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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정나그네 Jun 16. 2016

퇴사도 입사만큼 어렵다, 잡힐 듯 말 듯

연봉 천을 올려주면, 남을 생각이 있어?

"이야기 들었어. 잠시 이야기 좀 할까?"


퇴사 의사를 밝히고, 윗 선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4일째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 이사님이 등을 툭툭 두드리셨다.


처음엔 그냥 농담하시는 줄 알고 잘못 알아듣고 웃어넘겼다. 그게 아니고 부른 걸 알고 잽싸게 노트와 펜을 들고 이사실로 들어갔다.


"연봉을 올려준다면 남을 의사가 있니?"

"아.. 저 처음을 너무 작게 시작해서요. 사실 많이 올려도 어려울 것 같아요."


"아니, 제시도 안 해 볼 정도로 안 해줄 거라 생각한 거지? 네가 다른 회사에 간다면 받고 싶은 금액을 제시해봐. 그 금액을 제시해도 여길 떠날 만큼 우리 회사가 싫은 거야? "


농담처럼 말하지만, 저렇게 말씀하시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상황은 100% 예상했던 시나리오였다.

솔직히 연봉이 가장 큰 이유가 맞다.

열정 페이 보다도 못할 만큼 일했기에 더 이상 오를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진짜 불러 버렸다. 


"아마 천은 더 올려야 해요."

"천을 더 올리면, 다닐 의향이 있어? 그래도 못 다닐 만큼 우리 회사가 싫은 거야?"


말 잘하시는 분인 줄 알았지만, 참 대답하기 어렵게 만드시는 기술이 있다.

내가 미끼를 물어 버린 것인가.

솔직히 안 흔들렸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흔들림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 그냥 개인적으로도 정체되어 있는 시기예요. 대학원 생각도 있고, 서울에 집도 없고, 여러 상황이 있어요."

"혹시 연봉을 올려주고, 대학원을 익스큐즈 해주면 남을 의사가 있니? 어차피 정해진 것이 아니라면, 새로운 회사를 가도 적응해야 하고, 일하면서 대학원 다닐 거 아냐. 회사에서 오피스텔을 대여해 줄 수도 있는 거고."


이 외에도 여러 이야기들이 핑퐁처럼 오가며,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과연 정말로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 그 너머에는 내가 이 분을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 발자국 물러서서

사람을 보지 않고,

사람 말이 아니라 나의 상황만을 비추어,

내가 진심으로 무엇을 원하는 지를 돌아보았다.



<퇴사를 결정하다가 잡을 때, 고민하게 되는 것들>


-나의 보스를 100% 신뢰하고 따를 만한 사람인가?

-몇 년 후 내 상사는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인가?

-최소 이 금액을 줄 수 있는가?

-그 금액만큼의 일이 올 텐데,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더 배울 수 있고, 성장이 있고, 재미가 있는 일인가?



때로는 박수 칠 때, 떠나는 것이 아름다울 때가 있는 것이다.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떠오른다. 현실과 이상이 갈등할 때, 과연 그대와 나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그냥 눌러앉는 게 낫겠다 싶지? 텅 빈 공허한, 희망 없는 삶에.


난 우리 미래를 꿈꿨고 그 꿈을 멈출 수 없어요

떠날 수도 없고 머물 수도 없어요



다시 한번 느끼지만, 입사만큼 퇴사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것이 나의 답인 것 같다.

여행은 용기의 결과물이다.

이 용기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자신감으로 바뀔 것이다.

더 이상 나를 지나치지 않도록.




나는 나를 지나쳐왔다. 

-박노해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는 너무 서둘러 여기까지 왔다.

여행자가 아닌 심부름꾼처럼


계절 속을 여유로이 걷지도 못하고

의미 있는 순간을 음미하지도 못하고

만남의 진가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나는 왜 이렇게 삶을 서둘러왔던가

달려가다 스스로 멈춰 서지도 못하고

대지에 나무 한 그루 심지도 못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했던가


나는 너무 빨리 서둘러왔다.

나는 삶을 지나쳐왔다.

나는 나를 지나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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