

날 위해 돈을 써도 된다는, 그만큼의 남편의 마음이

좀 두껍게 다가왔다.


이걸로 되었다. 이정도면 일단 오케이!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행복의 최소 요건이 경제적 여유라고 했던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돈가는데 마음있다고, 남편의 마음을 알았으니 괜찮아졌다.


하지만 다음에는 싸운 후, 돈으로 풀지는 않을 것이다.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것은 한 번 해봤으니 된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브런치에 스팸댓글 달면 돈을 벌긴 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