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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정나그네 Jun 12. 2016

열심히만 하면 안 돼. 잘해야지.

깨지면서 배우는 신입, 사수의 역할과 중요성

"주임님, 저 정말 열심히 했어요. 최선을 다했습니다."

"알아. 보여. 근데 신입아, 열심히만 하면 안 돼. 잘해야지. 지금도 못하는 건 아닌데, 더 잘해야 돼."



2015년 어느 월요일,

떨리는 마음으로 아침 7시에 집에서 나서, 8시 30분 회사에 도착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낯도 가리는 나는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며 나의 존재를 알렸다.


그렇게 3개월 동안의 적응 시기는 내 생애 가장 많이 혼나는 시간이었고, 창피한 시간이었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시간이었으며, 잊지 못할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가장 많이 배웠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자극이었고, 긴장이었다.


회사에서 가장 무서운 사수를 만나 회사를 사회를 배웠다.



#1 기획자의 전화받기/ 수준에 맞게 시키기


"전화가 2번 울리면 댕겨받아봐"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전화를 당겨 받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누군가 받겠지, 내가 받아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어차피 돌려줘야 할 텐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동안 전화는 3번째 벨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난 3-4번의 전화를 한통도 당겨 받을 용기가 없었다.

"신입아 전화 왜 안 받니?"

"아.. 죄송합니다."

"아니 나한테 죄송할 필요 없어. 죄송하다 하지 마. 전화받는 게 힘드니? 내가 메인 전화 바로 너한테 시킨 거 아니잖아, 나는 네가 그 정도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시킨 거야. 아직 준비 안됐어? 그럼 안 되겠다 말해."

"아니요. 담부터 받겠습니다."


나는 지금 우리 회사로 오는 모든 메인 전화를 받고, 6개의 고객사와 커뮤니케이션하며, 각 업체들의 VOC를 담당하고 있다.

나는 나의 속도에 맞추어 일을 배워나갔다. 그리고 그 속도를 알아봐 주는 것이 사수의 역할이다.



#2 참조 넣기/ 책임과 보호


1개월이 지나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나는 홀로 L사의 글로벌 운영을 담당하게 되었다. L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쉽지 않았고, 나의 나름대로 내가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고객사와 커뮤니케이션했다.

이후 이 과정을 안 사수는 매우 화가 났었다. 이 업무를 사수도 몰랐기 때문에 사수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신입아 너 아직 신입이야. 왜 메일에 참조 안 넣니? 앞으로 모든 메일과 회사 메신저에 참조 넣도록해. 네가 하는 모든 걸 내가 알고 있어야 내가 널 보호해줄 수 있어. 네가 맘대로 하다 사고 치면 책임못진다."


CC를 붙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나는 정말이지 몰랐다. 나는 오히려 이런 사소한 것까지 참조를 넣어 바쁜 사수에게 알림으로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다.

30분을 넘게 회사가 떠나가도록 혼났던 것 같다. 우리 회사는 소프트한 분위기라 누군가 크게 혼내는 일이 없는데, 나만 유독 사수에게 와장창 깨졌기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였다. 그냥 혼나고 있다는 감정 때문에 창피했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신경 쓰였고, 그래서 나를 더 무시하고 일 못한다 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열정 페이 받으면서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란 생각들로 숨이 턱턱 막혔다. 아마 이 날은 홀로 화장실에서 서러움의 눈물을 훔치고 나왔을 거다.


그러나 자리로 돌아와 반박할 수 없는 나의 잘못임을 인정한다. 권위란 직급이란 우산과 같다. 우산 속으로 들어가야지 나는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100% 동의한다. 신입 사원의 가장 안 좋은 태도는 보고 없이 마음대로 일처리 하는 것이다. 차라리 귀찮게 하더라도 참조 넣고, 모르면 물어봐야 한다. 그것이 신입사원의 좋은 태도이다.


그리고 1년이 다돼가는 지금 나의 회사 계정에는 1,586통의 메일이 쌓여 있다.

사수의 퇴사 전날, 마지막으로 메일의 참조를 넣어드렸다.


"이제 신입이가 쓰는 메일을 보니 다 키웠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 가지 팁을 줄게. 잘했는데, 비슷하더라도 여러 사항을 말할 땐, 번호를 붙여. 그래야 더 확실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어."


나가시는 날까지 나는 끝까지 배운다. 사수는 꼭 칭찬 뒤에, 한마디를 더 붙이시는 습관이 있다..ㅎㅎ



#3 사수의 역할, 선배의 역할


사수와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너무 무섭고 어려워서 눈도 못 마주쳤는데, 이제 조금 친해지는 거 같았는데 아쉬웠다.

그 날, 1년이 지나 사수의 입장에서 1년 전 나를 보며 사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주니어가 일을 못하는 건 당연해. 그걸로 혼낼 수는 없어. 그런데 주니어는 태도가 중요해.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거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를 수 있지. 몰라서 못하는 거는 뭐라고 안 해.

그런데 거기서 선배가 그냥 넘어가거나 실드를 친다면, 그건 선배의 잘못된 행동이고 선배의 잘못이야.

모르면 알고 가야지. 그게 나는 선배의 올바른 역할이라고 생각해."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서 가장 무서워하고 미워했던 사람이 가장 존경하고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다.

놀라우신 분이다. 다음번에는 언니로 만날 수 있을까.

회사를 고를 때, 꼭 물어보고 봐야 하는 것이 사수인 것 같다.

좋은 사수를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 좋은 사수가 되어주고 싶다.



#4 우리애


"우리 신입이, 저희 신입씨"

"우리 회사"

외부에서 이야기할 때, 서포트해주는 것은 역시 사수와 사내 선배님들 밖에 없었다.

나 역시 이야기한다.

'여기 회사 와서 많이 배웠습니다 가 아닌, 우리 회사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라고.'



1년 동안 사회생활을 배우고, 신입의 태도를 배우고, 일을 배웠다.

주니어는 '배우려는 태도, 열심히 하려는 마음, 솔선수범하는 태도'가 참으로 중요하다.

물론 눈치도.

모두가 열심히 하기에 열심히를 넘어, 올바르게 잘 해야 한다.

그런데 잘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배워야 한다.

또한, 시키는 일만 잘 처리하는 게 아니라 한 단계 나아가 필요할 것 같은 일을 미리 제안하고 한다면 안 예뻐할 수가 없다.



어느 대리님과 같이 퇴근을 하며,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우는 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거고, 직장은 일은 하는 것이라 웃으면서 냉정히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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