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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Dec 30. 2023

231227 - 5번째, 45일간 약을 먹었네

돈+시간+정성 을 쏟아야 될까 말까, 돈만 쓴다고 되는 것은 없다

반지하 셋방이라는 만화가 있다. 카카오 웹툰인데, 내가 거의 유일하게 돈을 내고 보는 만화이다.


주인공은 최근에 정신과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사실 주인공이 열심히 약을 먹고 나아진다는 내용을 보고, 나도 정신과 치료, 당뇨치료를 제대로 해보기로 결심한 것도 크다. 

( 물론 더 큰 이유는 이렇게 애들에게 소리 지르고, 때리고, 나만! 힘들게! 나만! 억울하고 힘들게 사는 것 같아서, 우울증 치료를 하면 좋아질까 해서 지만 ) 


암튼 오늘도 유로 결제를 해서 만화를 보는데, "약을 먹어서 그런지 많이 사는 게 좋아졌다"라고 하니 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그게 아니에요. 스스로를 아끼고 나아지려고 노력해서 좋아진 거예요"

라고 하셨다.


와... 그래서 나도 좋아진 것일까?


생각해 보니

이제는 낮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일이 많이 벅차도 슬프지가 않다. 막 기운이 나거나 에너제틱한 것은 아닌데, 주변이 또렷해지고, 내가 여기까지는 할 수 있다. 해봤으니 할 수 있다 정도의 자신감이 생긴다. 


무엇보다. 12시가 되면 쓰러지듯 잠들고, 아침에 애들 등교준비를 해줄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 


그리고, 이렇게 좋아진 이유가 물론 약의 효과이기도 하겠지만. 나 스스로가 좋아지고 싶다고 마음먹고, 행동거지를 바꾼 것에 있다고 만화 속 의사샘이 말해주니 정말 기뻤다. 


이제 이렇게 조금씩 나 스스로를 좋아하고, 가꿀 수 있구나 싶어, 희망이 보인다. 


더불어, 운동은 못하지만, 당뇨약도 잘 먹고 있어서 그런가, 식욕도 줄고, 가뿐한 기분까지 들어서 더 죄책감이 덜 든다. 




어릴 때는 돈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돈이 없어서 글을 못 쓴다고 생각했고, 돈이 없어서 애들 공부를 못 시킨다고 생각했다. 돈이 없어서 변호사도 못 쓰고, 혼자 고소장을 쓰면서 힘들어서 울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돈이 없을 때 브런치를 시작할 수 있었고,

돈이 없어서 엄마표 중심으로 공부를 한 큰애는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본 대형 학원 레벨테스트에서 그래도 중상 정도로 성적이 나왔고, 모든 곳에서 자기 주도가 잘되어 있으니 기대가 크다는 말을 들었다. 

둘째 역시, 엄마표를 하다가 학원을 가니 "엄마보다 더 좋다" 면서 학원비 내주는 것에 감사해하며 학원 숙제도 열심히 한다. ( 엄마가 소리 질러서 싫었단다 ㅋㅋ 그런데 처음부터 보냈으면 아마 놀러나 학원 다녔겠지) 


그리고 변호사 없이 임한 소송에서도 승소하고, 돈은 못 받아도, 범인은 실형을 최고형으로 받았으니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돈만 쓴다고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가사 도우미도, 돈만 준다고 내 생각처럼 해주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시간과 사람의 상식적인 체력을 고려해서 요청해야 잘해준다.

직원도, 월급도 주고, 교육도 시켜주고, 감시도 하고, 밥도 사주고, 비전도 제시해야 점차 역량이 올라가고 충성도도 올라가는 것이더라.


내가 학원을 해서 그런데. 똑같은 돈을 내고 학원에 와도, 왔다 갔다만 하면 당연히 10% 정도 목차만 읽고 가는 꼴이다. 

학원비를 내고, 출석 100% 하고, 복습 과제 추가 학습까지 해야. 

정말 100% 흡수하고, 만족할 만큼 실력이 쌓는 것이다. 


돈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없더라


정신과치료도 약만 받아오는 게 아니라

그 약을 잘 먹고, 행실을 바르게 하고,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함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쉽지 않다.


우리 애들이나 남편은 내가 때마다 약 먹으라고 잔소리하고, 밥 먹으라고 차려줘도 안 먹는데

나는 아무도 내가 약을 먹는지, 밥을 먹는지, 잠을 잤는지, 오늘 기분이 우울했는지 좋았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없는, 아무도 날 돌보고, 봐주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맞춰 약을 먹고, 잠을 자고 밥을 챙겨 먹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내가 차려준 밥이나 약을 안 먹을 때면 화가 나듯이

아무도 안 챙겨주는 나 따위에게 나 스스로 챙겨 먹는 것은 더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하겠다


나이 60 살에 , 돈 적당히 있는 할머니가 되어

손주 봐주고, 콜라텍이라도 놀러 가서 바람이라도 피우려면

건강해야 하니까


아니 적어도

나 스스로 대변 소변 처리를 못하면

스스로 삶을 결정할 힘이라도 있으려면

일단 건강해야 하니까 말이다. 




돈 시간 정성 중에

돈이라도 최소한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약을 잘 먹은 나를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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