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기분전환 삼아 어딘가로 가는 것은 걸어서 갈 수 있는 만화방 정도면 충분하다.
돈만 있다면, 집 근처 호텔에서 푹 쉬는 것 정도가 가장 좋을 것 같은데, 너무 호사스러운 생각인 것 같아서 아직 시도는 못해봤다.
여행의 단점은 많이 있다.
내가 운전을 못해서 그런가 누군가의 차를 얻어타는 것도 눈치보인다.
남편은 운전을 좋아해서 몇시간이고 운전하는 것이 기분전환 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둘이 여행을 가는데, 나는 옆에서 편하게 앉아 졸기도 하고 핸드폰도 하면서 있는 것이 괜치 눈치보인다. ( 남편은 괜찮다고 좌석을 뒤로 눞혀주곤 하지만 그래도......)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차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 자체도 좀 어지럽다. 멀미는 아닌데 그냥 어지럽다.
비행기도 괜히 하늘에서 뚝 떨어질까 두렵기도 하고,
그나마 배를 타고 싶기는 한데, 현실적으로 배를 타고 하는 크루즈 여행은 너무 비싸니까 감히 시도도 하지 못한다.
게다가 가는 길에 짐 싸고, 가기 전에 집 청소해놔야 집에 왔을 때 기분이 좋을테니 청소도 해야 하고,
다녀와서는 산더미같은 빨래와 짐 정리와
밀린 화사일이 두렵고,
왔다 갔다의 여정과 과한 도파민으로 피로감이 쌓여 2-3일은 꼬박 누워 쉬어야 체력이 돌아오는 점도
여행을 망설이게 한다.
더더욱 두려운 것은 여행을 가는 동안 큰 고객을 놓칠까봐이고,
여행의 의미를 더 없애버리는 것은
여행가서도 업무 전화는 수시로 울려댈 것이며, 카톡으로 또는 노트북을 켜놓고 짬짬히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결혼전에는 여행을 많이 다녔었다.
친정 부모님, 특히 친정 엄마는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다녀오면 에너지가 충전되고, 여행가는 길에 친구들과 수다떨고, 가서도 집 생각 안하고 맘껏 놀면서 친목을 다지는 것이 그렇게 좋다고 했다.
그래서 결혼 전, 30살이 될때까지 통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해외 여행은 정말 마음껏 보내주셨다.
아마 남자랑 여행간다는 것 자체를 상상을 못하셨던 것 같은데
씁쓸하게도 실제로 남자랑 여행은 안 가기도 했고,
친구들과 국내 여행도 많이 다녔고,
혼자서 해외여행을 65일간 할 정도로 나름 제법 여행을 많이 하긴 했었다.
그런데... 많은 경험 끝에 나는 관광이나 경험은 다큐멘터리로 보는게 더 깊이있게 배울 수 있고,
휴식 여행도, 가는 길에 피곤, 가서 1-2일 휴식, 오는 길에 다시 피곤을 생각하면
차라리 국내 가까운 곳에서 잠이나 자다 오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그나마 국내 휴식 여행도... 뭣하러 휴식을 하러 길을 떠나냐. 목욕탕이나 갔다가 집에서 낮잠자는게 더 좋지 하는 생각이다.
딱 하나, 바다 수영을 좋아해서, 동해바다에 여름에 가는 것은 좀 기대감이 있긴 한데.
한 여름 바닷가 숙소가 너무 비싸서, 항상 8월 3째주에나 휴가를 가다보니, 이젠 추워서 물에 못 들어가서 그것도 시큰둥 해졌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너는 몇천만원 들여서 다 해봤다는 거냐. 나는 여행이라곤 신혼여행이랑 애들과 베트남 5일, 일본 4일이 유일하다. 나는 여유만 생기면 따뜻한 곳으로 이곳 저곳 여행을 다니고 싶은데, 너는 다 해봤다고 시큰둥해서 가고 싶은 내 맘에 초를 치니 기분 나쁘다고 한다.
애들도 이렇게 뚱한 엄마에게 분위기를 망친다며 속상해한다.
친정 엄마는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을 내가 싫어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혼하고 고생하더니 애가 아주 시들어졌다며' 속상해하신다.
근데... 그냥 진짜 여행 한번에 딸린 부수적인 것들로 인해 생각만해도 지치는 걸......
이제 애들 기저귀도 이유식도 장난감도 신경 안써도 되는데,
이젠 애들 앞에서 맥주도 소주도 마실 수도 있는데
그냥 빤스 몇장만 챙겨서 떠나면 되는 데도
미리 지치는 것은
정말 우울증의 한 증상인가 싶어 좀 그렇기는 하다.
그런데 정말 관광이나 배움의 목적이 있는 것은 있는데로
그런거 없이 휴식이면 휴식대로
결국 돈과 시간과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생각하면 못 움직이겠는걸 어쩌겠누
사방팔방 다들 국내든 해외든 풀빌라니 리조트니 작은 팬션이라도 찾아서 잘들 놀러다니는데
나만 이상한 것 같아
이방인이 된 기분이 들긴 하다.
오늘 오랜만에 좀 멀쩡한 이력서가 들어와서, 면접 약속을 잡으면서, 이제 직원이 생기면, 직원이 사무실 지키면 되니까, 당일치기라도 여행가자는 남편의 들뜬 목소리에 억지로 박자를 맞춰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서 적는다.
정말 엄마 말대로 결국 돈 없으니까 생각도 궁핍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지금의 나는 그다지 움직이고 싶지 않다.
그냥 퇴근길에 우동에 소주 한잔이면 된다.
그게 제일 마음이 편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