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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정나그네 Jun 11. 2016

팀장님, 저 퇴사하려 합니다.

퇴사도 처음처럼

"제 삶의 가장 큰 태도는 배우려는 마음입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배우려는 태도만큼 얻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는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 간다는 생각으로 주니어로써 많이 배우고, 성장하겠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입사 날

자기소개 PT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것을 기억하며 매일매일 시간이 헛되지 않게 보내려고 애썼다.

알바보다 못한 월급이지만,

배우는 게 얻어가는 게 없으면 그게 더 낭패이니 혼나면서 깨지면서 실수하면서 배우려고 애썼다.


다음 주가 수요일이 되면, 1년이 된다.

1년 내 신입사원 퇴사 비율이 28%가 된다면,

배우고 성장했던, 꾸역꾸역 버틴 것이던

나는 나로서 예의와 최선을 다했다.

다만 꾸역꾸역 버틴 것이라면, 나의 1년이 너무 헛되고 슬프기에, 작은 시간에도 배우고 쌓인 것들이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보낸 시간을 내가 부정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시간도 될 수 없다.


금요일 주간 회의를 끝내고 퇴근 전,

고민 끝에 27살의 아무것도 없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팀장님을 불렀다.


"팀장님, 잠시 이야기 좀 할 시간 있을까요?"

"어?? 어 땡땡이가 갑자기 이렇게 요청하니, 좀 무서운데? 응 말해봐."

"아, 잠깐 회의실에서 말씀드려도 될까요?"

"어 그래. 가자"


퇴사 사유를 한 달 전부터 수백 번 고민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수가 먼저 퇴사를 해버리는 바람에, 진짜 큰일 났다는 생각과 함께 언제 말씀드려야 할지 시점을 찾는 것부터 밤마다 잠을 못 이루며 생각했다.


"팀장님, 저 다음 주면 일 년이 됩니다. "

"아 그래? 벌써 그렇게 됐냐? 축하한다."

"그래서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많은 고민 끝에 말씀드려요. 1년 동안 정말 많이 배우려고 애썼고, 좋은 분들과 함께 일하며 많이 배웠습니다. "


팀장님은 전혀 상상도 못하신 듯하며, 적잖이 놀란 얼굴이셨다.

한순간에 분위기는 얼음이 되었다.

"적어도 두세 달 전에 귀띔이라도 했어야지 뒤통수 맞은 것 같다. 끝이 별로 안 좋네. "


속상한 마음은 나도 똑같았다. 최대 한 달은 더 근무할 것이고, 원래보다 더 일찍 말씀드리는 것이 회사를 위한 예의란 생각에 나 역시 지금 말씀드린 것이다. 애증의 회사지만, 그간 나 하나 빠지면 닥쳐올 문제들에 대해 수십 번 고민하고 대처할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여하튼 나가는 입장에서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없기에, 나가는 나만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무엇이 딱 정해지지 않았는데, 나간다는 것이 팀장님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나 보다.


사실 실질적인 이유로 가장 큰 것은 연봉이다. 그래도 서울에서 대졸을 하며, 한 달에 120 받으며 일하기에는 타지 생활이 버거웠다.

야근까지 하면, 최저 시급도 안 나오는 데, 1년을 있었던 것은 아직 젊고 배우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 성장이 느껴지지 않았고, 1년 후 연봉이 크게 오를 것 같지 않았다.

더 이상 성장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떠나야 하는 타이밍이다.

또한 여러 안 좋은 상황들을 당하며,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기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 5주간의 해외여행을 떠나고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


다만, 오랜 시간 끝에 적응하며 나만의 position을 만들어 나갔고, 내 자리를 만들어 나간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아쉬움이 크다.

또한, 이만큼 좋은 사람들을 못 만날 것 같고, 이제 좀 친해졌는데 그것이 아쉽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도 설득당할 수도 없었다.


몇 분 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정적의 시간을 보냈다.


"저도 회사가 좋습니다. 회사 내 한 분 한 분 너무 좋으시고, 저 역시 아쉬움이 크지만, 실질적으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제 1년이 다가와서 결정을 해야 했고, 한동안 많은 고민을 한 끝에 이번 주에 결정한 사항이라 이제야 말씀드립니다. "

"그래 알았다. 위에 보고할게."


솔직히 말해서 팀장님이 많이 잡을 줄 알았다. 그러나 팀장님은 당황하긴 했지만 담담하게 알겠다고 하셨다. 살짝 섭섭하려 했지만 곧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적인 생활의 어려움을 솔직히 고백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회의실을 나와 금요일의 야근을 하며, 자리를 못 떠나고 있었다. 죄송한 마음과 속상한 마음이 컸다.


"땡땡아, 퇴근 안 하냐?"

"아, 아이폰 설치된 앱 검수를 아직 덜해서, 이거 마무리 좀 하고 가려고요~!"


감사했다. 그렇게 물어봐주시고 말을 걸어주셔서.


이사님과 대표님과 다시 합의를 해보아야겠지만, 최대한의 예의를 지키며 감사함으로 마지막을 준비하고 싶다. 인수인계를 해줄 사람도 없지만, 내가 나가기 전까지 뽑힐지 안 뽑힐지도 모르지만, 문서로 최대한 꼼꼼하게 정리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회사와 조직은 '시스템이 잘 잡힌 곳'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리더가 있어도, 그 리더가 사라졌을 때 회사가 무너진다면, 그 회사는 좋은 회사가 아니다. 어릴 적 인턴을 할 때는, 내가 빠졌을 때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것이 일을 잘했던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빠져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잡아주고 정리해주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과정의 처음과 끝이 아름답다면,

중간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뒷심을 내어 매듭을 잘 짓고 싶은 마음이다.


하루는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 가는 것이기에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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